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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 은사는 지금도 존재하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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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보편적인 문제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이래 질병은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질병과 고통을 경감시킬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온 인류의 관심을 사로잡아 왔다. 그러나 병과 죽음은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을 고통에 빠뜨렸고 궁극적으로는 정복했다. 에녹과 엘리야만이 죽음을 피했다(창5:24;왕하 2:11). 그리고 예수님만이 죽음을 정복하고 영광 가운데 부활하셨다. 이 세 사람과 정상적인 평균 수명 안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태어난 수많은 사람은 모두 다 병으로나 상처로나 그 밖의 딱함으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았다. 아무도-심지어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예외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만일 내가 내게 주어진 은사 외에 단 하나의 영적인 은사를 더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신유의 은사를 구할 것이다. 내게 병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해 보았다. 나는 병실에서 소중한 자녀가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우는 부모 곁에 있어 보았다. 친한 친구가 수술이 불가능한 땀에 걸려 죽어 갈 때 그와 함께 기도한 적도 있었다. 한 젊은이가 병원응급실에서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일 때 곁에서 무력하게 지켜만 본 적도 있었다.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은 십대들도 보았고 맥박은 뛰고 있는데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도 보았다. 친한 친구가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적이지 못해서 수술 후 얼마 못 가 눈을 감는 모습, 수술 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았다. 질병과 상처로 영구히 불구가 된 사람들을 나는 안다. 가슴 아프게도 기형아로 태어나는 아기들도 본다. 사람들이 절단 수술과 그 밖의 비극적인 상해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운 적도 있다. 이런 수많은 일을 겪으며 나는 말 한마디, 손길 한번, 명령 하나로 사람들을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내겐 그럴 능력이 없다.

신유의 은사가 있다면 얼마나 짜릿하고 보람이 있을지 생각해 보라! 아픈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나으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신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전세계에서 질병이 창궐하는 지역에 보내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그들은 군중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암, 결핵, 에이즈, 그 밖에 수많은 질병을 고쳐 줄 것이다.

왜 은사주의 신유 치료자들은 그런 일을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왜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 모아 그들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 섬기러 보내지 않을까? 그러면 그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있는 병원과 요양소부터 먼저 찾아가고 그 뒤에는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찾아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픈 사람들을 고칠 수 있는 기회는 무진장 널려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자주 주장하듯이 그런 기적이 불신자들에게 확신을 주려는 목적의 표적과 기사라면 그와 같은 사역이 그 목적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신유 치료자들은 자신들의 천막이나 텔레비전 스튜디오 밖으로 좀처럼 나오는 법이 없다. 그들은 항상 통제된 환경에서만 준비된 방식대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은사를 발휘하는 듯 보인다. 왜 우리는 신유 은사가 병원 복도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소식을 좀처럼 들을 수 없을까? 왜 더 많은 신유 치료자가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거리에서 자신들의 은사를 사용하지 않을까? 왜 그들은 수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나환자 수용소나 에이즈 환자 수용 시설에 가지 않을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그런 은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유의 은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한 일시적인 표적으로서 은사였다. 그러한 확증이 이미 이루어진 뒤 신유의 은사는 사라졌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몸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으시지만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는 무한히 더 관심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마10:28). 우리는 설령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마음대로 치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은 여전히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사도들도 예수님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었다. 사도들도 온갖 신유의 기적을 행했다. 그렇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했다. 구원은 육체적인 치유를 체험하거나본다고 해서 오는 것이 따니다. 구원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온다(롬10:17)

그러나 신유의 은사는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나 이교도들이나 똑같이 주장해 왔다.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신유의 능력을 주장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나 베드로의 유골, 십자가의 파편, 또는 심지어 마리아의 젖병과 더불어 신유를 행하는 사람들을 자랑해 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의 가톨릭 성지인 루르드는 수많은 기적의 치유가 일어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레에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1500만 명의 사람이 다녀갔다. 그들은 1981년에 그 곳에 사는 여섯 명의 아이에게 나타났다는 동정녀 마리아의 유령에게서 기적이나 치유를 체험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동양의 영매 치유자들은 '무혈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고통받는 장기 위로 손을 흔들며 주문을 외운다. 그러면 사람들이 낫는다고 한다.

주술사들과 무당들도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주장한다. 신비술사들은 병 고치는 마술에서 가짜 기적을 일으키는 데 흑마술을 사용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시자 메리 베이커 에디는 텔레파시를 통해 사람들을 고쳤다고 주장했다. 사탄은 언제나 거짓 치유를 통해 사람들을 손아귀 안에 쥐고 흔들어 왔다.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강신술 영매 출신의 래피얼 개슨(Raphael Gasson)은 이렇게 말했다. '사탄에게 이 놀라운 능력의 은사를 받은 강신술사들이 요즘 너무너무 많이 있다. 나 자신도 그렇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나는 강신술 '치유 집회' 에서 일어나는 기적적인 치유를 분명히 목격했다고 증언할 수 있다.

기독교 계열, 특히 오순절 및 은사주의 운동에서도 치유의 능력에 대한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 보라. 아마 밤낮에 관계 없이 아무 때나 원격 치유를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녹화된 프로그램이어도 상관 없다.

나는 목사님께 아내의 암을 기적으로 고침 받았다고 말한 어떤 남자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부인은 지금 어떠세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요? 병 고친 지 얼마 만에요?" "일 년 만에요."

 

은사주의 운동 안에서는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흔하다. 케네스 허긴은 대규모 신유 집회에서 청력 상실이 완전히 고쳐졌다는 어느 목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집회가 끝날 때쯤 그분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청기를 다시 꼈다."

은사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기적과 치유에 대해 "이보다 더할 수 있느냐?"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보여 준다. 어느 인기 있는 은사주의 텔레비전 쇼에 출연한 한 목사는 자신의 신유 은사가 이런 식으로 역사한다고 설명했다. "오전 예배 시간에 주님은 내가 어떤 환자들을 고칠 수 있는지 말해 주십니다. '암 환자 세 명, 허리 안좋은 사람 한 명, 두통 환자 두 명을 고칠 수 있다. ' 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교인들에게 그 사실을 발표하면서 저녁 예배 때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누구든지 자기가 그 날밤에 고침 받을 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신유 은사 자세히 들여다보기

신유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법과 행동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지만 그들의 예배에서 무언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넘어지고 '성령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다 나았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신유 치료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유 치료자들이 언급하는 대부분의 '증거'는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증거는 추측이거나 주관적인 견해다. 딱 한 사람, 복음주의자는 아니지만 의사인 월리엄 놀런은 신유 치료자들의 주장을 검증해 보았다. 놀런은 『신유: 기적을 찾는 의사』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그는 특별히 자신이 자세히 연구한 캐스린 쿨먼과 관련해서 은사주의 신유 치료자들에 대한 항목을 포함시켰다. 놀런은 어느 신유 예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마침내 다 끝났다. 아직도 단상 위로 올라가 병이 나았다고 주장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다섯 시가 되자 찬송가 한곡과 마지막 축도와 더불어 쇼는 막을 내렸다. 쿨먼은 단상을 떠났고 청중도 청중석을 떠났다.

쿨먼과 대화를 나누러 돌아가기 전에 나는 몇 분 동안 휠체어에 앉은 환자들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절망적일 만큼 아픈 환자들은 모두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실제로 신장의 암이 척추와 엉덩이에까지 퍼진 사람, 내 도움을 받아 청중석까지 돌아갔고, 고침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빌린 휠체어를 타고 단상에 올라가 청중에게 보여 주던 그 사람은 이제 다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의 '치유' 는 히스테리적인 것일 뿐이었지만 극도로 짧은 시간에 사라졌다.

나는 복도에 서서 가망 없는 환자들이 힘없이 자리를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부모들이 지체가 부자유한 자녀를 엘리베이터에 태울 때 그들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쿨먼도 나와 함께 그 광경을 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녀는 집회 중에 몇 번이나 자신의 '막중한 책임감'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고침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지' 에 대해 호소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정말 그들을 얼마나 자주 쳐다보았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활액낭염과 관절염에서 '나은' 사람들의 기쁨이 다리가 오그라든 사람, 저능아 자식을 둔 사람, 간암에 걸린 사람이 아무 변화 없이 자리를 뜰 때의 고통을 상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정말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전혀 모르고 충분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의학적인 치유의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이 있다. 먼저 우리 몸의 자기 치유 능력부터 따져 보자. 캐스린 쿨먼은 이렇게 자주 말한다. "내가 고치는 게 아닙니다. 성령님이 나를 통해 고치시는 거죠." 나는 쿨먼이 이 말을 계속 반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첫째, 환자가 차도가 없으면 캐스린 쿨먼의 잘못이 아니라 성령의 잘못이다. 둘째, 그녀는 치유에 대해서 도무지 아는게 없다. 그래서 일단 책임을 성령에게로 넘기고 나면 누군가 그녀의 치유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난 잘 모릅니다. 성령님이 다 하시는 일이니까."

 

놀런 박사는 계속해서 은사주의 신유 치료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암시를 통해 종종 손을 얹거나 얹지 않거나 간에 환자에게 영향을 주고 질병의 증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치유는 기적이 아니라 환자 자신의 자율 신경계가 기능을 발휘하는 데서 비롯되는 결과다. 놀런은 또한 신유 치료자든 의사든 모든 치료자는 어느 정도 암시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놀런은 자신도 환자에게 약이나 주사를 처방할 때 꼭 그 환자에게 24시간에서 48시간 내에 몸 상태가 나아질 것이라고 말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 환자에게 불확실한 메시지를 던질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놀런이 지적하는 대로 특별히 몸의 기능적 장애와 관련된 문제일 경우 낙관적인 태도가 큰 힘을 발휘한다.

놀런 박사는 기능성 질환과 기질성 질환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기능성 질환이란 완벽하게 양호한 기관이 기능 이상을 일으키는 질환인 반면, 기질성 질환이란 기관 자체가 병이 들거나 장애가 있거나 물리적으로 손상되거나 심지어 기능이 상실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전염병, 심장마비, 담석, 탈장, 디스크, 각종 암, 골절, 선천성 기형 , 열상'등은 모두 기질성 질환에 속한다. 신유 치료자들은 기질성 질환을 치료할 수 없다고 놀런은 주장한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글에서 놀런은 쿨먼이 '심인성 질환' -마음과 관계된 질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서 팔이 아픈 것은 기능성 질환이고 팔이 오그라들었거나 아예 없는 것은 기질성 질환이며 팔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인성 질환이다. 놀런은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온갖 문헌을 찾아보라. 그러면 신유 치료자가 담석이나 심장 질환이나 암이나 그 밖에 다른 심각한 기질성 질환을 고쳤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환자들의 소화 불량, 가슴 통증, 호흡 곤란이 일시적으로 해소된 예는 분명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런일시적인 증상 완화를 병이 고쳐졌다는 증거로 해석하려는 신유 치료자나 신자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환자에 대한 기록을 계속 추적해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보면 언제나 그 '치료'라는 것이 순전히 증상에만 관련이 있고 일시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질환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신유 치료자가 심각한 기질적 질환을 치료하려고 덤비면 환자에게 말로 표현 못할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때로 신유 치료자들은 환자들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효과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몇 년 전, 내가 설교 시간에 이 장에서 소개한 많은 내용을 전한 뒤에 한 젊은이가 내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은 그 메시지가 제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모르실 겁니다. 저는 높은 데서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치고 심각한 두통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면서 제 병이 다 나았다고 말했고 실제로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후로 두통이 다시 생겨서 저는 마치 제가 하나님의 치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는데 오늘 아침에 목사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자유로워졌어요. 이제 병원에 가 봐야겠습니다." 진작 의사에게 찾아갔으면 두통의 기질적 원인을 찾아 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증거는 대체 무엇인가?

신유 치료자들을 믿어온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놀런 박사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항의할 것이다. 그는 복음주의자가 아니니까 아마도 기적을 안 믿으려 하지 않겠는가? 그의 연구는 얼마나 객관적이었는가? 놀런 박사는 쿨먼 본인이 '고쳐졌다. '고 간주한 암환자들의 명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가 보낸 명단에 있는 총 여덟 명의 암 환자 모두에게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내 연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유일한 환자는 쿨먼에게서 전립선암을 고침 받았다고 주장한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상황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를 보내 왔다. 전립선암은 호르몬요법에 매우 민감할 때가 많다. 암이 퍼지면 방사선 치료에도 극도로 민감할 경우가 많다. 이 환자는 수술, 방사선, 호르몬 등 광범위한 치료를 이미 받았다. 또 캐스린 쿨먼에게도 '치료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치료-이 경우는 치료가 아니라 일시적인 증세 완화일지도 모른다-된 것이 쿨먼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반인이건 의사건 그의 보고서를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어떤 종류의 치료가 실제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는지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쿨먼이 이

환사의 상황에 의존해서 성령이 자신을 통해 암을 '치료'했음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녀는 매우 절망적인 긍지에 빠질 것이다.

 

놀런 박사는 캐스린 쿨먼이 치유했다는 82명의 사례에 대해 그녀가 제공한 이름을 이용하여 추적 연구를 했다. 그런데 82명 중에서 23명만이 답변을 보내고 설문에 응했다. 연구 끝에 놀런이 내린 결론은 이른바 신유 사례 가운데 단 한 건도 진짜로 인정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캐스린 쿨먼의 의학적 소양 부족은 중대한 문제다. 나는 그녀가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나 의식적으로 부정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내 생각에 그녀는 자신의 집회에 와서 치유를 요구하는 수천명의 아픈 사람이 자신의 사역을 통해 기질성 질환에서 고침 받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 같다. 또한 나는 그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본다(내 연구가 이 사실을 입증한다).

(노골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어서 유감이지만) 무지가 문제다. 쿨먼은 심인성 질환과 기질성 질환의 차이를 알진 못한다. 그녀는 최면술 기법을 사용하지만 최면술과 암시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는 자율 신경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또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언가 안다고 해도 분명히 자신의 지식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쿨먼은 자신의 사역이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기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자신의 사역의 정당성을 위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부정하도록 자신을 훈련시켜 왔다.

 

더 최근에는 '놀라운 랜디'로 유명한 전문적인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가 신유 치료자들의 주장을 검토하는 책 한 권을 썼다. 랜디는 1986년에 "투나잇 쇼"라는 프로그램에서 텔레비전 전도자 피터 포포프의 속임수를 폭로한 사람이다. (포포프는 하나님으로부터 청중들에 대한 '지식의 말씀'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의 구체적인 설명은 믿기 어려울 만큼 정확했다. 그러나 그는 글지 귓속에 감춰진 수신 장치를 통해 아내에게서 받은 정보를 그대로 따라서 말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그의 아내는 집회가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과 격의 없이 나눈 대화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질문 카드와 커닝 페이퍼를 보며 줄줄 읽어 주었다.

랜디는 기독교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하고 공정하게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랜디는 수십 명의 신유치료자에게 진짜 신유의 '직접적이고 검증 가능한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책에서 최소한 딱 한 번이라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도록 단 한 건의 기적 치유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의 신유 치료자도 그에게 자연적인 건강 회복이나 심신증적인 개선이나 명백한 속임수로는 설명할 수없는 의학적으로 확인된 신유를 단 한 건도 제시하지 못했다. 랜디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원리적으로 말해서 오늘날의 신유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단순히 '마술'에 불과하다. 신유 치료자들은 마술과의 어떤 관련성도 완강히 부인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그러한 정의의 모든 필요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 안에는 마술의 모든 요소가 다 있고 그 내용은 마술과 똑같다.

물론 많은 신유 치료자는 자신들이 하는 주장에 대해 대충 얼버무린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신유의 능력이 있다는 자신의 주장조차 부정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고치지 않습니다. 성령이 고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쇼맨십과 허장성세와 교묘한 속임수는 그들의 말을 뒤집는다. 이들이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왜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그들의 집회에 몰려올까? 왜 그들은 자신들의 집회에서 고침 받았다는 사람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할까?

우리가 들어본 적 있는 신유의 사례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 중에 어느 것이라도 진짜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산산이 부서진 뼈들이 고쳐진 사례는 어디 있는가? 신유 치료자가 자동차 사고를 당한 사람의 찢어진 얼굴이나 부서진 두개골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 보았는가? 말기 환자가 나은 일은 어디 있는가?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의 팔다리가 다시 생겼다거나 사지가 마비됐던 사람이 지금은 정상적으로 생활한다거나 하는 사례는 어디 있는가? 반면에 우리가 대개 보는 것은 상상 속에서 고쳐진 가상의 병인 듯하다. 오늘날의 자칭 신유 치료자라는 이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자기가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기적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

그들 중에 많은 이는 솔직히 말해서 사기를 치고 있고 그들이 보여 주는 신유는 분명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수천 명의 똑똑한 사람이 계속해서 그들의 집회에 참석한다. 왜 그럴까? 병이 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병은 사람들을 보통 때는 하지 않을 광적이고 극단적인 일도 서슴없이 하도록 몰고 간다. 평소에는 조리 있고 명석하고 균형 잡힌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변한다. 사탄은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사탄은 이렇게 말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욥 2:4).

가장 절망적이고 가슴 아픈 경우는 치료가 불가능할 만큼 기질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경우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는 전혀 아프지 않다. 그들은 심신증이나 일종의 사소한 기능성 질환을 갖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의심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기적이라고 믿는 것을 봄으로써 믿음을 키우기 위해 집회마다 쫓아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어느 누구의 믿음도 실제로 강건해지지 않고 어느 누구의 질병도 실제로 고쳐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을 실망시켰거나 자신이 하나님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하며 위안도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다.

은사주의자나 비은사주의자나 신유에 대해 들은 말 때문에 많은 혼란과 죄책감과 마음고생을 경험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나 믿음 부족이나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관심 때문에 고침 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질병의 고통은 가중되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은 신유가 가능한데도 자신들이 고침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거나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신유 치료자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황폐함이 남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식으로 병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병을 고치시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나는 초자연적 치유에 대한 모든 주장을 그 가운데 일부가 거짓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에 의한 극적이고 기적적이며 직접적인 개입은 극히 드물며 치유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소위 신유 은사가 있다는 이들에게는 결코 의존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참된 치유는 기도의 결과로 찾아올 수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 단순한 자연적 치유과정을 포함한다. 또 어떤 때는 하나님이 회복 작용을 촉진하시고 병자를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건강하게 회복시키신다. 때때로 하나님은 의학적 예상을 뒤집으셔서 병자가 정상적으로는 몸이 쇠약해지는 질병에서 회복되게 하신다. 그와 같은 치유는 기도왁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의 결과로 찾아오며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치유의 은사,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 치유 사역을 위한 특별한 기름부음, 자기가 한 일로 '주장' 할 수 있는 치유, 기타 전형적인 신유기법은 사도 시대 이후에는 아무런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병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병을 고치신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 제자들의 시대에 일어난 치유와 오늘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직접 우편으로나 해외의 부흥사들에 의해 행해지는 '치유' 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성경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어떻게 고치셨는가?

오늘날 주장되고 있는 치유 은사와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비교하려면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우리 수님은 사도적 은사의 본을 보이셨고 수많은 병을 고치셨다. 예수님 시대에 세상은 질병으로 가득헌다. 의학 수준은 조잡했고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불치병이 훨씬 많았다. 역병이 도시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었다. 예수님은자신의 신성을 보여 주시기 위해 질병을 고치셨다. 어떻게 고치셨는가? 성경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지닌 여섯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보여 준다.

 

첫째,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나 접촉 한 번으로 병을 고치셨다.

마태복음 8장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 하인을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 하인은 중풍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6~7절).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그의 집에 가서 하인을 고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수 있다며 예수님을 만류했다(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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