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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은사는 지금도 존재하는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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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주의의 신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은사주의자들은 체험에 호소함으로써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추론에 대해 답변할 때가 많다. 그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나는 은사주의자들에게서 그런 식의 천편 일률적인 말들을 끊임없이 듣는다. "내가 알기로는 이 부인의 아들은 암에 걸렸는데‥‥‥‥‥내 친구의 어머니는 관절염이 너무 심해서 거동도 못했는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떤 은사 치료자라도 기질성 질환을 포함해서 진짜로 입증 가능한 순간적 치유의 사례를 보여 주지 못하니까요." "어떤 은사 치료자도 치료받기 위해 오는 모든 사람을 다 고치지 못하고 수백 명의 환자가 집회에 올 때 모습 그대로 아프거나 불구인 채로 집에 돌아가니까요.' "어떤 은사 치료자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하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이외의 어떤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니까요." "은사주의의 신유는 속죄와 구원에 대한 미심쩍은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은사주의에 대해 글을 쓰거나 가르치는 이들은 사람들이 병들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은사 치료자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환경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들이 신유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는 비약하거나 근거가 없거나 너무 과장된 경우가 많으니까요." "믿음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도 많이 있는데 은사주의자들이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간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은사주의자들의 신유는 대부분의 경우 의심할 여지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은사주의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병들고 죽으니까요," "신유를 둘러싸고 온갖 혼란과 모순이 벌어지니까요.' "나도 한가질문합시다. 당신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건 분명히 성경적인 신유 은사가 아닙니다!"

 

치유는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 러나 성경적인 신유의 은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사람을 원하시는 때에 고치신다. 내 인간적인 지혜로는 하나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은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여느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서 가장 비극적이고, 설명이 불가능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의 사례들을 목격해 왔다. 사랑하는 사람들 회복을 위해 그들의 가족과 함께 열심히 기도했지만 결국 응답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은사주의 목회자들도-만일 그들이 정직하다면-똑같은 경험을 해 본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은사주의 설교자들과 치료자들과 지도자들은 고침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에 대해서 전형적으로 어떤 설명을 하는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런 식의 설명은 친절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병에 걸리는가?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들은 병에 걸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간과해선 안 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병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출애굽기 4장 1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 말씀은 아주 단순하고 직접적인 말씀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생각은 좀 불쾌해 보인다. 사랑의 하나님이 누군가가 고통당하기를 원하실까? 왜 하나님은 사람을 귀머거리나 벙어리나 맹인으로 만들려 하실까?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는 우리의 유한한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거듭해서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불구자와 병약자를 만드셨다. 장애를 가진 아기가 매일 태어나고 있고 많은 아이가 선천적인 기형 상태로 성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지속되는 병을 앓고 있다. 우리의 인간적인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어떤 병은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누가복음 13장11~13절은 예수님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고치시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나님은 사탄이 나름의 이유로 누군가를 병들게 하도록 허용하실 수도 있다. 그 고전적인 성경적 실례가 바로 욥이다(욥기 1장을 보라).

 

어떤 병은 죄에 대한 징계다.

민수기 12장에서 우리는 미리암이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문둥병에 걸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뒤로 그녀는 회개해서 병이 낫는다. 신명기 28장 20~2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죄를 지으면 역병으로 그들을 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열왕기하 5장에서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탐욕 때문에 문둥병에 걸린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우리는 병이 들 때 하나님께 자백하지 않은 죄가 있는지 삶의 모든 영역을 점검해 봐야 한다. 자백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른 아픈 사람에게 조언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 속의 죄에 대해 묻거나 비판하는 일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를 점검하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성경적 원리를 악용해서 부당하게 다른 사람의 죄를 비판하기가 너무 쉽다(참조 요 9:1~3).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병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런 경우만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병은 반드시 개인적인 죄와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병 고침을 받지 못 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매정하고 잔인하다. 우리는 욥의 친구들이 범한 잘못을 피할 필요가 있다(참조. 욥42:7~8).

 

하나님은 믿음있는 모든 사람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셨는가?

하나님은 모든 신자가 건강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은 분명히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사실에 못지 않게 하나님이 병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도 긍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병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떤 병을 앓는 동안에도 하나님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으로 인해 병을 고치신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의 원어는 야훼 로페카인데 이는 '너희를 고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병들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으로 인해 병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21:22; 요 14:13~14; 16:24;요일 5:14). 이는 우리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침받기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식으로 인해 병을 고치신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방식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과 질병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고 싶다면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병을 고치러 도처에 다니셨다. 예수님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입증하실 수도 있었지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마 8:17) 고통과 고난을 덜어 주는 자비로운 방편을 선택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이 앞에서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대해 논의하면서 지적한 대로(4장을 보라) 이 시대에 모든 병에 대한 치유가 속죄의 일부로 보장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를 대신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서의 치유 방식을 확인시켜 주고 우리에게 현재 이 세상의 질병과 연약함에서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해방을 보증한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에서는 어떤 질병이나 죽음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병원에 가야 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분명히 병을 고치신다고 가르치지만 더불어 그리스도인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이사야서 38장은 히스기야 왕이 병으로 죽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이 심히 통곡하며 하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하자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주목해 보라. "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사38:21). 하나님이 치유를 허락하셨는데 왜 찜질약이 필요했을까? 하나님은 여기서 한 가지 원리를 제시하셨다. 즉, 아프면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일과 의사에게 찾아가는 일을 둘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와 같은 생각을 확증해 주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물론 예수님은 여기서 죄의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비유를 사용하셨다.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은 의학적인 치료가 하나님의 뜻과 양립한다는 사실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기적으로 고친 뒤에 많은 사람이 고침을 받으러 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8절에서 바울이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치유한 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치유를 뜻하는 일반적인 말인 반면, 9절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치유한 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단어는 의학적인 치료를 뜻하는 말이며 영어 단어 therapeuric( '치료법의' )은 이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아마도 바울은 기적으로 병을 고쳤고 의사였던 바울의 동료 누가(골 4:14)는 의학적으로 병을 고쳤을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선교팀인가!

원리는 분명하다. 우리는 아플 때 기도해야 하고 유능한 의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며 전심으로 완벽한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러야 한다. 결국 역경은 이 땅에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약1:2~4; 벧전 5:10) 영원한 천국에서는 우레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롬8:18;벧전 1:6-7). 타락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때 생존해 있는 택함 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궁극적으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유익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질병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주권적인 뜻과 의향에 따라 병을 고치신다. 우리에게 그 밖에 다른 길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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