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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경과 추석/ 슥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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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추석/ 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절기가 유대력으로 정월의 유월절, 삼월의 칠칠절, 그리고 칠월의 초막절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절기는 정월의 설 명절, 팔월의 추석 명절이다. 그런데 한국의 추석과 성경의 초막절은 너무나도 그 유사성이 농후하며 날짜 또한 동일하다. 놀라운 것은 뿌리를 찾아보면 추석의 유래가 성경의 초막절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성도들에게 이 사실은 너무 중요하다. 한국의 추석은 정월 설 명절과 더불어 양대 명절 중에 하나이다. 설 명절은 새해가 시작되는 연초에 지키는 연두(年頭) 절기이고, 추석은 한 해의 농사를 다 짓고 연말에 지키는 감사의 절기이다.


구약의 초막절도 유월절과 더불어 구약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데,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설 명절로서 이 유월절로부터 해가 새롭게 바뀌는 신년 명절이었고, 초막절은 일 년 포도농사를 다 지은 후에 그것을 창고에 저장해 놓고 온 국민이 함께 지키는 연말 감사의 절기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추석과 구약의 초막절은 유사점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 절기가 의미만 같을 뿐만 아니라 그 절기의 때와 날짜가 서로 같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해마다 지키고 있는 초막절 절기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석 절기의 때와 날짜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명절이 바로 구약에 나오는 초막절(Succoth)과 우리의 추석과 같은 시기와 같은 날짜에 지켜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1, 달력상의 날짜는 다르지만 절기상의 날짜는 항상 동일하다.


2, 달밤을 즐기는 저녁 행사가 서로 같다.


3, 명절에 고향을 찾으며 조상을 기억하는 풍습이 같다.


4, 추수한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행사가 같다.


5, 둘 다 외래문화로서 본토문화에 토착화한 복합문화라는 점이다.


 


1. 8월 15일(보름)이라는 추석 날짜에 관해서


우리나라의 추석은 음력으로 8월 보름을 말한다. 현재 우리가 쓰고 음력 달력은 시헌력(時憲曆)이다. 그것은 청나라 초기에 독일의 제수잇 교단의 선교사이며 천문학자인 아담 샤알(Adam Schall 1591-1666)이 제정한 것인데 그 기초는 동양의 간지력(干支曆)이었다. 간지력의 근본은 신년의 시발점을 태양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점에다 둔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낮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지력은 이 동지점을 정월 초하루로 맞추어 그 달을 자월(子月)로 사용해 왔던 것인데 이것이 동양 최초의 달력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그들의 달력도 바뀌어졌다. 그래서 기원전 2200년경 하 왕조는 인(寅)월을 정월로 정했고, 은 왕조는 축(丑)월을 정월로 정했으며, 주 왕조는 자(子)월을 정월로 바로 세워 썼으나 진시황 때에 다시 해(亥)월을 정월로 고쳐 썼던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200년경 한(漢)나라 때부터 다시 인월(寅月)을 정월로 고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200년 동안을 동지가 지난 두 번째 달인 인월(寅月)을 정월로 정하여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저 로마력인 양력은 우리의 시헌력(음력)보다 한 달이 빠르게 가고 있으며, 유대력은 같은 음력이지만 우리의 시헌력보다 한 달이 더 느리게 오고 있다.


 


그런데 성경의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일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신년의 시발점을 동지점에다 맞추어 자월을 정월로 삼고 있었으나 옛날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년을 바벨론 달력을 따라 밤과 낮의 길이가 평등한 춘분점에 맞추어 니산월을 정월로 삼아 왔다. 그래서 그 니산월, 즉 정월 보름에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일곱 번째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즉 50일째 되는 날에 둘째 절기인 칠칠절, 즉 오순절(7×7+1=50)을 지켰다. 그리고 또 일곱 번째 맞는 달 보름달을 기념하여 티쉬리월 15일에 세 번째 절기인 초막절, 감사절을 지켰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초막절이 오늘날과 같이 7월(Tishri월) 15일이 된 것이다.


유대인의 세 절기는 그것이 제정될 때부터 공통적으로 7이라는 숫자와 관련되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7월 15일이라는 그 숫자는 영구히 변경할 수 없는 날짜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 이 이 날짜를 엄격히 고수하여 오늘날까지 변동 없이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유대력으로 7월 15일에 지켜지는 성경의 초막절이 음력 8월 15일에 지키고 있는 우리의 추석과 항상 같은 시기, 같은 날짜에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까닭은 유대력이 시헌력 보다 한 달이 늦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추석과 성경의 초막절은 항상 그 날짜의 때가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달력이나 유대인의 달력 중 어느 한쪽에 윤년이 들어 있는 해에만 한 달의 차이가 나고 있을 뿐이다.


 


2. 8월 15일(대보름) 달밤을 즐기는 행사에 관해서


우리들의 하루 생활의 시작은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에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날 해가 떨어짐과 동시에 끝이 난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날에 모든 것을 창조해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고 하셨다.


시편에 다윗도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항상 하루가 시작되는 그 저녁이 중요했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도 그들에게는 아침 예배보다 저녁 예배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절기 행사에서 말할 것도 없이 저녁 행사가 모두 중요했다. 그런데 그 저녁이란 언제나 해가 서산에서 떨어지고 달이 동산에서 떠오르는 시각에 시작이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달밤이 그렇게 중요했으며 또 달 놀이가 그렇게도 중요했던 것이다. 일찍부터 태양을 섬겨오던 옛날 애굽 사람들이나 서구 사람들의 생각과는 아주 정반대인 것이다.


 


초막 절기에 지키는 전통적인 이들의 저녁 행사 속에는 특별히 일곱 가지로 뻗은 촛불로 성전을 밝히는 일이 있었고, 또 그 촛불 밑에서 함께 횃불 춤을 추는 춤 놀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여인들의 뜰에서는 15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마다 시편 노래 한 곡씩을 부르며 함께 내려가는 춤 놀이가 있었는데 이 거룩한 밤의 행사는(사 30:29 너희가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밤에 하듯이 노래할 것이며 피리를 불며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 나아가는 자 같이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7일 동안 이렇게 밤을 지새우며 계속 되었다.


유대인들의 이런 행사는 마치 우리 민족이 추석날 밤에 지켜 오고 있는 달맞이, 횃불놀이와 너무나도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 여인들의 강강수월래의 춤놀이와도 분명히 일치한다. 우리나라 추석의 그 명칭을 보면 가을 추(秋)자와 저녁 석(夕)자로 되어 있다. 가을 저녁이란 뜻이다. 아침도 아니고 대낮도 아니라 저녁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명칭인가? 그리고 강강수월래(江江水越來)하는 노랫말도 그 글자를 보면 ‘강 강(江)자, 물 수(水)자, 건너올 월(越)자, 올 래(來)’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풀이해 보면 “강 건너, 물 건너, 멀리 멀리서 왔다.”는 뜻이다. 노랫말 속에 외래문화적 향수가 얼마나 짙게 풍겨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먼 팔레스타인 서방 땅을 한없이 그리고 있는 그런 노랫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것들을 볼 때 정말로 우리 추석의 뿌리가 과연 이처럼 성경의 초막절 문화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 더욱 설레이고, 이에 대해 스스로 한층 더 놀라게 된다.


 


3. 고향을 찾고 조상을 기억하는 풍습에 관하여


유대인의 3대 절기 가운데서도 특별히 이 초막절은 고향과 조국을 떠나 나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 흩어진 모든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그들의 율법 명령에 따라 이때에 한 번씩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하는 순례의 절기이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매년 한 번씩 조상과 고향을 찾고 또 조국을 찾는 그들의 전통과 습관이 된 것이다.


특별히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 즉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켜오던 5대 신앙을 보면 그 가운데는 아주 중요한 조상성자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Tselem, 닮음, 창 1:26-27)을 유전시켜 준 자기 조상들(즉 하나님-아담-셋-에노스-노아-아브라함-이삭-야곱-모세-아론-엘르아살-비누하스-여호수아-갈렙-70장로들에게까지 내려오다가 엘리 제사장의 배교로 중단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이와 같은 조상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의 조상 성자(祖上聖者) 로 숭배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이 바로 이런 조상들의 은덕을 받고 있는 자들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그 조상의 무덤을 찾아 순례를 하며 매년 세 차례씩 절기 때마다 반드시 그 신령한 산을 찾고 있던 것이다(신 27:12, 수 8:30-35).


그런데 일찍이 동북아시아 산간지대와 인도와 중국으로 이동해 온 유대인들이 바로 주전 710년 시리아 왕 산헤립의 사마리아 침공으로 인해 북쪽으로 사로잡혀 갔던 살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항상 이 절기를 지켜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가리켜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이라고 하셨다(마 10: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러므로 이런 사실들은 모두가 결코 이스라엘이 문화사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 이 절기에 순례를 하지 못하는 자들은 누구나 자기 집 곁에 초막을 짓고 전 가족이 그 속에 들어가 절기를 지켰다. 바로 그것은 옛날 광야에서 나그네로 장막을 치고 살았던 자기 조상들의 삶을 그들이 기억해 보는 의미였고, 조상들의 장막 생활을 경외하고 그것을 더욱 기리려는 뜻이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인생의 깊은 진리를 바로 이 광야의 장막 생활에서 깨닫고 터득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개인 생활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 역사, 사회, 정치, 모든 분야 속에 너무도 깊이 자리 잡아 온 그들의 신앙이요, 철학이요, 또 그들의 뿌리 사상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추석이 되면 누구나 조상의 무덤이 있는 자기의 고향을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것은 고향에 가야 조상의 무덤을 볼 수 있고, 고향에 가야 부모의 산소를 찾아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추석이 되면 일 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잊었던 조상을 찾아 제사를 드리고 성묘를 하며 또 그 조상들 앞에서 고달프고 덧없는 우리 나그네(타향살이) 인생의 진리를 한 번씩 더 터득해 왔던 것이다.


 


4.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행사에 관해서


이 절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은 곡식이 아니라 열매, 즉 추수해 드린 포도와 감람열매였다. 이때에 가나안 지역의 수확 시기는 밀이나 보리때가 아니라 포도철이었기 때문이다. 3대 절기 중에서 무교절, 즉 초실절에는 밀 열매를 드리고, 칠칠절, 즉 맥추절에는 보리 열매를 드렸으며, 수장절인 초막절에는 올리브와 무화과 그리고 포도열매를 계절에 맞게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이것이 가나안 농경문화에 따른 감사 예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절기일지라도 가축을 치는 일부의 사람들은 양이나 짐승을 드려 이스라엘의 유목 문화적 전통을 그대로 고수해 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추석 절기에도 보면 한가위 전통의 춤놀이, 씨름놀이 등 경기놀이가 뒤따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나 이 절기에 더 두드러진 것은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는 조상 숭배 신앙의 그 추석 전통이다. 그래서 가정마다 조상에게 감사의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하며 모든 감사를 먼저 조상님께 드렸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을 공동체는 돼지를 잡아 산(山)신께 제사를 올리고, 그리고 나서 공동 잔치를 벌리며 각종 놀이 행사에 참여를 했다.


이런 것은 같은 중국 문화권 안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직 한국인들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5. 초막절과 추석의 외래적 토착성에 대해서


본래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문화를 만나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감사절 문화이다.


본래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수장절(收藏節, asiph)이라는 농경 문화적 감사절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장막절(帳幕節 Pavillon)이라고 하는 그들의 유목 문화적인 독특한 문화를 갖고 들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가나안 문화와 결합되는 과정 속에서 제3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초막절(草幕節, Sukkah)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볼 때에 이 초막절은 확실히 외래적 토착 문화였다(문서설의 창시자 그래프 웰 하우젠의 주장).


 


마찬가지로 우리의 추석 문화도 보면 그것 또한 외래문화의 하나였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추석 명절에 대한 이름이 두 가지로 전승되어 온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추석’과 ‘한가위’라는 이름이다. 추석은 후기에 들어온 외래문화였지만 한가위는 시초부터 본래 우리 땅에서 생겨 난 토박이 문화였다. 다시 말해서 이 가위 혹은 가배 문화가 신라 유리왕 때부터 지켜 내려온 순수한 우리의 전통 문화였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보면 “유리왕 9년에 왕이 6부를 정한 다음 이를 둘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지어 가을 7월 16일부터 일찍이 대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한밤중에 파하되 8월 15일에 이르러 그 성적의 다소를 심사하여 패한 편이 주식을 장만해서 이긴 편에게 사례를 하게 했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벌어졌는데 그것을 가배라고 하였다.”고 했다. 이 가배가 곧 오늘날 8월 보름에 지키는 한가위 명절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때에 이 명절의 성격을 보면 처음부터 그 문화가 바로 순전한 스포츠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길쌈놀이의 경기를 하고 또 춤을 추며 노래하고 즐겼다는 그 자체가 바로 오락 문화였음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석을 보면 그 성격이 저 가배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추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추석-한국 명절의 하나. 음력 8월 15일. 중추절, 가위, 한가위라고도 한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명절로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등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다음 성묘와 벌초를 한다.” 이것을 보면 추석은 확실히 오락 문화가 아니다. 참으로 하나의 경건한 종교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배의 전통과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이질적인 별개의 전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추석은 경기나 오락의 스포츠 문화가 아닌 종교적 감사제의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전통이 신라 유리왕 때부터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그것이 언제부터였으며 또 어디서부터 들어온 문화일까?


추석이 외래문화라는 점은 이 추석명절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이라는 이름으로 이 팔월 보름을 명절로 이미 지키고 있고, 일본에서는 오늘날도 오봉이라는 이름으로 이 팔월 보름을 명절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석을 우리만의 고유문화라고 결코 말할 수가 없게 된다. 때문에 할 수 없이 우리는 여기서 이 추석을 밖으로부터 들어와 우리의 한가위 문화 속에서 토착화된 하나의 외래문화라고 정의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추석이 외래문화라고 보는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우리나라 추석이 감사절 문화라면 그것이 감사절답게 우리 계절에 꼭 맞았어야 한다. 그런데 추석은 우리의 계절에 절대 맞지 않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추석이 감사절의 축제 문화라면 추수 열매를 다 창고에 거둬들인 다음 마치 이스라엘의 저 수장절(收藏節)처럼 곡식을 모두 수장시켜 놓은 뒤 한가한 때에 축제가 열리는 것이 정상이요 정석이다. 그런데 우리의 추석은 현재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절기에 비하여 때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신라의 이 한가위 절기만 빼고 우리 민족의 다른 절기 문화들을 보면 고구려에서는 추석보다 2개월이 늦은 음력 10월에 동맹(同盟)이라는 이름으로 제천제(祭天際)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맥에서도 10월에 무천(舞天)이라는 이름으로 제천제를 드리고 있었다. 부여에서는 추석보다 무려 4개월이나 더 늦은 12월에 영고(迎鼓)라는 이름으로 감사제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문화들이 바로 우리 땅, 우리 기후에 절기가 맞는 바로 신토불이 문화이다.


그런데 유독 추석만이 우리의 추수 계절에 때가 맞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때에 우리 추석은 햇곡식을 수확하기도 전에, 즉 들판에 벼 이삭이 아직도 푸른데 추석 명절을 쇠고 있다. 이것은 작년에도 그러했고 재작년도에도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추석 절기가 오히려 길쌈놀이(삼베)의 본체인 가배 문화에는 그 때가 꼭 맞고 또 이스라엘의 포도 절기 문화에도 추석은 그 때가 꼭 맞는다. 그런데 다만 추석이 우리 땅에서 추수절기로서만 그 시기가 맞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추석은 한반도 땅의 고유문화가 아니라 동양 기독교를 통해서 일찍이 한반도 땅에 들어온 성경적 외래문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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