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첫 성탄절에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 (이사야 9:6~7, 누가복음 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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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성탄절에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 (이사야 9:6~7, 누가복음 2:22~40)
우리가 성탄절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하는데, 그 말은 그리스도와 미사(Mass)가 합성된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따라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매년마다 맞이하는 성탄절은 우리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절기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대로 보면,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예배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성탄절에 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전하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경배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가 성전에 올라갔을 때, 거기에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이심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들이 바로 첫 번째, 크리스마스 공동체였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그리스도를 예배한 첫 번째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크리스마스 공동체 사람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방인이 있는가 하면, 성전에 머물며 일생을 경건한 생활을 한 유대인도 있었으며, 율법을 알지 못한 채, 그날그날 가난하게 살아가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구태여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은 나름대로 무엇인가 이 세상의 역사를 변화시킬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경배하게 된 것은 각각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신기하고 이상한 별을 보고 찾아왔으며,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으며,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나 이들이 경배한 그리스도는 한 평범한 아기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에게 어떤 특별한 모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상상대로 그의 얼굴에 빛난 광채가 났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평범한 갓난아기를 보았을 뿐이었지만, 그러나 이 첫 번째 예배자들은 그 아기를 보고서 경배하고 기뻐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아기 예수가 나타내는 어떤 기적과 이적을 본 것도 없었으며, 그가 말씀하는 어떤 교훈을 들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아기가 그리스도 예수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들은 한 보잘 것 없는 아기에게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를 영적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 자기들의 삶에 당장 미치는 어떤 구원의 확신이나 사명, 그리고 축복을 보장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령 충만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크리스마스 공동체의 신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오늘 제목의 핵심인 ‘첫 크리스마스 공동체’에서 행하였던 여러 주인공들로부터 꼭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이 세상 모든 교회와 믿음의 성도들도 첫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을 선포할 때, 이 말씀 속에는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깨달아 알아들을 수가 있음을 아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은혜의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그들의 예배는 이기심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들 첫 번째 예배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그들의 예배에 전혀 이기적인 동기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면서 받은 외적인 혹은 물질적인 보상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동방의 박사들은 비싸고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먼 곳에서부터 오느라고 많은 고생과 수고들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여행을 위하여 적지 않은 경비를 들였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별을 따라 2년여에 걸친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여행을 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먼 시간 동안 여행한 끝에 아기 예수를 찾았으며, 그러한 기쁨으로 아기 예수에게 귀한 예물을 바치며, 경배를 드리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마음으로 이익을 바라는 타산적인 눈으로 그들의 행위를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들은 조금도 이를 후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앞에 나타난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보람 있고 흐뭇한 순간으로 베들레헴 여행을 기억하였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멋진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게 비교해 보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의 그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처럼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다만 그들 앞에 별이 빛나기 때문에 무조건 그 별을 좇아 나섰던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동방박사들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일생을 바쳐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나같은 여자는 과부된지 84년이라고 하였으니까, 어림잡아도 아마 백세가 넘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기 예수를 보는 순간에, 이제까지의 그들의 삶의 목적이 바로 그 아기에게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노래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기 예수를 보기 위하여 일평생을 기다린 이들의 예배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귀한 경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이들의 예배에는 복을 받는다든지, 자기의 개인적인 소원을 이룬다든지 하는 이기적인 동기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한 번의 경배를 위하여 일평생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모험과 고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그들은 준비를 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야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진 아름다운 예배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는 저나 여러분들 모두가 이러한 진실한 믿음의 준비된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너무나 이기심과 오만과 자격지심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축복을 기대하며, 자기의 이기적인 소원의 성취만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눈이 어둡고 귀가 먹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한 믿음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진정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거나 떠난 거짓 종들에게, 즉 사탄의 먹이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의 탐욕으로 얼룩진 얼굴이나, 무감동한 무표정의 얼굴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심령들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첫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런 예배의 태도외 습성을 바꾸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 심령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의 생애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낌없이 헌신하여도 아깝지 않은 참된 예배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매일매일 지속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항상 준비된 예배를 통하여 정성을 드린 예배,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 또한,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온전한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찬송을 부를 때, 감격의 눈물로 부르게 되며, 간곡한 눈물의 기도를 올리고, 말씀마다 아멘으로 응답하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처럼 이들이 드렸던 예배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저와 여러분들도 항상 이러한 심령으로 참된 기쁨의 예배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첫 번 크리스마스 예배자들에게서 우리들이 배워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같이 한 아기에게 경배하였다는 점입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닌 아기 예수님을 향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령께서 부어주신 영적인 능력에 힘입어 아기 예수에게서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고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그동안 감추어진 하나님의 미래를 성령의 역사로 알아보고 기쁘고 즐거운 심령으로 경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본 중에 한 주인공인 시므온의 노래에서 그의 신앙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즉, 그가 본 것은 평범한 한 아기였지만, 그는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함께 성전에서 예수를 본 안나도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안나는 이 아기가 바로 예루살렘의 구속자가 될 것임을 계속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목자들도 마굿간에 태어난 한 아기가 그리스도 주가 되심을 믿고, 그에게 가서 경배를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그들은 평범하고 연약한 아기 속에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능력의 그리스도를 천사의 인도하심으로 뵈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그들은 말구유에 누어있는 평범하고 연약한 한 아기로만 보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경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본문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의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그 이전에 하늘로부터 특별한 계시가 있었습니다. 박사들에게는 빛나는 별이 있었으며, 목자들에게는 천사들이 나타났었으며, 시므온이나 안나에게는 성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찾아온 세 박사만이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별은 누구나 볼 수 있게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그 별의 의미를 알고 그곳을 찾은 사람은 세 사람 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인 줄 아시겠습니까?
또한, 천사들의 노래도 넓디넓은 광야의 밤하늘에 널리 울려 퍼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아주 소수의 목자들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역사하시는 분이신데, 경건하게 일생을 바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에게만 성령이 감동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믿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별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 같은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밤하늘의 별보기를 잊은 지가 오래 될 것입니다.
옛날의 시골 아이들처럼 도시의 어린이들은 여름밤 멍석 위에 누워서 별 하나 나 하나의 꿈을 헤아리는 낭만을 전혀 알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밤하늘의 별이 주는 낭만과 꿈을 잊어버린 채, 그리고 그 별자리들이 이동하며 보여주는 우주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육신적인 삶에만 얽매어 영적인 삶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영적인 통찰력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짐작이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육신의 쾌락과 안목에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도 여러분!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한 밤중에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은 자기 집도 없이 떠돌며 양을 돌보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천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일찍이 이 육신의 사회에서 명예와 부귀, 그리고 쾌락에 대해 미련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생을 드넓은 광야의 나그네로 떠돌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각박한 삶을 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드넓은 광야의 메마름이 도시의 각박함보다는 견디기가 쉬웠으며,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머물 수 있는 광야의 자유로움이 도시의 온갖 속박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도는 광야에서는 도시의 아귀다툼이나 중상모략 같은 것들이 없었기에 그들의 삶은 항상 여유가 있어서 순박하여 더럽고 추악한 도시의 때가 전혀 묻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도시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락한 삶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드넓은 광야에서의 거친 삶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도시가 줄 수 없는 광야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드넓은 광야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만 40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특히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 되었기에 광야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본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바로 이런 광야의 영성에 이끌려 그곳을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이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복잡한 베들레헴 도시의 하늘이 아니라, 막힘이 없이 온들판이 확 트였으며, 태초의 정적만이 깃든 드넓은 광야의 하늘이야말로 천사들의 합창을 듣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드넓은 광야의 영성에 익숙한 목자들에게 천사들의 소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들의 귀에도 그러한 소리가 들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소리를 믿었기에, 곧장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아기를 보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믿고 그를 찬미하며 다시 광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들은 무식한 목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영적인 감각은 무디지 않아 이스라엘의 그 어떤 종교 지도자들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고, 그 구원의 미래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성경의 인물난을 살펴보면, 시므온이란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면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던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던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찰하고, 그 역사를 기다리며,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한 거룩하고 복된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도 이들 첫 예배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영적으로 굳건히 무장하여 이들과 같이 내일을 바라보는 분별력 있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육신의 세상에 미련을 두고, 거기에 얽매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보는 신앙과, 하나님의 나라만을 의뢰하는 신앙,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영적으로 체험하며 그것을 따라 살아가려는 신앙, 썩어 냄새나는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드넓은 광야의 영성과 자유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신앙이 있을 때,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오늘의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미래의 빛을 볼 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광의 미래를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정말로 귀한 보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내게 아무 것도 없다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면서,
평범한 아기로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낮고 낮은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온전한 기쁨으로 영접하므로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더욱더 확고하게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첫 크리스마스 공동체의 사람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각자 처소로 돌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어떤 물질적인 축복과 자신들의 문제들을 해결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으십니까?
이러한 기쁨과 환희야말로 이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값으로도 따질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한 이들은 그 어떤 값진 보배를 선물로 받은 것보다도 더 큰 선물을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를 만난 은혜를 소중히 여긴 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이러한 영적인 은혜를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의 영혼의 눈과 귀가 온전하게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기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탄생하셨는데도 우리가 보지 못하였으며, 보았어도 거기서 진정한 은혜와 은총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은혜와 은총을 진정으로 사모하지 않았으며, 인내하고 기다리며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첫 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 그리고 성전에 거하던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그러한 신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진정한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게끔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기심과 욕심으로 성스러운 예배를 오염시키는 행위를 중단케 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들 모두도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겸손히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문명이 썩는 도시를 떠나 드넓은 광야의 영성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땅만 바라보며 살던 육신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하늘의 별들을 보며,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는 꿈꾸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한 성탄절의 기쁜 소식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비우고, 항상 준비된 분들에게만 보여지고, 들려지며, 성령의 기쁨으로 전하여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심령 속에 영접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사모하면서, 항상 쉬지말고 기도하며 경건한 영적인 삶에 힘을 써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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