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우리의 연수(송년)
본문
우리의 연수(송년)
시편 90:10
오늘은 금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로 예배드린다. 앞에 있는 새해를 바라보면서 지난 한 해를 깊이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며 혹시라도 나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 앞에 진실을 묻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다른 사람이 잘 못 된 것 까지도 내 탓이 아닌가하고 돌아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옛날 에스라선지는 에스라서 9:6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라고 나라의 어지러움을 놓고 기도했다. 그는 선지자로서 자기의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렇게 되었다고 책임을 통감하며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즉 백성들을 대신하여 자복하는 기도다.
어떤 일의 성공을 위해선 몇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➀ 자본이며 ➁ 지식이며 ➂ 경험과 노력 ➃ 지도력 ➄ 협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 택한 본문은 우리의 날을 계속하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영국의 문호 섹스피어 曰“사람마다 자기 나이를 바로 세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자기 나이에 곡 알맞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귀하다는 듯이다. 사실 나이 많은 사람이 항상 젊었던 시절만을 생각하고 나이 값을 못 해도 걱정이고, 젊은이가 마치 인생을 다 산 것처럼 겉늙어도 문제다. 자기 나이에 알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지혜 중에서
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➁ 하나님 안에 있는 자기를 아는 것이고
➂ 주어진 시간을 아는 것이다.
현재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나의 날을 바로 헤아릴 줄 아는 것은 굉장한 지혜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 지혜를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시간은 돈이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돈보다도 훨씬 더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➀ 돈은 저축할 수 있지만 시간은 저축할 수가 없다.
➁ 돈은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가 불어나지만 시간은 이자가 없다. 일하든 안하든 시간은 지나간다.
➂ 돈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은행에서 대출해 쓸 수 있지만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엄정한 것으로 사람이 거기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즉 사람이 마음대로 시간을 요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좀 주십사고 부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부탁임을 알아야 한다. 즉 내 생명의 일부분을 그를 위해 떼러주는 것과 가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이다. 얼마나 귀중한가?
시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이요 또 하나는 피조물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무엇으로부터 연유되지 않고, 도한 무엇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 영원한 시간이다. 지구가 돌아가든 말든 하나님의 시간은 온전하고 영원하다. 내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있고, 내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히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초월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피조물의 시간의 특징은 그렇지 못하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한해서 주신 단절된 시간이다. 즉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마치 임산부가 열 달이 되면 해산할 때가 가까워 옴을 아는 것처럼 우리는 제한된 한계를 짐작하고 있다.
例: 이 자리에 있는 사람 80 년 후에도 있겠는지?
지금 우리는 죽음을 향해 야금야금 시간을 먹어가고 있다. 즉 우리들의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다. 여러분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기에 끝만 남아 있다. 끝이 있음을 분명히 알자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 시간의 단절에서 구원받을 길 이 없다. 그리고 피조물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과거는 현재에 밀려나고 현재는 미래에 의해 밀려나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항상 생명에서 소멸로 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쓴 기도문이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다가 죽었다. 사람은 생리학적으로 120세 정도를 살아야 정상이란 이론이 있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기구했다. 애굽 바로 궁에서 공주의 아들이란 신분으로 40년을 살게 된다. 사실은 나일 강에 버려질 때 이미 모세는 죽었는데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래서 모세는 은혜로서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 후 그는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살게 된다. 이것 역시 은혜의 생활이다. 살 수 있을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마땅한 그가 산다. 그리고 나이 80에 호렙산 기슭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40년을 산다. 이것 또한 전적인 은혜다. 그래서 모세는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간증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그의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몇 가지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➀ 3절에 “돌아가라” 즉 인생의 한계를 말한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120년을 살아보아도 한계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돌아가라 하시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이다. 이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으므로 티끌로 돌아가라 하시면 돌아가야 한다.
➁ 모세는 시간이 신속히 지나간다고 말한다.
10절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다. 참으로 시간은 신속하게 날아가듯 흘러간다.
그리고 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사람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에 비추면 아무 것도 아님을 말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➂ 모세는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고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모세가 자기 일생을 뒤돌아보니 자랑보다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많이 살아왔다고 말한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은혜롭고 감격스럽고, 찬송하는 시간은 잠깐일 뿐, 죄 짓고 진노로 매 맞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 하였나이다”고 고백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을 주실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양하면서 그 은혜에 감격하며 살라고 주셨는데 그렇게 보낸 시간은 극히 짧고 그릇되이 보내어 매 맞고 진노 속에서 더 많이 살았으니 대단히 죄송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생각을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 싶으나 벌써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어느 결에 120세가 다 지나갔다.
모세는 정말 매를 많이 맞았다. 그는 마지막에도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느보산에서 눈을 감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점검해야 될 시점에 와있다. 지나간 일생도 뒤돌아보았으면 한다. 지난 1년을 어떻게 보냈는가?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느냐 말이다. 어쩌면 또 한 번 주의 진노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귀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는데 얼마만큼 충실하게 보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해보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남은 날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거도 많지만 지난날에 매여선 안 된다. 그것 때문에 오늘을 그르치거나 미래를 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육체의 남은 때를 소중히 여겨야한다.
바울은 로마서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현재를 말하고 있다.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끝내려 하는가?
結論: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년 수 피조물의 단절된 년 수를 바로 깨달아 이해가 다 가기 전에 이제 남은 시간이라도 인생을 어떻게 끝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속으로 흡인될 수 있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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