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빌립보서 3장 1-16절)
본문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빌립보서 3장 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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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줄 것이다, 보혜사는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다, 그는 보이지는 않지만 너희와 함께 계시고 너희 속에 계실 것이다, 그가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들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요 14:16~26)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성령은 오셨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 곳곳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성령이 강림하시고, 강력하게 역사하는지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가.
① 가장 먼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람들이 함께 모여(11명의 제자들, 여자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의 아우들 포함 약 120명)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것을 믿고,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오십니다. (행 2:1~13)
② 베드로가 성령 받고 설교 하면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이 말을 받은 자들에게 세례를 하ᅟᅧᆻ는데, 그 날에 신도수가 삼천(명)이나 더하여 졌다고 했습니다.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 (행 2:38~41)
③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잡혀가서 복음 전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은 후 풀려나자, 교회의 온 무리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던 중,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 할 때 성령이 오십니다.
④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해지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모인 무리들에게 안수 하자 성령을 잗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세움 받은 직분자(사명자)가 (믿음으로) 안수 할 때 성령이 오십니다. (행 8:14~17)
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아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의 집에서 설교 할 때, 고넬료의 집에 모여서 이 말(설교)를 듣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때 할례 받은 신자(유대인에서 기독교로 개종 한)들이 이방인(고넬료와 그의 가족 등 비 유대인들)에게도 성령이 오심을 보고 놀랐습니다. 집중해서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행 10장)
⑥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주를 섬겨(예배 하는 것) 금식(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는 태도) 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했더니, 선교사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구별하여 택함) 세우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결정)을 구하며 순종의 태도를 취할 때 성령이 오십니다.(행 13:2~3)
성령이 오시는 경우를 알아보자면 끝이 없지만, 여기 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오로지 기도에 힘 쓸 때, / 회개하고 세례 받을 때, /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합심 기도 할 때, / 직분자가 안수 할 때, / 설교 말씀 들을 때, /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에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셨던 것을 알아 보았습니다. 이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성령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역사 이전에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사도 행전을 성령 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내려 오셔서, 예수님이 떠나신 후의 빈 자리를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이든, 성령님이든 근본은 동일한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믿는 것도, 깨닫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복음 전하는 것도, 죄를 물리치는 것도, 회개하는 것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언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도,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했고, 최후 심판 날에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였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성령이라는 의미는 “All or Nothing”, 성령 있으면 다 있는 것이고, 성령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새롭게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능력의 근원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인간이 살아 갈 수 없듯이, 믿는자들은 성령 없이는 단 1초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령은 영혼의 호흡이라고 표현하기에, 성령없는 믿음 생활은 곧 호흡이 끊겨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성령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망과 영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성령 받았습니까? 성령 충만 하십니까? /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이 들리십니까? / 성령의 인도함 받아서 잘 순종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러한 모든 질문의 의미는, “당신이 정말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성령이 이끄시는 데로 회개와 돌이킴의 생활에 힘쓰고 있는지, 성령이 주시는 확신으로 당신의 구원은 안전한지를 늘 점검 하십시오”라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선물인 “구원”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역동적이시고, 능력이 무한 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모든 이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도와 주십니다. 사람을 사람 답게, 교회를 교회 답게 세워 주십니다. “성령과 항상 함께 하는 삶”,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믿음생활일 겁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본문 3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는 말씀인데, 저는 이 제목이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내적인 모습과 외적인 모습을 대표하는 구절이라 생각을 합니다. 말씀을 들으실 때에, 성령께서 나의 믿음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붙잡으시고, 성령께서 나의 구원에 인도자가 되신다는 감동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령이 내적으로 성령 충만하게 된 사람은, 외적으로도 성령의 능력으로 봉사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봉사”라고 한다면, 교회 안에서의 여라가지 일에 대한 봉사, 혹은 교회 밖에서의 전도, 이런 것을 언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과 지혜로 몸(육체)으로 열심을 내라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분명한 선과 후가 있습니다. 몸(육체)으로 일을 하는 봉사는 항상 후순위에 위치 합니다.
3절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NIV-who worship by the Spirit of God) 이 부분이, “성령으로 인해(성령을 의지, 성령을 이용하여) 예배드리는 사람(worship 하는 사람)”, 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원어(헬, 라트류오)의 의미도 ‘경배한다’는 뜻인데,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중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씀이 바로 이 워십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한글 번역이 ‘봉사’로 되어 있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행동을 가장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예배 드리는 시간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 드리면서 세상의 것을 끊어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결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에 진정한 화목의 관계가 이루어져서 믿음(신뢰)으로, 사랑으로, 은혜로 하나되는 일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모든 사람을 예배에 실패하게 만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 성도 들에게 가장먼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예배)하라”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2절에서 보시면, “개들(마 7:5, 거룩한 것을 개애게 주지말라), 행악(악을 행하는)하는 자들, 몸을 삼가는 일(육체 할례)을 삼가라” 라고 했습니다. ‘삼가라“ 단어의 의미는 “내가 보고 있다(헬, 블레포)”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봅니까? 더럽고(개들), 사악하고(행악), 거짓말하고 외식하는(할례) 자들의 언행들을 성령이 열어 주시는 마음의 눈으로 정밀하게 관찰해서, 죄가 죄됨을 재빠르게 인지하고, 자각하고, 분별하고, 물리치라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죄의 실상을 낱낱이 볼 수 있어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얼만큼 쌓이고 있는지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들을 ‘삼가라( Watchout, 경계하라, 주의 하라, 조심하라)’고 말한 것은, 이런 사람들과 접촉하는 순간, 예배를 드리던 거룩한 모습, 은혜를 받았던 감동의 순간, 말씀 대로 살겠다는 굳은 의지들이 다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열심히 드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예배 시간 이외에, 나의 삶의 자리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개들, 행악자들, 할례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에 따라 다르게 나타 납니다. 이것들을 단호히 물리친다면, 곧 예배의 성공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들과 어울려서 하나가 되면, 곧 예배의 실패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예배)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죄악을 바라보라, 삶의 자리에서 항상 예배자의 거룩한 언행을 유지하라는 당부와 권면의 말씀입니다.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디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해지지 않은 나만의 삶의 시간이 훨씬 더 많고, 복잡하고, 다양한 조건들이 주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 각자, 각자가 승리 할 수 있도록, 우리는 교회 공동체 예배에서 함께 모여 전심으로 예배 드리면서, 볼 수 있는 능력, 이길 수 있는 능력, 삶의 예배자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한 주간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가운데, 시시 때때로 죄와 유혹과 시험을 뚜렷하게 보고, 분별하고, 물리 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더 많은 예배, 더 중요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충만한 가운데, 언제, 어느 곳에서나, 거룩한 언행, 겸손한 자세, 흐트러지지 않는 고귀한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키면서,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예배자로 매일 매일 성공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성령이 내적으로 충만하게 된 사람은, 외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로 자랑하며 살아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1~16절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곧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왜 의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믿음에 대한, 그리고 나의 신앙생활과 구원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많아지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다 신앙의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성령 받았는데도, 왜 나는 믿음이 맨날 그대로인가? / 왜 나의 인격과 품성은 조금도 변화되지 못하고 있나? / 왜 나는 은혜로 구원 받았음에도 감사함이 없고 늘 부족한것만 생각이 날까? / 왜 나는 회개하고도 바보 같이 같은 죄를 반복하며 짓고 있는가?, / 이런 고민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내 양심을 계속 두드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진짜 믿음이 없고,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고민조차 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토록 부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일생 일대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들 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유가 ‘육체의 자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도 육체의 자랑거리를 생각할 때, 다른 사람 보다 훨싼 더 많은 자랑거리가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바울 스스로가 말한 그대로 그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이른바, 가문과, 혈통에 있어서 가히 성골 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은 가말리엘 이라는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의 문하생을 지냈습니다. 지식 수양에 있어서도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거기다, 교회를 열심히 박해해서, 정통 유대교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바울이 만약 유대인으로 계속 살았다면, 그는 어디 가서 무엇을 자랑해도 하나도 꿀리지 않을 만큼 최고의 스펙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지닌 자랑할 만한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썩어질 육체의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이러한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백의 말 그대로, 세상에 나가서 자기의 머리에 있는 지식이나, 언변이나, 글 재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지시하는데로 몸을 움직였고, 성령이 감동 주시는데로 설교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육체를 자랑할 만 했지만, 오히려 자기 육체의 자랑은 쏙 빼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자랑한 인물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이 믿는 사람에게 역사하게 되면, 자기 자랑은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 그리도 안에서 자랑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최고로 높임을 받도록 일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받았지만(의인이라고 칭함을 받게 되었지만),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목표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 되어서, 목표를 향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심의 상을 주실 때까지 계속해서 달려가겠다 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뚜렷한 외적 표징이 나타나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자랑을 멈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랑(증거) 하는 것이고,
둘째는, 목표(구원)를 향해서 부르심(영생의 인정을 받는 심판의 그날)의 음성이 있을 때까지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복음전도 사명 충성)입니다. 이 두가지에 일생을 바친 바울이기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열심을 다한 나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로 인해 의인이 되었음에도,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이 되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음을 보고 심히 안타까워 했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자기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4), 무섭게 경고하는 말씀도 남겨 놓았습니다.
왜 나는 신앙의 모습이 여전히 이모양 이 꼴인가?에 대한 고민의 이유는, 바로 아직도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자랑이 되는 일이 우선하는 것 보다, 내 육체의 자랑 거리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상적인 일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자랑거리들,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욕심 때문에, 이익 때문에, 이런 이유들을 전부 앞세우고 예수님의 이름을 뒤로 숨겨 놓는 사람은 성령을 무시하는 사람이요,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받아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앞세우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성령 받은 사람이 가야할 유일한 길 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내적으로는 봉사(예배) 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고, 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방향으로 점점 진행되어 나갈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점점, 예수 이름을 힘 입어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로 우뚝 서게 될 것이고, 예수 이름을 앞세워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과는 순종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았음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성령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은, 성령 받기를 사모하며, 성령 주심을 확신하며, 다시 기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믿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 안에 성령이 와 계심을 조금도 의심 하지 마시고, 항상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 하시도록 요청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무엇 보다도 성령을 근심시키면 안 됩니다.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게 되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교회들이 강력한 부흥성장의 역사가 얼어났고, 성도들이 믿음으로 굳게 세워졌던 것처럼, 00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함의 은혜가 내려져서, 강력한 믿음의 내적회복과, 교회 부흥 성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방향대로 순종하며 나아가셔서, 거룩한 예배자로, 충성된 사명자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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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고아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 곁에서 항상 함께 하시며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에배하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으로 전도하는, 칭찬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 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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