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오순절 성령강림
본문
사도행전 2:1-13
오순절 성령강림
1.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 충만한 가정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묵상할 성경은 사도행전인데, 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개인뿐만 아니라 각 가정들, 그리고 우리 교회와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이 땅에 40일 동안 머물러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셨고, 승천하신 후에는 살아 계실 때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령이 임한 날은 바로 오순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날에 한곳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날에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그 날이 오순절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시대부터 존재하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3.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하필 그 오순절날에 성령을 보내셨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순절이란 오십 일째를 의미하는데, 구약에서는 초실절 이후 안식일이 7번 지난 후 다음 날이라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렀으며,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면, 초실절은 또 무엇입니까?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유대의 절기는 그 순서에 따라 중요한 구속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는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4. 가장 먼저 등장하는 유월절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며, 유월절 이후의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초실절 이후 50일째에 칠칠절, 즉 오순절이 오는데 이는 교회의 탄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실절을 계산할 때에는 항상 유월절이 끝나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계산을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 다음 날인데, 안식일 다음 날부터 7주가 지나고 나서 그 다음 날, 즉 50일 째 되는 날 역시 안식일 다음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5. 여러분, 안식일 다음 날은 어떤 날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 다음 날, 즉 주의 날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한 주간의 첫째 날이 되는 주일에 모여서 예배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안식 후 다음 날인 주의 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 즉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하는 날이며,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6. 그런데 주일의 근거는 부활에 있기도 하지만 성령 강림에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날이 바로 오순절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역시 초실절부터 계산해서 50번째 되는 날인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초실절에 부활하셨고, 그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강림한 이 오순절 역시 언제입니까? 바로 안식 후 첫 날, 즉 오늘 우리가 예배하고 있는 주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한 마디로 신약시대의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동시에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한다는 것의 신학적, 혹은 성경적 의미를 우리는 분명 알 수 있으며, 예배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절기라는 것, 특히 부활절이나 성령강림주일 같은 절기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실상 매 주일이 부활주일이며, 성령강림주일인 것입니다.
8. 아무튼, 바로 그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강림하셨고, 이를 통해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필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신 것은 이미 구약시대의 절기를 통해서 예비하셨던 일이었으며, 교회란 바로 구약시대의 절기의 순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순서를 통해서 세워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속사의 순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고, 그리고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9.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서 주일은 중요한 날입니다.
성도가 주의 날을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주일은 단지 하루 쉬는 날도 아니며,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날도 아닙니다. 혹은 교회의 직분 때문에, 혹은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가서 예배하는 날도 아닙니다. 정말 구약성경에서부터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죄로부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 주의 날을 자연스럽게 예배의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10.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일어난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오늘날에도 성령의 역사하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를 들어야 하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을 봐야 하고, 또한 방언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성령에 대한 큰 오해입니다. 소위 성령운동이나 은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11.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구속사적의 시간표에 의해 이해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순서대로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순서대로 이루어질 일인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밖에 없는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또 이 세상에 성육신해서 십자가에서 또 죽고, 또 부활하고, 또 승천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12.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강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사건은 구속사의 시간표에 따라 역사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 그 사건 자체가 또 반복되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사의 시간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이미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에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이 세상에 오신 성령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 오시옵소서.”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입니다.
13. 그러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1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때 제자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했는데, 그 큰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가룟 유다 대신 다른 제자를 한 사람 뽑았는데, 그 제자의 자격이 무엇이었습니까? 행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14. 이처럼 제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큰일은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이 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는 베드로 사도가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한 말씀인데, 이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도들이 오순절에 전한 복음의 핵심은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라는 것입니다.
15. 그런데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서 이 복음을 지금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각국에서 온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러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셨는데, 특히 이 디아스포라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도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자들로 하여금 디아스포라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그들에게 예수 부활의 복음을 지금 전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런데 문제는 언어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수백 년 전 구약시대부터 바벨론 등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대인들의 후손들, 혹은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로서, 그들은 각각 다른 15개의 지역으로부터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무슨 수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 언어가 다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비상수단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방언이었습니다.
17. 그러므로 당시의 방언이나 이적과 표적은 그야말로 비상수단이었습니다.
이제 막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비상수단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상수단을 통하여 각국의 디아스포라들은 제자들이 말하는 예수 부활의 복음을 자기들 언어로 다 알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방언의 역사는 제자들이 한 언어로 말한 것을 각국의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처음부터 각국의 언어로, 즉 외국어로 말한 방언의 역사였습니다.
18. 우리가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오늘날에도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은 신구약 성경책이 완성됨으로써 특별계시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시대는 사도행전과 같은 특별한 이적과 표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즉, 오늘날 성령의 사역의 본질은 방언이나 표적, 기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 자꾸만 방언이나 표적, 기사와 이적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성경과 구속사에 대한 오해입니다.
19.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는 성령께서 기적을 전혀 행하시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령님도 분명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기적과 표적을 행하십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성령님의 일은 성령님의 일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사모하고 연습한다고 해서 방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기적이나 표적을 행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이나 표적을 주시면 받는 것이고, 안 주시면 못 받는 것입니다.
20. 예를 들어, 우리가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 나간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선교사 훈련 중에 반드시 언어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 아프리카의 언어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의 역사가 오늘날도 일어난다고 믿고 언어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성령의 능력만 사모하면 정말 외국어의 방언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성령께서는 결코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는 정말 그 나라의 언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21.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시간표에 따라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는 과정에서 이제는 구약시대의 유대인들만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민족도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표시로써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을 이루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성령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심령 속에 거주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2.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2:16-19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3. 이 역시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한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육체는 말 그대로 모든 언어를 쓰는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운동이나 은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정말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늙은이들이나, 남종이나 여종들이 정말로 예언이나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본문의 뜻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제부터의 시대는 누구든지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4.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을 좀 더 현실적으로 말했습니다.
2:38-3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제는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멀리 타국에 있는 디아스포라들, 더 나아가서는 더 먼데 살면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까지도 예수 믿어 구원 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5. 그래서 오순절 강림사건은 구약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의 정반대 사건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기 위한 사건이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높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를 흩어놓은 사건이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오히려 반역한 인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방언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를 통합하는 사건이었습니다.
26. 그렇다고 이 세상의 언어가 정말로 하나로 통일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모든 방언, 즉 모든 언어를 말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들음으로써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루살렘에 살든, 먼 이방 지역에 살든, 히브리어를 쓰든, 헬라어를 쓰든, 영어를 쓰든, 한국어를 쓰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오늘날 성령님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27. 비록 오늘날은 오순절의 방언과 같은 사건은 반복되지 않지만, 오늘날 성령님은 각국의 언어를 통해서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 같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도 정말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정말 성령님께서 오순절의 방언처럼 그런 외국어의 방언을 하게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면서 외국어 공부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불신앙입니다.
28. 그런데 이와 더불어 오늘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 또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더 예수 잘 믿게 하시는 일입니다. 즉,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잘 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순절 당시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았는데, 그들이 구원함을 받은 이후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29. 2:40-42,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또한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30. 이것이 바로 오늘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이며, 우리 성도 입장에서 말하면 성령의 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라고 해서 자꾸만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것을 기대하며, 사모하며, 쫓아다니는 것은 성령에 대해 오해하는 것입니다.
31. 그러나 정말로 성경적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를 기뻐하는 사람, 성도와 떡을 떼며 교제하기를 기뻐하는 사람, 기도하기를 힘쓰는 사람, 그리고 성도와 함께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 성전, 즉 교회에 모이기를 기뻐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기뻐하는 사람, 또 한 가지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올 한 해에 이처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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