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감사가 있는 추석
본문
오늘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우리 말중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말이 있습니다. 추석은 오곡 백과가 무르익고 풍성한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항상 이와 같이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추석은 땀 흘려 일한 사람들이 수확한 열매에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수확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며(살전 5:18), 여호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추석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명절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추석에 우리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두가지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1. 성도들이 화투를 해도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안하는 것이 더 좋다입니다. 우리나라는 고스톱 공화국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 90%가 고스톱을 친 적이 있고 70%가 평소 이를 즐긴다는 설문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의 모 교회에서 20세 이상 성도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성도의 30%가 이번 추석에 화투를 칠 것이라고 대답했답니다. 화투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일본 우상문화의 축소판입니다.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은 물론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의식 심지어 샤머니즘 신앙까지 담겨 있습니다. 화투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화투를 통해 일만악의 뿌리인 탐심을 갖게되고(딤전 6:10),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 우리 성도들은 이것을 버리고 좀더 건전하고 즐거운 가족 놀이들을 즐겨야 합니다.
2. 둘째, 조상제사와 추도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명절 때가 되면 성도는 조상제사와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는 효의 연장사상으로, 조상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사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민족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는 정치적 목적으로 국교를 고려의 불교에서 유교로 바꾸었으며 집집마다 사당과 신주를 모시게 했습니다. 조상제사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속 신앙과 혼합되면서 조상 숭배로 변질되었습니다. 공자는 죽은 부모를 산 부모와 같이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에게 있어서 젯상은 조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녀들이 젯상에 올려놓는 5가지 음식(대추,밤,감,배,은행)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걱정을 없애드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무속의 영향이 유교와 불교를 어느새 변질시키면서 젯상을 조상이 먹는다고 생각하여 음식을 차리고, 심지어는 억지로 배달해서 제사상을 차리는 진풍경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제도는 철저히 자기 과시이며 복을 받으려는 욕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조상들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부모와 가족간에 우애하고 사랑하기를 다짐하는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제사하는 사람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어른과 가족에게 효도하고 우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추석을 지내야 할까요? 오늘 말씀처럼 감사로 지내야 합니다. 감사가 있는 추석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가족·친척·이웃에게 감사합시다.
가족, 친척, 이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울타리요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을 통해 내가 보호되며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모와 조상에게 감사합시다.
이것은 죽은 부모, 조상에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좋은 전통,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며,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습니다. 한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고, 자녀에 대한 "감동"이 피어난다면, 그 가정처럼 아름다운 가정은 없을 것입니다.
셋째, 국가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처럼 자유로운 나라, 풍요로운 나라에 태어난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나라가 어지럽고 복잡해도 성도들은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넷째, 자연에 감사하십시오.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삶의 터전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다섯째,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나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조상,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든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집약됩니다. 모든 감사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이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추석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먼저 추석에 우리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두가지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1. 성도들이 화투를 해도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안하는 것이 더 좋다입니다. 우리나라는 고스톱 공화국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 90%가 고스톱을 친 적이 있고 70%가 평소 이를 즐긴다는 설문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의 모 교회에서 20세 이상 성도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성도의 30%가 이번 추석에 화투를 칠 것이라고 대답했답니다. 화투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일본 우상문화의 축소판입니다.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은 물론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의식 심지어 샤머니즘 신앙까지 담겨 있습니다. 화투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화투를 통해 일만악의 뿌리인 탐심을 갖게되고(딤전 6:10),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 5:22) 우리 성도들은 이것을 버리고 좀더 건전하고 즐거운 가족 놀이들을 즐겨야 합니다.
2. 둘째, 조상제사와 추도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명절 때가 되면 성도는 조상제사와 충돌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는 효의 연장사상으로, 조상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사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민족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는 정치적 목적으로 국교를 고려의 불교에서 유교로 바꾸었으며 집집마다 사당과 신주를 모시게 했습니다. 조상제사를 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속 신앙과 혼합되면서 조상 숭배로 변질되었습니다. 공자는 죽은 부모를 산 부모와 같이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에게 있어서 젯상은 조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녀들이 젯상에 올려놓는 5가지 음식(대추,밤,감,배,은행)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걱정을 없애드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무속의 영향이 유교와 불교를 어느새 변질시키면서 젯상을 조상이 먹는다고 생각하여 음식을 차리고, 심지어는 억지로 배달해서 제사상을 차리는 진풍경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제도는 철저히 자기 과시이며 복을 받으려는 욕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조상들이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아직 남아있는 부모와 가족간에 우애하고 사랑하기를 다짐하는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 제사하는 사람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어른과 가족에게 효도하고 우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추석을 지내야 할까요? 오늘 말씀처럼 감사로 지내야 합니다. 감사가 있는 추석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가족·친척·이웃에게 감사합시다.
가족, 친척, 이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울타리요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을 통해 내가 보호되며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모와 조상에게 감사합시다.
이것은 죽은 부모, 조상에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었음을 생각하면서 우리 가문에 내려오는 좋은 전통,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이며, 평화는 감사의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습니다. 한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고, 자녀에 대한 "감동"이 피어난다면, 그 가정처럼 아름다운 가정은 없을 것입니다.
셋째, 국가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처럼 자유로운 나라, 풍요로운 나라에 태어난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나라가 어지럽고 복잡해도 성도들은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넷째, 자연에 감사하십시오.
자연에 감사하라는 것은 자연을 신격화해서 숭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삶의 터전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육체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다섯째,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나를 비롯해서 가족, 친척, 이웃, 조상, 국가, 자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든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집약됩니다. 모든 감사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감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이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추석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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