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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종교개혁/왕하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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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왕하23:1-3



 


오늘은 488주년 종교개혁기념 주일입니다. 원래 종교개혁 기념일은 10월 31일 내일인데 오늘을 모든 세계 교회가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이 종교개혁이 1517년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된 이후로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칼빈이, 쮜리히에서 쯔빙글리를 통해 개혁의 불길이 번져나갔습니다. 영국에서는 장로교회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유럽에서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 라는 말을 쓰면서 날마다 개혁해 가는 교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날마다 날마다 우리 자신을 개혁해 감으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교회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로마 바티칸에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종교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 합니다. 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교황이 죽고 새 교황이 일어나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1965년 12월 8일 새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를 발표함으로 1517년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앙금을 다 털고 카톨릭도 개혁해야 한다는 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1965년을 기점으로 카톨릭 교회가 놀라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일들이 많은데 특별히 2차 공의회를 이끌고 노력한 세계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3사람의 신학자를 꼽으라면 한 사람은 알프스 산 속의 도시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에 있는 인스브룩 대학교의 신학부에 있는 칼 라너(Karl Rahner)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로마서 1장에 대한 구원에 대한 문제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중요한 사상을 카톨릭에 불어넣었던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독일의 튀빙겐 대학교의 교수였던 한스 큉(Hans Kṻng) 이라는 교수인데 아주 젊은 사람으로 바티칸 공의회의 전문위원으로 들어가서 중요한 문서를 정리하고 문서들의 초안을 작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10년 후에 카톨릭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요셉 라찡어(Joseph Ratzinger)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이 분은 사실 한스 큉과 친구들입니다. 요셉 라찡어는 그 당시 중요한 연설문에 개혁의 사상을 집어넣어 그 추기경들로 하여금 새로운 개혁의 분위기를 이끌었던 젊은 신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길은 전혀 다르게 펼쳐졌습니다. 칼 라너는 다시 알프스 산 속으로 들어와 인스브룩 대학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 전념하여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교의신학자, 교리사 연구로 명성을 떨치다 1980년대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반면에 한스 큉이라는 분은 로마에서 독일 튀빙겐으로 돌아가자마자 한편의 중요한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이 로마 교황의 오류설입니다.


 


지금까지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로마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같지 않은 신과 같은 존재이며 로마 교황의 한마디는 성경과 똑같은 권위가 있는 그런 존재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분은 교황도 똑같은 사람이고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함으로 로마 교황청에 아주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정죄 당했습니다. 또 한 사람 요셉 라찡어는 이 한스 큉과 함께 튀빙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때 68년도에 좌파운동이 세계를 뒤덮었던 때입니다.


 


 요셉 라찡어는 굉장히 개혁적인 사상을 가졌던 사상가였는데 학생들의 좌파운동을 지켜보면서 이건 아니다 하고 튀빙겐 대학의 교수직을 사표내고 레겐스부룩의 교수로 갔다가 얼마 후 뮌헨에서 추기경이 되고 로마로 가서는 요한 바오로 2세 치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추기경으로 로마의 교리성 장관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로마 교황이 되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의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라찡어 교수가 없었다면 아마 로마 카톨릭교회는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치명적인 영향을 입고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남미에서 해방신학과 유럽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 운동에서 교회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든 4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세 사람의 길은 서로 달라졌습니다. 그런 사이에 우리 개신교도 굉장히 많이 개혁되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카톨릭은 각국 언어로 성경을 새롭게 번역하는 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나온 성경이 소위 공동번역 성경을 발간했습니다. 개신교 신학자와 카톨릭 신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것입니다. 그전에는 카톨릭 교인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많은 변화를 일으킨 것이 2차 바티칸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유다의 종교적 상황



여러분 역사 속에는 수많은 종교개혁들이 있어왔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본문에서도 종교개혁이 나타나는데 요시아 왕이 어떻게 개혁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대왕들은 대체적으로 거의 나쁜 왕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타락했기 때문에 나라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북쪽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쪽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 중간 사이에 수많은 왕들이 교체되고 정권이 불안정했습니다. 이때 오늘 요시아라는 임금은 나이가 8살 때 임금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나이 8살에 임금이 될 수 있습니까? 이 말은 굉장히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아 왕의 증조할아버지는 유다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히스기야왕입니다. 기도로 병낫고 종교개혁을 했던 증조 할아버지이지만 그 할아버지, 그 부친은 아주 형편없는 왕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므낫세는 가장 악한 왕 중의 하나였습니다. 무려 50년을 통치하며 나라를 완전히 거덜냈던 사람입니다. 유다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 사람입니다. 성전에 우상을 세우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요시아의 아버지 아몬은 그 아버지 므낫세를 닮아 더 형편없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몬이 요시아 8살 때 그 신복들의 쿠데타로 제거되고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또 나라가 정치적으로 소용돌이속에 빠지자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아몬을 제거했던 일당들을 다시 제거하고 나라를 건설하면서 왕족가운데 왕으로 세울만한 사람을 찾다가 이 요시아를 다시 왕으로 옹립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 8살에, 소년이 왕이 된 것입니다. 그 나라 통치를 누가 했겠습니까? 정권을 뒤엎었던 사람들이 통치했고 18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요시아왕은 자기 증조할아버지 히스기야가 했던 역사도 알고 자기 할아버지 므낫세의 역사도 알았고 아버지 아몬의 역사도 알게 되면서 왕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2.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



그러던 어느날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다가 무엇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율법책이었던 것입니다. 모세오경입니다. 그래서 힐기야가 그것을 사반에게 주고 사반이 요시아에게 읽어주었는데 그것을 읽는 가운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기 옷을 찢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옷을 찢는다, 머리에 재를 뒤집어 썼다, 재 위에 앉았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은 철두철미한 회개를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잘못하면 옷을 찢으니까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했던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제자장, 모든 백성을 다 모아놓고 성경을 읽어줍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어떻게 자신들이 살아야 될 것인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다시 한번 다짐받고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 열왕기하 23장 24장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본문말씀 2절에 보면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회개합시다 하고 온 백성이 동의하고 백성이 그 왕의 언약을 그대로 다 순종해서 좇기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율법책의 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의 비텐베르그, 보름스, 제네바, 쮜리히에 가서 칼빈, 루터, 쯔빙글리의 동상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성경 바깥에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뭐냐, 개혁이 뭐냐, 우리나라 사람만큼 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들은 백성이 없을 겁니다.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많이 개혁하자고 소리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결국 다 수갑차고 지금 들어갔지 않습니까? 노무현 정부 역시 자신들만이 참된 개혁을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똑같습니다. 개혁은 상대방에게 너 잘못이니까 고쳐! 이런 식의 개혁이 아니고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는 것이 개혁입니다. 유대나라가 말씀 앞에 자신을 보니 얼마나 죄가 많고 더러운지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친 것입니다.




6세기 종교개혁도 타락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보면서 우리 이런 것을 고쳐보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세상의 거울은 면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거울에 우리를 비추면 우리도 왜곡됩니다. 정치, 문화, 경제, 사상, 시대 정신같은 것들은 우리를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불변하신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흐트러진 모습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바로 발견하고 바로 잡는 것이 개혁입니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먼저 내 모습부터 내 자세부터 바꾸는 것이 개혁입니다. 우리가 개혁을 외치기 전에 먼저 내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개혁은 결코 남을 향해 소리칠 일이 아닙니다.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바꾸어나가는 것이 개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발견했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했고 그 말씀을 읽어주면서 회개를 촉구했고 온 백성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역대하 34장 33절에 요시아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소위에 옳은대로 살다가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 이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나의 생각, 행동 모든 것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23장 21절부터 보면 “왕이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던지 유대열왕의 시대던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적이 없더니” 유월절은 해방기념일인 동시에 민족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절기입니다. 400년 종살이를 끝내고 가나안으로 출발했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그 중요한 절기를 이 요시아가 회개하고 말씀을 읽고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예배를 회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상하게 되고 우상이 세워지니 레위인들이 자기 먹고 살 길을 찾아 거의 대부분이 전업했습니다. 요시아가 농사, 목축하는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모아 그들의 본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게 했던 것입니다.





3. 우리들의 종교개혁




여러분 16세기 종교개혁, 요시아의 종교개혁 이 개혁은 오늘 이 시대의 하나의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종교상황이 얼마나 혼탁했습니까. 면죄부가 남발되고 교권주의, 비진리가 판을 치고, 성직이 매매되고 비도덕적인 생활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그 때 루터, 칼빈, 쯔빙글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우리 신앙을 점검하자고 외쳤던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요시아가 율법책을 근거로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고 거기서 유대의 회복을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문제 많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교회가 병들었다는 것은 곧 교회를 이루는 세포 하나 하나가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하나님 앞에 말씀앞에,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우리가 바른 교회, 바른 신앙을 가진 교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남이 근사하게 만들어 놓은 교회에서 내가 아무런 부담없이 신앙생활 하려면 안되고 내가 변해야 된다는 심정으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날마다 더 좋은 교회가 되도록 개혁해 나가야 되는데 그 개혁이 누구 누구가 바뀌면 개혁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가, 장로가, 권사가 바뀌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상담을 하다보면 기가 막힌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부간에 문제있는 경우 거의 대부분 우리 남편, 우리 아내에게만 문제있다 그럽니다. 늘 홈쇼핑만 보고 과소비하는 우리 아내가 문제여서 우리 가정이 문제있다. 아니다, 우리 남편 노름하고 술먹고 그래서 남편만 변하면 우리 집에 아무 문제없다고 그럽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거의 자신이 문제 있습니다. 내게 먼저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의 실패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형편, 조직, 교회, 사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문제는 내가 주체적인 삶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바로 세우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그러질 못합니다. 진정한 개혁의 대상은 결코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도 남을 향해 개혁하고 외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회복할 때 개혁됩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할 때 개혁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역할, 직분을 제대로 회복할 때 개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회를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프로테스트(Protest)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들어 있는 점이 뭔가 하면 머리에 붉은띠 두르고 결사투쟁 하고 외치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역사는 한 걸음씩 뒤로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도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내가 과연 가장, 남편, 직장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그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개혁을 외쳐야 하는데 자기 역할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남의 개혁을 더 강조하는 그 점이 우리의 약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모든 일에 대해 전부 다 내 탓이라고 하십시다. 가정에 돌아가서 자식을 보면서, 부모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바라보면서, 아내를 보면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오늘 우리 한국의 모든 일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먼저 돌아봅시다. 우리가 대통령을 비난하고 욕하기 전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심각하게 회개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버려야 될 나쁜 습관들 내가 고쳐야 될 나쁜 습관들 그것이 개혁입니다. 내가 버려야지 고쳐야지 하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버리고, 과감히 하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고 말씀에 대해 바로 응답할 수 있는 목적이 이끄는 성도, 가정, 교회가 되는 것 그것이 참된 개혁입니다. 여러분, 완성된 교회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 완성된 좋은 교회 찾아 보십시요. 겉으로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조금 들어가면 그 속에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의 냄새가 나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완벽한 교회를 찾아 몇 개월 돌아 다녀봐야 결국 못 찾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교회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그 교회는 더러워집니다.




우리는 좋은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좋은 신자가 되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도가 되어질 때 우리는 참된 개혁을 이루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이 교회 저교회 가봐도 허물과 약점이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문제는 나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 세우느냐 그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살지만 발은 더러운 세상에 붙어있습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고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먼저 말씀 앞에 자복하고 돌아오는 것이 개혁임을 기억하시고 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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