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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 /창세기14;1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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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 /창세기14;18-20


1,000억원 짜리 강의


 


어느 대기업의 성공한 CEO께서 어느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학생과 교수님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강의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1,000억원!”


그리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재산이 아마 천억 원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제가 부럽습니까?”


“네!”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그는 웃으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이렇게 많은 부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1,000억 원 중에 첫 번째 0은 바로 노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믿음입니다.


세 번째 0은 관리입니다. 이것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1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1은 건강과 사랑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1을 지우면 1,000억이 어떻게 될 수 있겠습니까?


바로 0원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아무리 노력하여 돈을 많이 가졌지만, 건강과 사랑이 없다면 바로 ‘0’이 되는 인생(人生)이 되고 맙니다.”라고 강의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에게 1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만 계신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께서 성탄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0입니다.


오늘은 우리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오늘, 성탄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복되고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P4


 


보편적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를 구분하는 시점을 예수님의 탄생연도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기원전을 BC(Before Christ)라고 부르고, 기원후를 ‘주의 해’라는 라틴어 Anne Domini를 AD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은 기원후 1년, AD1년에 태어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예수님은 BC4년에 태어나셨다.


역사학자들이 로마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해는 AD1년이 아니라 BC4년에 태어나셨음을 밝혀내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BC4년에 태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바벨론전통종교에서 12월 21일 동지를 지나서 25일이 되면 태양신이 소생하는 날로 지켜오던 날이다.


이에 로마카토릭교회가 태양신이 소생한다는 12월25일을 에수님께서 탄생하신 날로 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12월25일에 태어나신 것처럼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예수님께서 12월25일에 태어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예수님께서 BC4년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늘 아버지만이 아실 뿐이다.


예수님께서 몇 월 몇 일에 태어나셨는가 하는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악된 세상에 태어나야만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만 되었고,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죄악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 부활하셨다는 기본적인 구원의 진리가 확실한 증거라는 사실이 중요한 진리이다.


갓난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신성(神性)과 사람이신 인성(人性)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다.


인류의 구원자, 구속자, 메시야,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3직을 가지신 분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인카네이션(Incarnation)하여 태어나신 분이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3직은 선지자와 대제사장과 왕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은 일반제사장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으로 오신 분이다.


 


그러면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사람의 옷을 입혀서 보내주셨을까?


하늘 아버지는 왜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옷을 입혀서 보내 주셔야만 되었을까?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황손으로 보내주시지 않고 매우 약하디약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그것도 다윗 왕가의 몰락한 요셉의 집안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D4.


 


①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빚어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면서 생령이 되게 하신 최초(最初)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죄악을 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징계하시면서 동시에 사단의 입노릇을 하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 뱀에게도 징계하면서 창세기3:15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뱀을 이용한 사단에게 징계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사단이 여자와 원수가 될 것이고, 동시에 사단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될 것이고, 여자의 후손이 사단과 그의 후손들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대신에 사단과 그의 후손들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면서 고통, 고난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3;15의 말씀을 원복음 또는 원시복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최초의 복음이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음으로서 뱀과 뱀의 후손 곧 사단과 사단의 후손들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단의 일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시고, 십자가를 통해서 사단의 머리를 밟으시고, 사단의 일을 멸하시고, 마침내 사단을 지옥 불 못에 쳐넣으면서 심판과 형벌을 주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만 하는 예수님은 실제로 남자의 아기씨를 받아서 태어나지 않는다.


아직 혼인하지 않은 마리아의 몸에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잉태시켜주시면서 태어나게 되면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된다.


성탄절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여자의 아들로서 사단과 죽음과 죄악의 굴레에서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사단의 권세들, 죄악의 권세들, 죽음의 권세들을 심판을 선포하신다.


성탄절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들, 어둠의 권세들을 심판하여 우리 신앙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신다.


 


② 대제사장으로 오시는 예수님.


 


언약의 조상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서 소돔과 고모라성으로 이주한 롯의 일행들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서 발생한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참사를 당하게 된다.


롯의 일행들이 전쟁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 3형제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롯의 일행들을 구해낸다.


롯의 일행들을 구하여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찾아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18-20절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멜기세덱이란 사람은 살렘 왕이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멜기세덱을 히브리서7:1-3에서도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라고 멜기세덱에 대하여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계에 실제적으로 나타났다고, 그것도 언약의 사람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직접 찾아오셨다고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대제사장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말씀이다.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0일에 진행되는 대속죄일, “욤기푸르(Yom Kippur)”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서 속죄하는 일을 감당한다.


그런 후에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를 한 후에 일반 제사장에게 맡겨서 유대광야 끝으로 끌고 가서 낭떠러지에 있는 뾰쬭뾰쬭한 바위에 집어 던져서 죽게 만든다.


대제사장이란 직책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간 그 염소가 죽음으로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선포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포하면서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의 사역을 감당하러 오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일반적인 한 나라나 족속의 왕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그돌라오멜의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포획한 전리품들 중에서 10분의 1, 곧 십일조를 택하여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서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향하여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어린양의 사명을 감당하는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민수기6;24-25절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면 27절에서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나님께서 확증하시고 계신다.


우리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신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 많은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권속들에게 하늘 아버지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이루어지는 기적들이요 생명의 말씀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자격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과 권세를 지니고 계신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인간의 모든 죄악들을 용서하심으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칭해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0.0001의 죄가 있어도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에는 100% 죄가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인간들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곧 나의 죽음이라고 믿는 믿음으로 모든 죄악이 100% 완벽하게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성탄하여 우리들에게로 찾아오신 분이다.


 


③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멜기세덱을 살렘 왕, 의의 왕, 평강의 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shalom)이라는 단어는 “살렘(Shalem)”이라는 동사형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샬렘이란 동사형의 의미는 ‘완전하게 하다. 완성시킨다.’라는 뜻이다.


평화, 평강, 의는 두 사이를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 온전한 하나가 이루어지는 일이다.


멜기세덱이 살렘 왕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평강의 왕, 평화의 왕, 의의 왕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머무실 여관방 하나가 없어서 허름한 나귀들이 머무는 곳에서 태어나서 나귀 구유에 뉘었을 때, 하늘의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복음2;10-12).”라고 선포한다.


그러면서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2;14)”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천사들이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9:6-7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평화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신 분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 평강은 세상에서 말하는 수준이 아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평화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평화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심은 하나님의 나라 곧 신령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평강,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요 평화의 나라요 의의 나라이다.


그야말로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가 평강의 나라, 평화의 나라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분이다.


사단의 권세, 죄악의 권세, 죽음의 권세, 연약한 육신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이기심으로 이루어지는 평화요 평강이요 의이다.


우리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육신의 수준을 벗어나서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평안, 평화, 평강을 주시는 것이다.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 하나님 아버지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절대적인 평안을 우리 신앙인들의 심령과 가정과 생업 터전에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L4 & B4.


 


오늘은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갓난아기의 몸으로 태어나심을 축하하며,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으로 우리들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와 영광을 누리게 되는 날이다.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가정과 생업터전과 자녀들과 주님의 몸된 교회와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한민족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풀어주시길 소망한다.


 


그렇다면 2020년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아기 예수님을 축하하며 하늘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①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 마음과 심장에 뜨거운 피가 흘러넘치듯이 우리들이 예수님의 심장을 품으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품고 사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피가 살아있지 않다면 우리들은 살아갈 수 없다.


우리 육신에 죽은 피, 사혈이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면 그 사혈로 인하여 혈관이 막히게 되고, 질병이 생겨나게 되고, 그 질병으로 인하여 심각한 상태에까지 도달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죽은 사람, 시체는 따뜻했던 온기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지고 굳어지면서 단단한 흙덩이가 되고 만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업을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고, 들어 올릴 수도 있지만,죽은 시체는 너무 무거워서 업을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고, 들어 올릴 수도 없어서 서너 명이 함께 들어야 겨우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워진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죽은 피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예수님의 피와 마음과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을 품고 있지 않다면 우리들은 신앙인의 자격을 상실하고 빼앗겨버린 죽은 자에 불과하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여 팔팔 끓어오르는 예수님의 마음과 심장을 품고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


 


②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평화라고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드렸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 전체,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꿈과 인격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않은 것이 있던가?


우리 인생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것들, 숨 쉬는 것에서부터 잠자는 것까지, 병들고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 안에서 이루어지는 필연적인 일들이다.


그러기에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드리며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성탄절 전후가 되면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빨간 옷을 입고 이상하게 생긴 털보 할배를 비롯하여 온갖 나그네들이 주인 행세하는 세상으로 돌변하고 만다.


이에 신앙인들조차도 현혹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조차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2:15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라고 신신당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옳게 분별하여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받는 신앙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다시 한번 우리들 자신을 돌이켜보자.


성탄으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고 충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우리들 스스로 질문해보고 이에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정말 성탄의 주인공은 갓난아기로 연약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 주님, 예수님이 맞는가? 라는 질문 앞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예수님이 성탄의 주인공이 되어 그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당당하게 신앙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성탄이 어쩌고 저쩌고, 연말인데...이러니저러니, 이러쿵저러쿵’ 이라고 떠들면서 마치 자신들의 세상이나 되는 것처럼 온갖 추태를 다 보여준다 해도 우리 신앙인들만큼은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고 고백다운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앞에 당당하게 “아멘, 예, YES”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다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추슬러서 오직 주님을 향하여 주파스를 맞추어보자.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살 수도 있다.라고 심지가 곧은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보자.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 한 분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과 진배없다는 확신에 찬 간증을 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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