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과정(1)(마 27:11-26) 사도행전 강해
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관해 배웠습니다. 다시 줄여서 말씀을 드린다면,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을 위해 사셨고, 바로 이로 말미암아 악한 세상 나라와 충돌하게 되셨고, 그래서 결국 고난과 죽음에 이르게 되셨습니다. 사도신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런데 사도신경의 원문은 원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다스릴 때, 빌라도 총독 시절에 고난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누구로부터 고난을 받았는지 좀 애매해집니다. 마치 빌라도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그런 흔적이 나타납니다. 24절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 보았지만, 예수님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그의 선동을 받은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빌라도는 마지못해, 아니 본문의 기록대로 민란(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예수님을 죽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빌라도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이, 결백의 증거로서 물에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고난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빌라도의 무책임과 실수 때문에 빗어진, 어처구니없는 불행이라는 말입니까? 아니 예수님의 고난은 빌라도의 무지와 오해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사도신경은 '빌라도'라는 이름을 아주 빼버렸을 겁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아무 관련도 없는 빌라도가 무엇 때문에 사도신경에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사도신경을 고백해온 수많은 성도들은 빌라도를 공연히 입에 올렸다는 말입니까? 거룩한 신앙고백이 하필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사악한 인간 빌라도의 이름을 무엇 때문에 올려놓았습니까? 그의 이름과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시점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입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빌라도'라는 포악한 정치가의 이름이 사도신경에 올라온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포악한 정치가에 의해 폭력적인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형틀은 분명히 도망친 노예들이나 로마 제국에 저항한 사람들에게 씌워진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를 위태롭게 하시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고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돌아가셨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나무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달렸습니다. 설령 로마 군인이 조롱하는 뜻으로 이런 명패를 붙였다고 해도, 예수님의 죽음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의 죄명은 곧 국가 안보를 침해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직업적인 정치인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를 위해 그 어떤 파당도 만들지 않으셨고, 그 어떤 정치 강령과 정치 행동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열혈당원처럼 "로마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내세우지 않으셨고, 로마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무장 투쟁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로마 제국을 약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칼로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칼을 버리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면, 로마 제국은 힘없이 무너졌을 겁니다. 로마 제국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무참하게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로마 군인이 원수를 사랑했다면,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는커녕 자신을 해치는 원수에게도 보복하지 않았을 겁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포악하고 잔인한 정치가 헤롯을 보고 "여우"(눅 13:32)라고 비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너희를 마음대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지만,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마 20: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모든 종류의 억압과 지배, 폭력과 전쟁을 무너뜨리는 말씀이었습니다.
더욱이 "성전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열혈당원의 외침과 똑같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주위에 몰려든 제자들과 군중들을 보고서, 로마 군인은 민중 폭동이 일어날까 항상 걱정하였고, 그래서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위험 인물 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로마 군인을 향해 칼과 창을 던지시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 던져진 시한 폭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은 로마의 정치범으로서 형을 받는 운명에 처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빌라도의 오해 때문에 정치범으로 억울하게 죽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주장입니다. 만약 빌라도가 예수님을 오해하였다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신 예수님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뛰어난 신학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오해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죽을 이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오셨기 때문에 세상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 나라와 충돌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정치범으로 죽은 것은 전적으로 오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죽음은 억울한 죽음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억울한 죽음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속죄 죽음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날도 많은 교회와 성도들,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정교분리,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합니다. 이 세상의 더러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원한 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성경과 예수님은 정말 그렇게 가르칩니까?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오해와 무지입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이 세상과 무관한 나라가 아닙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위험한 말씀을 하셨는데도 빌라도가 어물쩍 넘어갔다니, 14절의 말대로 예수님이 기이한 게 아니라 빌라도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빌라도의 귀가 어두웠을까요, 아니면 그의 머리가 좀 모자랐을까요? 그 당시 유대인을 다스리는 왕이 누구였습니까? 로마 황제였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임명한 유대 지방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셨다는 것은 로마 황제와 빌라도의 권세에 정면으로 도전하신 셈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품으신 심중의 뜻은 빌라도가 생각한 뜻과 전혀 달랐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주장은 빌라도의 눈에는 분명히 반역죄로 비쳤을 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땅히 즉각 사형에 처해졌어야 합니다.
성경 본문 중에 가장 심하게 오해되어온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요한복음 18장 36절입니다. 여기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중에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개역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내 나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순수한 은혜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저 우주 공간, 사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저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눅 17:2).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 바로 지금, 바로 우리 가운데서 맛보고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의 번역과 정반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다, 즉 이 세상 안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 우리가 죽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다지 복된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괴로운 이 세상을 참고 살아야 하니, 하나님의 나라는 차라리 괴로운 소식일 겁니다. 아니 복음은 이 세상의 고통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이 고통을 달래주는 아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민중에게 아편을 던지신 게 아니라 복음을 주셨습니다. 배고프고 애통하고 가난하고 핍박받고 온유한 사람들을 보고, "죽을 때까지 참고 살아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바로 그들이, 지금 당장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늘 나라란 무엇입니까? 저 높은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과 왕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과 함께 가까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모든 권세와 우상은 심하게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통치자들은 무슨 일을 합니까?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과 권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황제에게도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막 12:17). 하지만 황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는 절대적인 통치자가 아니며, 더욱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황제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로마는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로마가 왜 망했는지는 역사가들은 이렇게 저렇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악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정권(롬 13:3)이 악한 일을 더 일삼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손에 무너졌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포악한 권세와 정부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우상과 독재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이 세상 안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찌 이 세상에 등을 돌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 악한 정부가 무너지고 올바른 정부가 세워지도록,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가득하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더욱 가까이 오도록, 우리는 늘 기도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밝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올바른 정부와 정치가를 세우도록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훌륭한 정치가들을 키우고 도와야 합니다. 올바른 삶도 곧 하나님에게 드리는 합당한 예배이므로, 주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곧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더 강하게 증거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명을 위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큰 위로와 놀라운 상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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