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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계 3:15-22)

본문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계 3:15-22)


 


오늘은 481주년이 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덴벌그 대학 성당 정문에 95개의 조문을 써 붙임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는 문예부흥 운동이 열려지는 때이고, 유럽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교회만은 전혀 변화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은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막대한 돈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속죄권을 팔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즉, 속죄권만 사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말로 교인들과 백성들을 우롱하고 성경의 사상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처사요,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시대는 급격히 변하고 있음에도 교회는 그런 한심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마친 루터가 순교적인 각오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민중들도 강력하게 지지하게 됨으로 거대한 종교개혁의 물결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국가로부터 모든 기관들이 그 동안 타성에 젖었던 잘못된 것들을 개혁하노라고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많은 제도들을 고치고 방만한 조직들과 인원들 중에 거품을 제거하는 등 구조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말하기를 ‘이처럼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유독 변화하지 않는 것은 교회이다.’라고 합니다. 옳은 말일지 모릅니다.


지난달 총회나 지난주 노회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많은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이 너무나 고루하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이처럼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면 함께 백성들과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터인데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좋은 자리만 차지하려는 태도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제가 차례가 되어서 이번에 부노회장이 되었는데 서로 임원을 하려고 열심히 운동하는 분들을 보니 기가 막힙니다. 


아닙니다. 교회는 끝없이 잘못된 것들을 개혁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를 ‘푸로테스탄트’라고 합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 도전하면서 새로움을 향해 개척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활동하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타협되어 있는 부분들을 성경을 통해 진단하고 그 때 그 시대마다 다시 성경이 요구하는 교회로 새로워지려는 것이 종교개혁 정신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독 아무 칭찬을 받지 못하고 책망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교회를 예언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현대 대부분의 교회들이 만날 위험적인 요소, 병적인 요소들을 예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이런 병적 요소를 피하고 상대적인 면을 더 살리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열심 있는 교회입니다. 

15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한 큰 이유는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지근한 상태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리아로스’라는 단어입니다. 


그 내용은 신앙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며,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며 기도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찌 보면 신자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불신자 같기도한 상태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무감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공산당에서는 당원을 열성당원, 반동분자, 그리고 회색분자 등,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중에 제일 싫어하는 자가 회색분자라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도 제일 보기 싫은 사람은 이중인격자로 자기 필요한 대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옛날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에 사는 짐승과 공중에 사는 새들간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박쥐는 산에 사는 짐승이 이기면 쥐처럼 되어서 그 쪽에 가담하고 새들이 이기는 듯 싶으면 날개를 펴고 새처럼 되어서 그 쪽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다가 양쪽에서 다 수상히 여겨서 쫓아내므로 그 때부터 박쥐는 낮에는 굴속에 숨어살고 밤에만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녀간에도 미지근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개성시대라 너무 개성이 없으면 사람들은 별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개성이 강하여 매사에 너무 나서는 여자도 보기가 안 좋지만 너무 무미건조한 여자도 문제가 많습니다. 가령 어느 남자가 여자를 만나서 식사하게 되었는데 ‘무엇을 잡수시겠습니까?’라고 하면 ‘글세요, 아무 거나 시키세요.’라거나,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무슨 차를 드시겠습니까?’라면 ‘글세요, 아무 거나 시키세요.’라면 속된 말로 밥맛이 떨어질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의 문제는 뜨거운 상태는 좋은데 ‘왜 차거운 것이 미지근한 상태보다 더 낫다는 것일까?’ 점수로 치면 차거운 상태보다 미지근한 것이 뜨거운 것에 가깝지 않습니까?‘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차거운 상태는 미지근한 상태보다 더 개선의 희망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자나 고구마를 굽다가 말면 다시 익히기가 힘들고, 바위를 쪼개어 조각하다 망친 것은 고치기가 힘듭니다. 차라리 거친 바위 그대로가 조각하기가 좋습니다. 


부흥집회를 인도해 보면 가장 힘든 교회가 부흥회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유명하다는 이 강사, 저 강사 와서 휘젓다 가므로 웬만한 강사가 와서는 감당을 못합니다. 며칠 동안 목이 쉬어라 해도 미지근한 상태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부흥회를 많이 하지 않은 교회, 시험이 많았던 교회는 첫날부터 깨어지기 시작하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교인 중에도 제일 힘든 자가 과거에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기도원에 가서 은혜의 체험을 많이 했으나 지금은 열심히 다 식어지고 잠자는 상태에 있는 자입니다. 


또한 전도하기 제일 힘든 사람은 과거에 믿다가 그만 둔 사람입니다. 차라리 입에 거품을 내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자아가 깨어지면 열심히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문제의 신자는 타다가 만 숯같은 신자, 익다가 만 설익은 신자, 미지근하여 무감각한 상태에 있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향해 탄식하기를 ‘내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교인 수는 많은데 미지근한 신자들이 점점 많아간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회색적인 신자, 교회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싫으면 안 나오고 교회 오면 신자처럼 보이고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과 별차이없이 행동하는 신자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어느 때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가책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재적 천 여명의 교인들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부실한 교인들을 만들기 쉬우면서도 교인 수는 2천, 3천명 등 크게 증가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목회자의 욕심일 때가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많은 교인들도 점점 구경꾼 신자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뉴욕 어느 교회에 어느 청년이 등록하고 싶어서 목사님과 면담하기를 원했습니다. 한참 이야기하고 나서 목사님은 청년에게 묻기를 ‘당신이 생각할 문제는 우리 교회 어느 부서에서 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대답하기를 ‘아, 저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요, 그저 예배에만 출석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저희 교회에는 전 교인들이 무슨 부서이든 나누어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일학교, 음악부, 재정위원회, 선교위원회, 심방 등 일할 곳이 많습니다.’라고 하자, 그 청년은 ‘저는 여기가 그런 교회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다른 교회를 다녀 봐야겠군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는 미국교회 이야기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교인들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주님은 이런 미적지근한 신자를 자기 입에서 토하여 내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영어로 말하면 shall로 ‘내치게될 것이다.‘는 말로 번역하는 옳다고 조세광 목사님은 강조합니다. 이는 계속 미지근하면 주님이 비위가 상해지면서 결국 내치게 되실 것인데, 이는 아직 회개할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 그런 미지근한 신자가 있습니까? 아니됩니다. 이제는 주님이 자기 품에서 내치시기 전에 회개하고 다시금 뜨거운 열심, 즉 믿음의 열심, 충성의 열심, 사랑의 열심히 가득 차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열심히 일하는 것은 꼭 교회에서만 국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이웃에서도 얼마든지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나타낼 곳이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학생과 불우한 이웃을 돕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 모든 것도 다 주님을 위한 충성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이번 40일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하시면서 ‘주여, 내가 다시금 뜨거운 열심으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대단히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에베소 북쪽 약 160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이곳에는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는데 여기서 만들어낸 안약이 유명하고, 금융의 도시로서 당시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손꼽혔습니다. 또한 유흥의 도시였기에 쾌락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도시는 물질이 풍부한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17절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평가했습니다. 아니, 그 도시는 물질적으로 풍부하므로 자연히 라오디게아 교회도 물질적으로 보면 큰 교회당, 넘치는 예산, 으리으리한 성구, 부자 교인들이 허다한데 그런 비참한 표현을 쓰셨을까? 이는 물질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는 아주 가난하고 병든 교회, 영적으로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보면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대형으로 잘 짓고 헌금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교인들도 대단히 많지만, 영적으로는 너무나 빈곤합니다. 목회자들조차 성령에 대한 체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성령이 어떠한 분인지 잘 모르는 상태이니 교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기도하는 교인들은 교인 수에 비해서 너무나 적고 엄청난 예산에 비해서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쓰는 일에는 그렇게 인색하지 모릅니다. 


부자라고 해서 다 부자가 아닙니다. 어느 사람은 굉장히 돈이 많지만 어찌나 인색한지 윰켜쥘줄만 알고 줄 줄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뱅이에 불과합니다. 말보로 공작이라는 분은 그가 남긴 유산은 15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재산을 남겼는데 그러한 부자가 말년에 몸이 대단히 쇠약할 때에 마차 삯 6펜스를 아끼기 위해 그 추운 밤도 걸어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돈을 아끼며 쓰지 않다가 죽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남긴 재산을 차지한 사람이 그와 원수나 다름이 없는 자였다고 합니다. 


돈을 가지고도 쓸 줄 모르는 부자는 실상은 가난한 자요, 더욱이나 그 많은 돈을 선한 곳에 쓰지 못한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악한 청지기라는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런 부자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자가 못되고 오히려 비록 노점상을 하면서도 노숙자에게 음식을 거저 주는 할머니가 더 부자요, 부요한 자인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재정이 풍부한 교회라도 좋은 사업을 위해 쓰지 못하는 교회는 부요한 교회가 아니요, 반대로 아무리 재정이 부족한 교회라도 좋은 사업을 위해 힘쓰는 교회가 부요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으로 부요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부요하려면 18절에 보면 세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1)불로 연단된 금을 사야 합니다. 

불로 연단된 금이란,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생명과 식구, 우리의 재산과 지위 등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고백하므로 다시 성령의 불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이삭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마침내 순종할 때에 살아난 이삭을 다시 맡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이라 고백하고 바칠 때에 하나님은 성령의 불로 재산과 자녀와 생명과 지위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맡기시므로 그 모든 것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2)흰옷을 사서 입어야 합니다.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 구원의 옷, 곧 신부의 옷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흰옷 입은 자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영적으로 부자냐 아니냐가 판가름됩니다. 어느 교회는 외적으로는 엄청난 부자이나 중생 받은 자, 영적 체험자가 너무 적어 벌거벗은 교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교회는 어찌든지 전 교인들이 벌거벗은 자가 하나도 없도록 이번 40일 동안 중생을 받아 흰옷 입은 자들이 되므로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눈을 떠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생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생 받는 것은 아직도 어린 아이 상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는 믿지만 넘어지기 잘합니다. 그러므로 더 능력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뜻을 아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부요한 교회는 영적으로 눈을 뜬 교회로서 추수할 곡식이 익을 것을 보고 구령열에 불타는 교회요, 도처에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사랑의 손길을 뻗치는 교회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늘 고마운 것은 우리 교회도 할 일도 많고 쓸 일도 많음에도 교회 지도급에 계신 분들이나 많은 교인들이 선교사업, 미자립교회, 불우한 기관, 장학사업, 사회봉사에 예산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우리 교회보다 재정이 몇 배로 큰 교회가 언제나 대지구입이나 건물 세우는 일에만 열심인 것이 비교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 교회당은 몇 천평이요, 교육관은 몇 천평이었나로 평가받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교회는 비록 외형적으로는 교회건물도 증축에 증축을 함으로 화려하지 못하고 아직도 부속건물이 너무나 부족하지만 모든 교우들이 불로 연단된 금과 흰옷과 밝은 영안을 가진 교회가 됨으로 하나님이 부요한 교회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언제나 주님을 모신 교회인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문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 말씀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셨을까? 그 교회는 물질적인 부요를 우상으로 모시고 있을 뿐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못된 교회임에도 핏값으로 사신 교회이시므로 문밖에 서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리 중심, 물질 중심, 인간 중심으로 운영됨으로 예수님이 깃드실 곳이 없습니다.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회의를 한다고 하나 사실은 너무나 인간들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며 들어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열린 노회에서 몇 교회에서 상소 비슷한 것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한심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중직선거가 잘못되어서 자기들이 억울하다는 것이요, 어느 교회는 목회자는 혈압으로 쓰려져서 목회를 못할 입장이 되므로 노회와 교회가 위로금으로 4,800만원 가량 드리기로 하고 당회장권을 넘겨주기로 했으나 돈을 안 준다고 넘겨주지 못함으로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장로분들이 담임목사를 내보려고 하자, 교인들이 이에 반대하고 300명 가량이 날인하여 호소문을 노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인간 중심으로 생긴 일들입니다. 안됩니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주님을 모신 교회,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예배마다 모든 회의마다 주님을 상석에 모신 가운데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바로 그런 교회를 참으로 원하시며, 그런 교회 위에 친히 임재하셔서 오늘 말씀대로 함께 마시고 잡수시며 함께 동고동락 하시며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지 28년이 되어 갑니다. 28년 동안 제가 배운 목회의 비결은 목회상의 좋은 때나 어려운 때 주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이 교회와 교인들은 주인도 주님이시오, 당회장도, 설교자도,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오직 비천한 종일 뿐이오니 주님 뜻대로 이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주의 종을 다스리어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주님이 친히 나셔서 역사 하시면서 일으킬 자를 일으키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책할 자를 책하시는 등, 교회와 교인들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죠지 휫필드 목사님은 명설교가로 유명한 분인데 그의 설교로 7만 명이 구주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과거에는 영국 어떤 술집에서 점원 노릇하며 욕쟁이로 유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된 비결은 날마다 엎드려 고백하기를 ‘하나님, 저는 과거 술집에서 죄만 짓던 질그릇 같던 비천한 종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을 모신 그릇이오니 강하게 역사 하옵소서.’라면서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자기는 철저히 낮아지는 삶을 산데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자신에 문제가 있거든 이번 40일 내내 여러분의 주인이 주님임을 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거든 주님이 여러분의 가정과 식구들의 주인이 주님임을 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문제가 있거든 자녀의 주인이 주님임을 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사업이 문제가 있거든 여러분의 사업의 주인이 주님임을 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보십시오, 그 때부터 여러분의 자신이나 가정이나 사업이나 주님이 친히 다스리며 해결해 나가시는 사실을 확실히 체험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교회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1)주님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 찬 교회 (2) 불로 연단된 금과 흰옷과 밝은 영안을 통해서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 (3)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되도록 힘쓰심으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교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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