절기

TOP
DOWN

[설날] 새해, 이렇게 그려야 합니다.(골3:12-17)

본문

새해, 이렇게 그려야 합니다.(골3:12-17)


 


어느 유치원 교실에서 선생님이 도화지 한 장씩을 나눠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합니다.


얼마 후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나와 말합니다.


“선생님, 잘 그리려고 했는데 지우개로 지우다가 종이가 찢어지고 말았어요.”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인자한 미소로 종이 한 장을 주시면서 말을 합니다.


“이 종이를 가지고 가서 다시 잘 그려보렴.”


오늘은 2021년 새해 첫 주일 신년주일입니다.


신년주일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를 주신 것은 새로운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신 것입니다.


지난 날 잘못 그린 그림이 있거든 이 새해에는 다시 한 번 잘 그려보라는 기회를 주신 것이 새해입니다.


다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에 여러분의 인생그림을 잘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을 그렸느냐?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렸느냐? 입니다.


여러분, 신앙 안에서 그려야 할 그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입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렸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이 아니면 그것은 칭찬받을 수 없는 그림입니다.


노회산하 교회학교 어린이 대회가 매년 있는데요,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림 자체를 보면, 정말 잘 그렸는데 주최 측에서 원하는 그림이 아니어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연을 보면서 산수화를 그리라고 했는데 엉뚱하게도 가정을 배경으로 그렸다든지 아니면 정물화를 그렸다고 하면 아무리 잘 그렸어도 상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려야 할 그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입니다.


그래야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고 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얼마나 열심히 그렸느냐?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심사기준은 잘 그린 것 보다는 얼마나 열심히 그렸느냐? 입니다.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실력대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그린 그림을 주님은 칭찬하고 인정하십니다.


신앙의 그림에 있어서 실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그렸느냐?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모두다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여러분들은 지난 일 년 어떤 그림을 그렸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림대신에 내 그림을 그리고 거기다가


열심히 그리지도 못하여 제대로 완성하지도 못한 그림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런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은 “새로운 도화지를 줄 테니 다시 한 번 열심히 그려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시는 새 날을 다시 구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새로운 결심과 결단이 필요한 신년주일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던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금년 일 년, 신앙의 그림을 잘 그리며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용서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말씀하십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선 우리라는 존재가 용납하고 용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죄를 짓고 실수가 있을 때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하면 감옥에 들어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죄를 지면 돼지가 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할 때 이 세상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온통 돼지뿐이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실수가 있고 죄가 있고 다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용서받아야 할 존재라고 할 때 남을 용서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일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용서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12절 하 반절에 말씀하신대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옷은 형편에 따라, 계절에 따라 입는 옷이 다릅니다.


여름에 입는 옷과 겨울에 입는 옷이 다르고 물속에 들어갈 때와 산속에 들어갈 때 입는 옷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용서와 용납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내가 겸손하지 않고 내가 오래참지 않고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옷을 입지 않고는 절대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도 선교사였던 스탠리 존스 목사의 간증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스 목사로부터 오래 동안 재정적 지원을 받던 한 교인이 지원이 끊기자 선교사를 공격하는 자로 돌변하였습니다.


너무 화가 난 존스 목사는 그에게 편지를 씁니다.


“A씨 당신은 처음 5분간은 괜찮은 인간이고, 다음 5분간은 확실치 않은 사람이며, 나중 5분간은 못된 인간임을 알았습니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마음이 통하는 교회 중직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을 때,


중직자는 “편지를 쓴 것은 좋은 일이나 충분히 속량하는 내용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하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 말을 듣고 존스 목사는 “언쟁이나 감정싸움에서 이겨도 사람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님은 내 죄를 속량하시려고 십자가를 참지 않으셨는가?”


이런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편지를 씁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사과하며 화해의 악수를 청해왔다고 합니다.


나 위하여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 주님의 용서를 생각할 때 남을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사랑의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바울 당시에 옷은 순서대로 입었습니다.


옷을 다 입은 후에 마지막으로 허리띠를 매면 그것으로 완전한 복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온전하게 해주는 마지막 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긍휼과 겸손과 자비와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하고 용서해준다 해도 그것으로 그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할 때 온전한 옷을 입는 것이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생활 속에서 흔히 보는 것이 용서까지는 하나 그 이상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합니다만 그 이후의 모습을 보면 친하지 않고 교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외면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고 성경적인 자세도 아닙니다.


용서하고 용납했으면 사랑해야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며 행위입니다.


한 번 사이가 벌어졌던 사람과 다시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쉽지 않는 것을 해야 그것이 온전한 모습인데요,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감정으로 하지 않고 의지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그림을 온전하게 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아름다운 그림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인 행동으로 사랑하고, 의지적으로 사랑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예배의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공동체적 예배를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앞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찾고 계시고 이런 자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예배의 중요성이 자꾸만 감소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사소한 일에도 예배를 빼먹고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일 년 예배의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고 열심히 그렸습니까?


지난해에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예배하는 일에 많은 지장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기도 하였습니다만 반대로 예배를 등한히 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코로나를 핑계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온라인예배를 드리기도 했지만 이 예배에 얼마나 올바른 모습으로 참석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올해도 코로나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더욱 단단히 해야 합니다.


예배 없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고, 예배 없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예배 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여 세우는 인생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나머지 단추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배의 첫 단추를 잘 끼우시므로 모든 일이 형통하고 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부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흩어지는 각자의 삶속에서


성도들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하여 먼저는,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여자 배구 감독가운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 한 분이 있는데요,


그 분은 시합이 끝나고 나면 꼭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선수들이 수고했고 감독이 수고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감독은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고 이것이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들과의 차이는 감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사의 생활에서 남에게 본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남들처럼 똑같이 원망하고 절망하고 불평하는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원망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는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감사생활을 할 때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올 한해의 삶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난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육체의 아픔 속에서 고통 속에서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밀레의 만종은 불후의 명화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밀레는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땔나무는 이틀 분밖에 없는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왜 불후의 명작이겠습니까?


물론 작품성이 뛰어나서도 그렇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림 속에 부부의 사랑이 있고 노동의 신성함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영원한 명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21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인생의 도화지에 주님이 원하시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예배가 있고 감사가 있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 최대의 명작을 그려서 하나님께 바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