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고린도전서 10장 14-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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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고린도전서 10장 14-33절)
이번주는 추석 명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고향 방문 이동 조사를 했는데, 이번 명절에는 코로나의 여파로 10명중 8명이 이동하지 않는다고 응답 했습니다. 설문조사를 보면, 명절이 즐겁다는 응답은 60%, 즐겁지 않다는 응답은 40%인데, 즐겁지 않은 이유가 1. 장시간 이동에 따른 스트레스, 2. 경제적인 부담, 3. 연휴 후 육체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 명절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반 강제적으로 가족끼리만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으니, 좀 여유있게 쉬시고,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건강하게 명절을 잘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고린도 전서 말씀으로, 명절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여야 하는 제사 문제를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조상의 은덕이 후대의 자손들에게 지대한 영항을 미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한 편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차에 가까스로 몸을 피해서 다행히 다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고 동영상을 보고, “평생 쓸 운을 다 썼다, 조상신이 도왔다”라는 댓글을 가장 많이 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났다”고 하고, 하는 일마다 실패한 사람은 “조상신이 노했다”고 말하고, 질병이나 지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묘자리가 불길하다”라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토속신앙의 뿌리는 우리 민족의 삶 곳곳에 깊이 뿌리 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아직도 각 가정에서 조상 제사를 드리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매우 중요 행사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기독교인, 비 기독교인 가족이 혼재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사 음식 준비하고, 제사상에 절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가정이 많이 있을 겁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내가 제사 드리는 가정에 속해 있든, 그렇지 않든 이 제사 문제를 믿음의 관점으로 정확하게 배우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당연하게 성경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사 문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에서도 큰 문제이자 골칫거리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이방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교인들 중 대다수는 너무나 익숙하게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 음식들을 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이자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겨서 갑자기 교회생활을 하다 보니, 성경 말씀에 따라서 제사를 즉시 금지하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매우 난감했습니다.
지금 시대의 우리들 처럼, 제사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끊어 버리자니, 가족과 이웃들에게 따돌림 당하게 생겼고, 그냥 옛날처럼 적당히 적당히 지내려고 하자니,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나도 명확하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교회 상황을 파악하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서, 제사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 가르침을 듣고, 이번 명절에서부터 제사문제에 올바르게 대응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제사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상황별로, 말씀에 비추어서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제사를 위해 음식 만드는 일, 제사 후 먹게 되는 음식 문제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집에서는 당연히 제사음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성드려 만들고, 제사상을 차립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제사상에 올려질 음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음식들을 만드는데 어쩔 수 없이 참여 해야 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할 겁니다. 피할 수 없다면, 기도하고 음식 만들자, 이런식으로 넘어가는 분이 대부분 일겁니다.
바울 사도는 제사 음식문제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는 여러 우상들에게 드려진 음식들을 시장에 내다 놓고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음식이 제사에 드려졌던 음식임을 잘 알면서도 사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그 음식을 사서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고민이었습니다.
바울이 이에대해 가르쳐 준 것은, 음식에 대한 대 전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먹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에 드려졌느냐, 아니냐가 우선이 아닙니다. 씨앗과, 땅과, 비와, 날씨를 통해 그 음식들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우선이었습니다.
25, 26절을 읽어 드립니다.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아멘
시장에서 파는 음식과 불신자 집에서 내 놓은 음식이 있다면, “이거 혹시 제사 음식인가요?” 이런식의 불쾌감을 주는 질문을 하지 말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냥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겁니다. 음식 자체에는 죄가 없습니다. 음식 자체는 부정한 것도 아니요, 우상이 거기에 깃드는 것도 아닙니다. 육식과 채식에 관한 모든 음식을 먹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 주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허용)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10:23절) 라는 말도 했습니다. 가하지 않는 경우, 즉 먹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 사도 바울은,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10:28)라고 했습니다.
제사 음식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 되었을 때에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의 양심 때문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미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오로지 불신자의 양심과, 불신자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명절에 집에서 음식 먹을 때, “너는 왜 이 음식 안 먹니? 라고 물으면, 어머니! 저는 예수님 믿잖아요. 제사에 올려진 음식말고 다른 것으로 많이 먹을게요. 대신 제가 음식 만들 때 더 정성껏 만들게요, 죄송해요 어머니~” 공손하게, 예쁘게 말하면, 참 유별나다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아, 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하는구나 라고 이해해 주실 겁니다.
믿는 사람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제사 음식은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저 같아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지만, 굳이 찾아서까지 그렇게 먹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내 자신의 양심과 믿음 보다,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의 양심과 복음을 위하셔서 지혜롭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먹는 문제를 말씀드렸기 때문에, 제사 음식 만드는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제사 음식이라는 생각을 지우시고, 가족들이 모여서 즐기는 행복한 식탁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음식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내가 그 복의 통로자가 되신다고 생각하시며, 정성껏 준비하시고,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는 제사음식 준비와 제사 음식 먹는 문제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이 가하다는 은혜를 먼저 앞세우셔서 묻지 말고 마음껏 잘 드시고, 남의 유익을 위하라는 말씀도 염두에 두셔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내 가족을 위해 조심하며 지혜롭게 대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제사 행위에 참여하는 것과, 제사상에 절하는 문제입니다.
제 고향 마을에 처음 교회가 세워졌을 때, 여느 교회와 다를 바 없이 대부분의 신자가 여성들, 바로 우리의 어머니 세대였습니다. 그 분들은 동네에서 친족이 함께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신앙공동체 이전에 하나의 마을 공동체의 일원 이었습니다. 그 공동체의 깊은 뿌리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였습니다.
만약에, 나는 교회 다니고 예수 믿기 때문에 제사 못한다고 하면, 당장 집에서도 쫓겨나고, 동네의 눈총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 집니다. 그런 상황이 있음에도, 죽어도 제사 못한다고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 신자들은 교회생활 하면서도 제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선택이 맞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이 그랬다는 겁니다.
제사가 있는 가정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 혼자 뿐이라면, 제사에 참여하고, 제사상에 절하는 문제로 인해 큰 고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아들네 가족이 기독교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아들 며느리에게는 말 못하고, 애먼 손자, 손녀에게 제사상에 절하라고 하면서, 애들은 괜찮다고 계속 강요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봤습니다. 제사 참여 문제로 싸우다 싸우다, 아예 왕래를 끊고 지내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가지 각색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문제가 각 가정마다 큰 골치 덩어리입니다.
음식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열린 가르침을 준 사도 바울이지만, 제사의 참여와 절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가르침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아멘.
14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하면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을 보면, 제사는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우상 숭배의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는 십계명 제 1계명을 어기는 가장 큰 범죄행위이자,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가장 가증한 일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 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게 되면 귀신과 교제(짝, 연합) 하는 것이 된다고도 말씀 했습니다. 귀신들이 노는 놀이터에 내 발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제사의 행위이고, 귀신들이 마음껏 들어와서 놀게하도록 내 가정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행위가 바로 제사입니다. 절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은 절대로 귀신에게는 절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꿇고 엎드리며 경배합니다. .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은 제사가 있는 상황에 부딪치면, 체면이나, 강요 등 어떤 경우라고 할 지라도, 절대로 제사에 참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제사상에 절 해서는 안 됩니다. 시댁에 가서는 아들이 책임지고 나서서, 친정에 가서는 딸이 책임지고 나서서,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거절하십시오.
제사 지낼 때 다른 방에 가셔서 기도 하시거나, 가족 모두가 밖에 나가서 산책하고 돌아오십시오. 제사참여와 제사상에 절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여지도 주지말고 단호하게 끊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올바른 태도입니다. 만약, 그 문제 때문에 가족간에 불화가 생기고, 왕래 끊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담대하게 맞서시고, 기도하며 감당해 내십시오. 주님은 그렇게 고난 당하는 일이라면, 오히려 칭찬하시고, 끝내 승리하는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20절과 대구되는 구절이 16절의 말씀으로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바로 이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우리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성찬에 참여 하는 것만이, 우리가 우리 인생들을 축복하며 소원을 아뢸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로 인해 하늘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온갖 귀신들을 다 몰아낼 수 있고, 시험과 유혹에서 벗어나 자유로롭고 평안하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사를 드리는 문제는, 하나님이냐 귀신이냐, 축복이냐 저주냐, 소망이냐 절망이냐, 하나님 나라냐 이 땅이냐를 선택하는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제사를 선택해서 예수님과 검(불화, 원수)으로 다투시겠습니까? 아니면, 제사를 거부해서 예수님과 화평(화목)을 이루시겠습니까?
가족보다, 부모보다, 자식보다, 예수님이 가장 우선이고 화평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제사에 관해서 성경 말씀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제사에 참여하고 제사상에 절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뿐만 아니라, 내 후손에게 있어서도, 절대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잘 가르친다는 믿음으로, 축복의 잔에 참여하는 참 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우리의 모든 행위의 결론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너무나도 잘 알려진 말씀이고, 우리 일상에서 많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어떤 때에 적용하시고 계시나요? 제가 보기에는 식사 기도 중에 이 말씀을 많이 인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성경이 말씀 하시는 그대로의 의미를 살펴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문제, 우상에게 제사하는 문제, 이러한 문제들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논점은, 이러한 선택의 문제들은 얼마든지 믿음 생활 중에 튀어 나올 수 있고, 성경을 토대로 해결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 때문에 고민이라면 묻지 말고 먹어라, 제사 때문에 문제라면 1계명을 봐라, 하지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복잡하지 않다. 제발, 그런 것 때문에 발목 잡혀서, 정작 너희들이 해야할 본질적인 것을 잊지 말아라 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럼 뭐가 본질입니까? 33절의 후반부의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아멘.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구원자(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 먼저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믿지 않는 자들의 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 목적으로 죽으시고 부활 하셨고, 바울이 그 목적으로 살다가 순교 하였고, 기독교 2천년 역사의 모든 교회와 성도의 일치된 방향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로 맞추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불신자)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가 장애물일까요? 33절 성경 말씀대로, 많은 사람(특히 불신자들)의 유익(복음 듣고 구원 받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내 자신의 유익(나만의 복음, 나만의 구원, 나만의 기쁨....)만을 구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만족하며 안주하게 살면서 나만, 나만, 나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먹는 문제, 제사 문제, 이런 논쟁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옳아, 너는 틀렸어, 옥신 각신 하면서, 자꾸 본질에서 벗어나서 한 두가지 사소한 판단을 가지고 거의 목숨 걸고 핏대를 높이며 다투기를 멈추지를 않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성경의 먹는 문제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순대국 아닙니까? 피채 먹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분명이 있는데, 왜 순대국을 드십니까?, 피를 다 빼고 먹으면 되지 않나?, 그래도 핏 방울이라도 묻어 있으면 안되지, 서로의 말이 맞다고 논쟁합니다. 참 쓸데 없고 소모적인 논쟁입니다.
순대국 먹으면 구원 못 받고, 먹지 않으면 구원 받는 다고 하면, 절대로 양보하지 말아야 하겠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미 율법의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율법 조항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울도 먹는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호에 따라서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뭐 하나 나오면 그저 자존심 걸고 내 말이 옳다는 것을 기어코 관철 시키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본질적인 구원의 문제는 사라지고, 다툼과 불화의 모습이, 불신자들에게 악 영향을 미쳐서 복음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됩니다. 교회도와 성도는 오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구원의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시는 실천적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라는 칭찬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질책하면서, 이제는 더 건설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라는 채찍과 권면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32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나 교회에 유익을 주지는 못할망정, 거치는 자(걸림돌)가 되어서는, 오히려 사람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들고, 교회가 분열되게 만들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장담하면 안 됩니다.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돌변하여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33절 앞 부분에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권면 합니다. 자신은 이미 사람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은 작은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구원이라는 본질에만 매달리고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이번 명절에 우리 모두가 기독교인으로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그리하여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실천해 보시려고 노력 하십시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도 감사함으로 잘 하시되, 나는 우리 가족 모두를 축복의 잔에 참여 하게 만드는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말씀으로, 믿음으로 굳게 서서, 제사와 먹는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 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시는 축복의 통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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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명절의 시간을 주셔서,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명절 지내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임해 감사가 넘치고, 구원의 은혜가 넘치는 시간 보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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