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강해2(시 104:24-31)
본문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내용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오늘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아버지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J.M. 로호만(Jan milic Lochman) 교수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려 하고, 새로운 현실을 일으키려는 결심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총괄하는 하늘과 땅이다. 그래서 세계가 있다. 세계는 전능하신 아버지 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는 혐오스럽고 속이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적인 창조, 선한 창조이다. 창조자의 관점에서 창세기의 보고가 명백하게 확인하고 있듯이,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창 1:31)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을 다 비신화화 하고, 모든 가치와 상태의 절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신격화 하거나, 그것의 가치나 조건을 절대화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것 자체가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것,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창조된 세계는 무질서하게 변덕스럽게 자기들 멋대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전체의 시간을 지배하면서, 형성하면서, 목적을 결정하면서, 완성하면서 그 모든 것을 포괄해 가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창조는 그것 자체로서 마지막이 아니라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습니다. 시편이나 예언서에서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들에 대해 깊이 탄식하면서도, 희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최초의 세상 창조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그 한 날이라는 목표로 향해 계속 형성되어가며, 완성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한 의미가 없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그 분에 대한 응답, 그 분의 영광과 승리에 대한 찬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서에서 보여주는 희망은 창조된 세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죄로 이 창조된 세상이 한없이 피폐해지고, 파괴되어 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는 중단되지 않고 지속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노아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홍수 심판 사건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사람들의 죄가 세상에 가득함과 그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가 창조한 모든 것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고, 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창 6:1-8)
창세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판 그 자체보다도 그러한 심판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혼돈을 넘어서 새로운 창조에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혼돈의 대지 위에 무지개는 바로 그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두움 가운데서 그러한 하나님의 희망을 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며 그 분을 찬양하게 됩니다.
다음 우주론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을 다 포괄합니다. 천지라는 말은 하늘과 땅을 의미합니다. 하늘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땅은 실제로 존재하면서 보이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은 천상 세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정신 세계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천상 세계에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에는 철학적인 이념과 신화의 세계, 초자연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창조주로서 하나님 고백은 이러한 모든 것들도 역시 피조된 것이지 그것들 자체가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서 창조에 대해 우리의 눈을 새롭게 열어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는 이 땅 위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창조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속한 것도 포함합니다. 심지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소멸되고 없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창조는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후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노라." (벧후 3:12-13)
이 땅위에 모든 것이 다 녹아 없어져 버릴 때 하나님의 창조는 끝이라고 단정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창조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형태들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한 고백은 창조에 대한 그러한 제한된 인식에 갇혀 있는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에 한정시키므로, 교회에서 조차 눈에 보이는 어떤 실증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지 않고 헌금이 많이 걷히지 않고, 교회 건물이 크게 지어지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성령의 창조 역사는 반드시 내 교회의 양적 팽창 가운데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교회됨을 더욱 더 포기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창조는 과학기술에 의해 유전공학이 발전하고, 우주선을 발사해서 미지의 은하계를 정복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창조개념은 인간의 삶의 상황을 더욱 더 황폐하게 하고 위협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반드시 유물론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차원적인 것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영역도 포함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그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적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습니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이미 다 되어진 세상을 돌아보며 그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고백은 하나님의 창조가 지금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과학의 힘에 의해 계속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고백도 아닙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 이외에 또 다른 정신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창조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 포괄한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다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는 인간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의 교리 문답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 나를 창조한 하나님을, 내게 몸과 영을, 눈·귀와 모든 지체들을, 이성과 모든 감각을 주셨고 보존하신 하나님을, 거기에 의복과 구두를, 음식과 음료수를, 집과 뜰을, 아내와 자녀를, 토지와 소와 그리고 모든 선물들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라는 고백은 인간은 맹목적인 운명에 내던져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늘의 별이나 달, 해가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주인이십니다. 예언자 예레미아는 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생각은 "재앙과 심판이 아니라 평안과 희망"(렘 29:11)이라 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세상 전체를 사랑으로 돌보고 계실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간에 대해 평안과 희망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이러한 믿음을 가졌던 예언자들을 이스라엘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언제나 분연히 일어나 자기 백성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이 이해한 이스라엘의 미래는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들의 손에 있지 않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좌절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바벨론 왕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그의 백성을 향해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이러한 믿음은 한 공동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낯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1-2, 5-6)
사람의 운명을 주관하는 것은 해와 달, 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신앙에서는 궁합, 이사, 택일, 토정비결, 점, 굿 같은 것들이 다 의미없는 것이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는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에 대한 문제도 포함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문제로서 창조의 목적과 관련됩니다. 로호만 교수의 말대로 하나님은 홀로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려 하고, 새로운 현실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그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한 것, 보기 좋은 것을 만듭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보시기에 좋은 창조는 이미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있습니다.
아버지,
세상 속을 걷노라면
때로 벅찬 감동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지으신 세상이기에
어느 곳에 머물든지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당신을 그토록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그토록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께 아무 것도 드리지 않는 저희이거늘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 저희를 그토록 사랑하게 하십니까?
아버지
당신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당신의 힘은 부드러운 연민입니다.
-조 만나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나이다. 그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그의 창조물입니다. 이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해 가고 보존되어 갑니다.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 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처음 창조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됩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나라와 권세는 영원 무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만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찬양하고, 그분만을 영화롭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회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혐오스럽고 속이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분의 창조는 선한 창조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의 사역을 위해 우리를 그의 동역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분의 선한 창조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의 혐오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며 때때로 실망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이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만물을 보기 좋게 창조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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