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1)(욥 11:7) 사도신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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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올해 우리는 "20주년을 준비하는 교회"이라는 표어 아래 네 가지의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정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첫째 강령(일어나 빛을 발하라)과 둘째 강령(내 집을 채워라)을 중심으로 차례로 설교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셋째 강령(배우고 전하라)에 도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에게 "일어나서 빛을 발하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집을 채우자"고 말해 왔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복음을 전도하려면, 먼저 우리가 복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복음을 분명히 알려면, 먼저 복음을 확실히 배우고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좀 딱딱할 지는 몰라도, 이제부터 앞으로 몇 달 동안 우리는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차례로 배워나가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볼까 합니다.
어린 꼬마들은 동네 골목대장을 가장 힘이 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자라게 된 아이들은 대개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좀 더 자라서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아버지보다는 학교 선생님을 더 높이 우러러보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사장님을 가장 힘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군대에 들어간 남자들은 고참과 장교를 힘있는 존재로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재벌의 회장이나 고위 관리 혹은 고위 정치가를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를 둘러보면, 미국이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국은 세계의 최강국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있는 대통령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입니다. 미국의 콧대를 한방 때릴 수는 있어도, 미국을 완전히 때려눕힐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의 꼴이 날까 봐,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미국 국적을 얻겠다고, 영어를 배우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우습게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 권력자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을 독실히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백악관에서 기도부터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부시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부시 대통령처럼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은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언제 부시처럼 군대를 동원하셔서 후세인같이 건방진 녀석을 쳐부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부시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까? 미국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한 게 많다는 말입니까? 그도 하나님 앞에서는 지은 죄가 많아서 괴롭다는 말입니까? 그도 하나님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언젠가는 큰 벌을 받을지 몰라 두려워한다는 말입니까?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그와 미국이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남도록 기도한다는 말입니까?
좌우간 부시 대통령도 교회에 가서는 우리처럼 항상 사도신경을 고백할 것이고, 그때마다 그는, 뜻을 제대로 알든 모르든,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시처럼 그렇게 힘이 세지 못합니다. 미국 사람처럼 그렇게 콧대가 높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평소에 부시처럼 강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큰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남들이 우리를 높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힘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부시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늘 기도해야 합니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힘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부시처럼 거만하게 힘을 자랑하고 싶습니까? 남보란 듯이 당당하게, 아니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고 싶습니까? 부시처럼 그렇게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기를 바랍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도 전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님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까? 좌우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않다면,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짜지 않은 소금은 소금이 아니듯이, 전능하지 않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전능하지도 않은 분을 누가 섬기고 예배하겠으며, 누가 그분에게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전능하십니다. 아니 오직 하나님만이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니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가장 먼저 고백하는 내용이고,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근본에 속합니다. "전능한 하나님" 혹은 "전능자"라는 말은 성경 전체를 아울러서 70회 이상 나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곳은 욥기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욥은 그 당대에 가장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혹심한 시련을 당한 끝에 하나님에게 항의를 합니다. 사실 우리도 "하나님은 전능하시다"고 말로는 고백하지만, 우리도 욥처럼 그렇게 지독한 고난을 당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의 전능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전능한 분이시라면, 왜 억울한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은 가만히 내버려두신다는 말인가?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아니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기라도 하는가? 이런 저런 의심과 불평을 늘어놓기 쉬울 것입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는 끔직한 전쟁과 고난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을 가장 잘 믿던 유대인들이 히틀러로부터 참혹한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무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유대인들뿐만이 아니라 이를 목격한 사람들까지도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귀머거리다. 하나님은 무능하다. 하나님은 죽었다. 그 후로부터 심지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독교인들조차 이제는 하나님보다는 돈과 권력, 사람과 강대국을 더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라는 고백은 점점 더 공허한 주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뜻도 모르고, 근성으로 고백하는 빈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욥은 견딜 수 없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하나님 앞에 토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전능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게 됩니다. 하나님을 전능하다고 고백하는 말이 욥기에는 무려 33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가장 의심할 만할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입에서, 그리고 결국 욥의 입에서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러하지만, 욥기에서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공의로운 심판을 뜻합니다. 그 중에 몇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욥 8:3]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욥 33:4]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 34: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욥 37: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도신경의 첫 고백대로, 하나님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다음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났다고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유에서 유를 만들고, 있는 것을 더 잘 활용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눅 18:27).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놀라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찌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없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어찌 새롭게 창조하실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으십니다.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역사의 맷돌은 너무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모든 것을 고르게, 잘게, 공평하게 빻는다고 합니다. 당장은 억울하게 보이는 일도, 하나님은 결국 공평하게 정리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는 말과 같은 뜻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만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이 "전능하사..."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전지전능하사..."라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 그리고 여러분의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만은 의심치 말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머리로 측량할 수 있는 하나님이 어찌 전능하신 분이겠습니까? 아무리 똑똑한 여러분의 머리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머리보다 더 크시고, 여러분의 지식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여러분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아시고, 여러분보다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계시며, 여러분보다 여러분을 더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고, 하나님을 늘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여러분의 편이 되어 주시고, 세상에서 강한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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