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성령 충만한 사람
본문
성령 충만한 사람
욜2:28-32, 행7:54-60
미국의 어느 큰 회사에 사장의 돌연사로 갑자기 후임 사장을 뽑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이사회에서 파격적으로 30대 청년 사원을 그 능력을 인정해서 사장으로 발탁해서 세우게 되자 이 청년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크게 기뻐했고, 모든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업무를 시작하면서 사장 자리가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회사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고, 회사의 실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수많은 직원들에 대한 인사 문제도 처리해야 하고... 점점 스트레스를 받으며 염려와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결재 서류에 사인할 때 손까지 떨리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는데, 의사가 한 목사님을 소개하더랍니다. 그래서 찰스 알렌이라는 목사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청년 사장에게 처방을 내 놓았습니다. 하루에 약을 다섯 번씩 먹고 일주일 뒤에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 처방 약이 시 23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리고 잠자기 전에 한 번씩 읽으라는 것입니다.
이 청년 사장이 약속대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루하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손 떨리던 것도 사라지고 불안도 사라지고... 일주일 뒤에 목사님과 다시 만나서 이 청년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6) 그렇습니다. 우리가 출세해서 사장이 된다고, 연봉이 높아진다고, 남다른 유복한 환경 속에 있다고, 남이 누릴 수 없는 쾌락을 누린다고 우리 삶이 풍성해 지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풍성해 지고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난 인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아서 물질, 명예, 권세, 세상 연락 등으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으면 환경을 초월한 만족함이 있고, 풍성함이 있고, 장래의 소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너무 값진 선물입니다.
구약 본문 욜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29절에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성령께서 본격적으로 사역 하실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사는 모습을 보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인간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영을 거두어 가신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을 버리고 떠나신다는 저주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진노가 홍수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요, 파격적인 은총의 약속인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물론 구약 시대에도 성령께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 함께 사역 하셨지만 구약 시대에는 주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 두드러지고, 신약 시대에는 성자 예수님의 사역이 주류를 이루었고,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다른 보혜사인 성령께서 주로 사역을 이루신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은 함께 이루어 가시지만 주요 역할을 굳이 나눈다면 성부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속죄와 구속의 사역을, 성령 하나님은 성부, 성자의 사역을 진리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믿게 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외케 하는 사역을 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속 사역을 이루실 때 서로의 분담 사역이 조화를 이루며 완성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의 사역도 너무 귀한 것이지만 성령의 사역 없이는 구속의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마7:11에서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셨고, 같은 내용인데 눅11:13에 보면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들이 많은데, 무엇보다 성령께서는 거듭나 새 사람이 되게 하여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고후 5:17 말씀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고 하셨습니다. 요3:8을 보면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 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을 생령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을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생령이란 바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뒤에 이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회복이 되고 영적 생명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진 선물인 성령 충만의 은총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2.성령 충만은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은 성령 충만한 집사로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었으나 한 알의 밀알처럼 되어 복음의 열매를 맺고 순교자로서 영광스런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유대인들의 위협과 온갖 회유에도 변치 않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성령 충만 하게 되면 믿음의 승리자가 되는데, 그 까닭을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에게서 몇 가지 요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담대한 믿음으로 이깁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셨습니다. 요일5:4-5에 ‘세상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군중 들이 모여서 돌을 들고 치는 상황을 당하여도 그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을 향하여 담대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 하게 되면 성령께서 권능을 주시므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박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앙의 선배들 중에는 일재 시대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널 판지에 박아놓은 못 위로 걸어가면서도 그 신앙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음에 말씀의 검으로 이깁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말씀으로 충만케 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엡6:17)으로 성도의 무기가 되어 대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말씀으로 충만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스데반의 말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금식 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의 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하여 말씀으로 충만하면 아무리 이단자가 미혹하여도 말씀만을 믿고서 말씀을 중심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잘못됨이 없고 바른 신앙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로 이깁니다. 성령 충만 하면 예수님을 사랑 하게 되고, 주님으로 충만 해 집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의지 하거나 권력을 의지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것 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미혹하는 그 어떤 것에도 미혹 되지 않고 예수님만 의지 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발자취만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다른 길이 없음을 믿고 오직 예수님을 의지 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본문 행7:55-56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으면서도 하늘이 열리고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니 얼마나 힘이 되었겠습니까?
이처럼 성령 충만한 스데반을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스데반처럼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단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한번은 무디가 설교를 듣는 교인들에게 이 컵에서 어떻게 공기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뺄 수 있는 지를 질문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기 펌프로 빼면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무디는 "그렇게 하여 진공이 되면 컵이 깨집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많은 빗나간 대답들이 있은 후 무디는 미소를 지으면서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자 보세요. 공기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할 때 설교자 무디는 그리스도인이 생활에서 공기를 빼려고 하듯이 죄를 제거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짐으로 죄를 제거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성령 충만한 자에게 보여 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스데반이 당한 상황은 누가 보아도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불안, 염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향하여 갖가지의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다른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본문 60절에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했습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저주 하는 대신 사랑으로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스데반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자기를 못 박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하면 예수님을 닮게 되고, 주님처럼 사랑으로 용서하는 자가 됩니다.
*또한 스데반은 남이 보지 못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구약 본문 욜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했는데, 스데반은 남이 보지 못하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신약 본문 행 7:55-56에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했습니다. 그는 하늘이 열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신령한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도 하시고, 이상을 보게도 하시며,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요엘서에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했습니다. 이는 성령이 임하시면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믿음으로 장래의 일을 말하며,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며, 나아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내다보고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여러 면에서 주님을 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 하시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 하나이다.’(눅23:45) 하신 것처럼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주님 품에 안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스데반처럼 주님을 전하다가 죽는 것은 내세를 믿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것 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내세를 바라보는 성도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스데반은 순교자의 믿음위에 세워진 신앙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순교의 흔적은 지워 지지 않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순교자 스데반의 흔적은 세계의 복음화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순교자 스데반 이라고 호칭 하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신앙은 우리의 후손을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하나님의 능력 속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인도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영광의 모습은 많이 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서 그 순교의 현장에서 책임을 지며 보증인이 되겠다고 한 사울은 많은 유대인들이 겉옷을 벗어서 이 청년에게 던졌는데, 주님께서는 그 사울을 다메섹에서 부르시고 이방의 사도로 정하시고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 까지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었습니다. 기독교 백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세계의 제일가는 기독교 국가가 된 우리나라의 신앙의 축복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의 순교자의 흔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순교자의 최후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이란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복음을 전하다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음을 내다보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딤후 4:7-8)고 했습니다. 이처럼 순교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보장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를 영접하여 주시는 영광이 있습니다. 본문 56절 말씀에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는 말씀의 이면에는 서서 순교자를 영접하실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로부터 외면당하는 자들도 있고,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들도 있고, 천사들의 환영을 받을 자들도 있고, 예수께서 친히 마중 나오셔서 기쁨으로 얼싸 안고 영접을 받을 자들도 있는데, 성령 충만한 스데반 역시 주님의 뜨거운 환영을 받을 자의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런 영광을 보는 눈이 있기에 순교를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꺼이 순교에 임합니다. 로마 도미티안 황제 때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이그나티우스는 짐승에 물려 몸이 찢기면서 순교 당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잡혀가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요 동역자인 친구 폴리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타협하지 말라. 내가 놓이기를 바라지 말라. 나는 한 알의 밀 씨가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벌당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십자가에서 짐승의 이빨에 뼈가 가루되고 손과 발이 잘리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 고 말하며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한 모습을 보이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합니다.
성령 강림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너무 값진 선물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 보여 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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