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롭게 출발해 봐요/ 출애굽기13;1-2
본문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롭게 출발해 봐요/ 출애굽기13;1-2
PW : 믿음 BIW : 새롭게 나아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십자가의 복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화장법이 달라요
어느 부인이 비교적 다른 사람에 비해서 용모가 세련되고 인격적인 모양을 가진 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부인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나는 화장법이 달라요.
언제나 내 입술에는 진실이라는 립스틱을 바르고,
나의 음성은 친절이라는 목소리로 다듬고,
나의 눈은 관심으로 눈 화장하고,
나의 손은 섬김으로 아름다워지려 하고,
나의 가슴은 주님의 마음으로 채우려 하고,
나의 코는 신령한 하늘의 향기를 맡으려 하고,
나의 미용 식품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시시때때로 먹는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살아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을 볼 때 뭔가 다르게 사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른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말하는 언어, 말이 다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P4.
각 나라를 형성하는 민족들은 어디에선가 이동하면서 오늘날의 그 나라 민족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앵글로색슨족의 이동, 게르만족의 이동, 노르만족의 이동, 슬라브족의 이동, 훈족의 이동, 돌궐족의 이동 등등 민족들이 외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찾아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서 오늘날의 그 나라들을 세우고 민족을 형성한 것이다.
430여 년 전에 야곱의 혈손들 70명을 포함하여 2000-3000여 명이 중동지역에 일어난 7년 대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지 430년 만에 200여만 명의 대민족을 형성하여 애굽을 떠나는 것은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이다.
애굽에 내려진 10번째 재앙, 장자와 초태생들의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당하여 애굽의 바로와 대소 신료들, 백성들이 히브리인들에게 “어서 속히 지체하지 말고 떠나라.”라고 재촉함에 따라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하는 것이다.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하고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히브리 민족의 대이동으로 시작하는 사건은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D4.
① 새로운 출발이 되는 유월절을 제정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빕월 14일을 유월절로 시작하여 1주일 동안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으면서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14일 밤에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는 재앙 가운데서 구원하여 출애굽을 시작하면서 히브리 민족 대이동이 시작하였기 때문에 자손 대대로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절기로 지키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유월절이 가진 큰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던 삶을 뒤로 하고 히브리인의 대이동을 시작함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와 민족으로 세워지기 위하여 출발하는 날이 바로 유월절이라는 것이다.
유월절로 시작하는 출애굽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시작점이라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을 완전히 정리하고 이제 새롭게 대전환하여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든 것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회사도 새롭게 시작하고, 교회도 새롭게 시작하고, 가정도 새롭게 시작하고, 학업도 새롭게 시작하고, 신앙생활도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무엇이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출발점에 서도록 하실까?
지금까지 잘살았건 못살았건 삶의 대전환을 하지 못하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심정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주권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② 장자 & 초태생을 구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12-13절에서는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짐승이야 초태생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장자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면 하나님은 인신 제물을 받는 신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인신 제물을 받는 신이 아니다.
그래서 장자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은 장자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장자를 대신하여 다른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또한 나귀라는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나귀는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다.
본래 나귀는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니귀를 집에서 키워서는 안 되는 짐승이다.
나귀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거운 짐을 실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나 임산부들을 태워서 이들과 함께 출애굽한 짐승이기 때문에, 나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친밀한 짐승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황소는 아주 친밀한 가축이다.
지금이야 농사에 황소를 잘 사용하지 않고 식용으로 키우고 있지만, 과거에는 황소가 가정에 큰 재산 중에 재산이었고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황소가 수레를 끌면서 이동 수단도 되고, 짐을 나루는 수단도 되고, 쟁기를 메어서 밭을 갈아주는 아주 귀하고 정말로 중요한 짐승이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황소를 잡아먹으면 총살시킨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황소가 이동 수단과 짐을 운반하기도 하고, 쟁기를 메어서 밭을 갈아서 농사해야만 하기 때문에 황소가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면서 황소를 잡아먹으면 총살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처음에 자유대한민국으로 넘어와서는 소고기를 잘 먹지 했다고 한다.
황소가 이런 존재였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나귀가 이동 수단과 짐을 운반하는 수단과 쟁기를 메어서 밭을 갈기도 하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짐승이다.
그래서 나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나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짐승들 중에 하나인데, 되새김질하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이라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어린 양으로 대속하여 가정에서 같이 살도록 허락해 주는 것이다.
나귀를 키우기 위해서 양 한 마리가 대신 죽어야만 할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나귀는 정말로 소중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귀를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어린 양으로 대속해야만 되는데, 만약에 대속하지 않으면 차라리 그 나귀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대속하지 못할 것 같으면 나귀의 다리를 꺽어서 죽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자나 나귀는 어린 양으로 대속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자나 나귀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어린 양을 대속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것이다.
이처럼 대속의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대속해 주신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신앙인이 죽어야 할 심판을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해 주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 신앙인, 성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으로 탈바꿈해 주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2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고 선포하고 계신다.
③ 새로운 출발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전승시켜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4-15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유월절과 무교절, 초태생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과 장자와 나귀를 위하여 대속하는 것에 대하여 후손들이 묻거들랑 바로 출애굽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면서 출애굽의 사건을 세세토록 전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유월절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몰려들게 된다.
니산월 14일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어린양을 제물로 드린다.
어린양을 잡아서 어린양의 피를 성전 번제단에 드린 후에 양고기를 집으로 가져와서 저녁에 화덕에 구워서 유월절 음식을 온 가족들이 모여서 먹게 된다.
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식은 바로 유월절 음식을 먹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으로, 성찬식으로 승화시켜 주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 유월절 만찬을 하면서 그 가정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연소자가 일어서서 질문하면 최연장자가 설명해 주는 문답식 형식으로 전승시켜 나간다.
ⓐ 왜 오늘 이 밤은 다른 날 저녁과 다른 이유가 뭡니까?
ⓑ 왜 오늘 저녁에 두 번 찍어 먹습니까?
ⓒ 왜 오늘 우리가 먹는 이 무교병은 다른 날에 먹는 떡과 다른 이유는 뭡니까?
ⓓ 왜 오늘 저녁에는 오직 구운 고기만 먹습니까?
ⓔ 왜 오늘 저녁에는 쓴 나물을 먹습니까?
ⓕ 오늘 우리가 먹는 이 포도주는 다른 날 포도주와 다른 이유는 뭡니까?
ⓖ 왜 오늘 저녁에는 식사 때 기대어서 먹습니까?
이 질문에 따라서 최연장자가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면서 후손들에게 출애굽과 유월절에 대하여 전승시켜 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좌파 정권과 전교조에 의해서 왜곡된 역사를 만들어서 왜곡된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대통령이나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여 오늘날의 선진국대열에 오르도록 한 박정희대통령은 독재자이고, 북한의 김씨3부자는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잘못 세워진 나라라고 하면서 헬조선(지옥조선)이라고 가르친다.
전교조에 의해서 잘못 만들어진 역사가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지면서 잘못된 대한민국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를 잘못 가르치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된다.
오늘날의 정치계는 조선시대 선조 대왕의 시대와 아주 흡사하다.
서인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모든 정치 세력들을 척결하는 선조 대왕의 잘못된 정치로 인하여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서 조선이 망하는 길로 걸어가게 된 것처럼 친일파, 적폐라는 미명으로 자신들을 반대하는 모든 일꾼들을 척결하는 독재정치로 인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종살이와 40년 광야 생활을 늘 되새김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신실하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신앙을 전승시켜 나가는 것이다.
④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시지 않는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어야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
7년 대흉년기간에 곡식을 사기 위하여 왕래했던 길이 있다.
그 길로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아주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면 블레셋 족속의 땅을 지나가야만 한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는 그랄 땅이라는 블레셋 족속들의 땅을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200여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랄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면 별 어려움이 없이 가나안 땅으로 직행해 갈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블레셋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랄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공격해 오면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이 무서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애굽으로 되돌아와 버리면 모든 것들이 끝장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블레셋 족속과 전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홍해바닷가로 인도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17-18절에서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랄 땅으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홍해바닷가로 인도하신 것이 블레셋 족속과 전쟁이 일어날 위험성 때문에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는 편안하고 빠른 길을 버리고 멀리멀리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홍해바닷가 길을 선택했었어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이동하는 중에 전쟁이 없었는가?
아말렉족속의 전쟁이 있었다.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의 업적이 크다.
여호수아가 오합지졸과 같은 잘 훈련되지 않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이끌고 가서 아말렉족속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아무래도 군사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족속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구한다.
모세가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모세가 팔을 내리고 기도하면 아말렉이 이기는 이상한 전쟁이 진행된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옆에서 모세의 두 손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고 한다.
블레셋 족속을 만나 전쟁할 것이 불안하여 그랄 땅을 통과하지 않고 홍해바닷가로 진행하게 하셨는데, 홍해를 건너서 아말렉족속과 전쟁하는 것이다.
아말렉족속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한다.
마찬가지로 편리하고 빠른 길을 선택하여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블레셋족속과 불가피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얼마든지 승리하게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랄 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홍해바닷가 길로 인도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장면은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먼 길로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지신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 땅에서 구별된 삶을 살았지만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애굽에서 살았기 때문에 애굽의 문화, 언어, 습관, 심지어는 종교까지 그대로 답습한 상태이다.
그런 상태에서 애굽에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되면 애굽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가나안 땅으로 이전시켜서 그대로 애굽인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애굽이란 지역에서 가나안이라는 지역만 바뀌었을 뿐, 애굽인들이 사는 모습처럼 가나안 땅에서 똑같이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애굽의 문화, 종교, 언어, 습관 등등 모든 것들을 가지고 그대로 지역만 바꿔서 가나안 땅에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키는 목적은 애굽에서 살면서 터득되고 몸에 밴 모든 것들, ALL, Everythings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히브리인만의 가진 독특한 문화와 언어와 습관과 관습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인으로 구별한 민족으로 세우시려는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미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 시키면서 전혀 새로운 세대, 신세대를 형성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려는 의도와 목적과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살았던 것들은 약간의 틈이라도 있기만 하면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돌에 새기고 그리워하면서 살았었다.
그런 것들 중에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금송아지 사건이다.
아론에 의해서 제작되었던 바로 그 금송아지가 애굽인들이 섬기는 아토스(Atos;황소)신을 금으로 만들어 섬기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까지 살아오던 모든 삶의 형태들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로운 민족으로 만들기 위하여 홍해를 건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주인,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쉬운 길, 편한 길을 버리고, 멀고 힘들고 험하고 어려운 광야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앞장서서 인도해 가는 모세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모세도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모세5경, 토라를 기록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계획을 어렴풋하게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영적이고 신앙으로 산다고 해도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제대로 깨닫거나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지와 뜻과 계획을 1/10000이라도 제대로 알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할 수 있다.
1/10000이 아니라 1/100000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무지한 존재이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거만하게 떠들어도 온 우주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목적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은 없다.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때 가서야 아주 약간 비슷하게 ‘하나님의 목적이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라고 깨닫는 수준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언을 해 준다, 무엇을 해 준다고 하면서 유혹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따라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예언은 이미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다 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면서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은 지금 나에게,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로 주시는 말씀일까?’를 깊이 묵상하면서 읽으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하심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L4 & B4.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이동은 출애굽과 유월절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우리 신앙인들의 새로운 시작점은 무엇일까?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하여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종려주일이다.
이번 한 주간은 우리 주님께서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처절하게 버림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묵상하며 살아야 하는 고난주간이다.
다음 주일은 우리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 죄악의 권세, 사탄의 권세, 세상 권력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다시 살아 부활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부활주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새로운 삶의 시작점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도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시작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이루고 싶어 하시는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 주님께서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의 시작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문화와 관습과 전통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식체계와 생각과 마음과 영혼의 새로운 시작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것들의 새로운 시작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영원한 심판과 지옥의 형벌과 멸망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어둠의 터널 속에서 절망과 낙담과 실의 속에 허덕이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사탄과 마귀와 어둠의 세력 속에서 날마다 원망, 불평, 미움, 분쟁 가운데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시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과 권세로 어둠의 세력. 죽음의 세력, 죄악, 마귀 사탄의 세력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새로운 영적인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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