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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2020년을 후회 없이 살아왔습니까?/요 19:28-30, 딤후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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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후회 없이 살아왔습니까?/요 19:28-30, 딤후4:6-8


 



 


  오늘은 2020년도 이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1년 52주, 참으로 짧은 순간으로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시간 속에 우리 인생은 이와 같은 12월을 맞이할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일 년=365일=8,760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나간 8,760시간을 정말 보람되게 후회 없이 가치 있게 살았습니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종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합니다. 죽음에 반항하는 사람,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 죽음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 죽음과 타협하는 사람,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반면에, 죽음을 높은 경지에서 맞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코는“아아, 내게 더 자라고, 잠자러 가자고 오는구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공포감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왔을 때,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한마디“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죽음’으로써 말씀을 성취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은 살면서 나름대로 여러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땅의 것만 가지고 성공했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목표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대대로 사셨습니다. 주님은‘내가 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이루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은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날 보내셔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보내신 이의 뜻을 양식 삼았습니다. 주님의 양식은‘사람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전도하는 것을 양식 삼았습니다.


 


주님은 보내신 이의 뜻을 위해 거기에 매진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자신이 사는 힘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서 만족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루었다’는헬라어로‘텔레오’입니다.


‘다 이루었다’(텔레오)는 종이 주인의 심부름을 다 행했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 때 흠 없고 점도 없는 깨끗한 것을 드리는 것을‘텔레오’라고 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한 후 스스로 만족할 때가‘텔레오’입니다. 예수님의 생은‘텔레오’를 향하여 움직였습니다.


 


한 발자국 갈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목마르다고 하신 것도 구약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다 이루었다(텔레오)”라고 말씀하신 후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한 해 우리는 365일 곧 8,760시간을 살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텔레오’라고 고백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 ‘텔레오’가 없으면 어떻게 새해를 선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2.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갈 6:17에서“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란 바로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전까지는 십자가 없는 삶, 그리스도의 흔적이 없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러한 삶은 늘 모자라고, 분열되며 단절되는 삶, 모든 것이 감소하는 마이너스의 삶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면서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플러스가 되며‘결합’과‘증가’, 그리고‘연결’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모든 자녀가 하나로 결합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결합이 있을 때 증가가 있으며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은 십자가의 흔적, 플러스의 흔적을 지녔다는 말과 같습니다. 



십자가가‘더해 주는 축복’은 사도 바울이 회심 후에 그의 삶에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의 네 방향은 동서남북 사방을 나타내는 우주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만 있으면 동서남북 사방이 꽉 차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야말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서로 주고받는 세계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방에서 서로가 모이고, 사방으로 서로가 흩어지는 주고받는 세계입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원리가 작용하여 강력한 힘을 내뿜는 원천입니다.


 


한마디로 십자가는 완전수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리에 가만히 정체되어 있지 않고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며, 미래를 지향하는 힘이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진보요 생산이며, 창조와 축복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삶 속에 깊게 새겨진 십자가의 흔적이요, 예수의 흔적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인생을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 속에 십자가의 흔적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십자가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삶의 여정 속에 십자가의 냄새를 내뿜었으며, 온몸에 십자가의 상처를 영광으로 안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하였습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다는 것은 옛사람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아예 십자가를 통해 옛사람은 장사 지내고 새 사람으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위해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십자가를 알 뿐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의 삶 중심에 모셔 들임으로 십자가는 그의 전부가 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 6:14에서“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식을 찾았지만,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오직 십자가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4.“다 이루었다”는“내 모든 생애를 다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바친다는 것은 목숨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 때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위대한‘텔레오’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의‘텔레오’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것을 알고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사도 바울의‘텔레오’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다 이루었다”하신 그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 직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바울은 하나님과 계약한 길을 다 달렸습니다. 그는 주님처럼 다 이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오직 십자가만을 알며, 십자가만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 론  


 


십자가는 하늘과 땅의 화해입니다. 땅과 땅의 화해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수학적 표기는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입니다. 우리의 삶에 형통과 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체험한 이후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고, 십자가만을 믿고 십자가만을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열심히 활용하여 하나님 앞에 귀한 결산의 열매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사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리차드 칼슨은 그의 책「우리는 시시한 일에 목숨을 건다」에서 “우리는 하찮은 일에 신경 쓰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목숨을 걸고 산다, 오늘이 내 생애에 마지막인 줄 알고 산다면 시시한 일에 목숨을 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죄악 된 세상의 일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다 시시한 일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후회 없이 살겠다.’고 결심하여야 합니다.‘후회’는 실패하는 인생의 고백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흔적은 다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여정을 하나님의 뜻을 막는 사소한 일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또한 꾸물거리지 말고, 2021년도에는 우리 삶의 목표를 하늘에 정하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달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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