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청년들의 신앙과 교육(에스라3:8-13)
본문
청년들의 신앙과 교육(에스라3:8-13)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당신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이 질문은 만약에 부모들에게 한다면 아마 “자녀키우는 재미로 산다”고 말씀하실 분들이 꽤 많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자식농사만큼 중요한 농사는 없다’고 그럽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전세계적으로 2등간다면 서러워할 정도록 자녀교육이 과열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교육하는데 있어서는 혼신의 힘을 다하며,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아까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재미로 산다는 것은 그 자녀들이 앞으로 만들어나갈 미래를 기대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이다음에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하는 것을 기쁨으로 기대하면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투자는 한 가정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공통체든지, 교회든지, 사회든지, 국가든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자녀세대를 잘 보살피고, 교육하고, 양육하지 않으면 어떤 공동체든지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지금은 그나마 정체되어 있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 한국교회는 분명히, 그리고 불보듯 뻔하게 침체되고 침몰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한국에 있는 어느 교회든지 장년과 교회학교 아이들의 비율을 따져보면 아이들의 수는 장년 출석수의 1/4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계는 분명 10-20년되면 한국교회의 침체상황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의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왜 집안에서는 자녀 키우는 재미로 산다고 말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면서, 왜 교회의 2세들에게는 그런 교육과 관심과 투자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만큼 2세교육에 관심과 애정을 가졌는지, 또 그 교육의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재건) 공사가 있는 곳에 먼저 포로로 붙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 중에는 나이많은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서 여러 노인들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주전 598년에 1차로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붙잡혀갔던 사람이 있었고,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려는 때가 주전 536년경이니 60년이 넘었고, 587년에 있었던 2차 포로압송 때 압송된 사람들은 적어도 50년 정도 포로생활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노인들의 나이는 최소 60-70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이든 사람들이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 하나 갖고 그 머나 먼길을 헤치면서 걸어서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는 그렇게 나이든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20대 청년들도 있었음을 우리는 8절 하반절과 9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 이상인 레위 사람들을 세워서 건축감독을 삼았고, 건축감독으로 임명한 사람들의 명단을 9절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 청년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났고, 바벨론에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한번도 예루살렘에서 산 적도 없고, 그 성전을 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태아나고 자랐던 마치 고향과도 같은 바벨론을 떠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훼파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자 긴 여행을 통해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이 먼길을 힘들게 걸어서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도 감동스럽지만, 한번도 예루살렘이나 성전을 본 적이 없는 그 청년들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더욱 더 놀라운 일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소망하게 하고, 20년간 생활했던 삶의 터전들을 버리고, 풀과 잡목들이 무성하고 무너진 돌들이 널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한 신앙교육 때문이다. 그들은 이 신앙교육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한번도 보지못한 말로만 들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사랑하였다.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한데, 용서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의 부모님들 두분다 이북분들입니다. 6.25때에 부산까지 피난가서는 피난 나온 이들과 부산영락교회를 세우고 거기서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부산 영락교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이북분들이 세운 부산영락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앙교육을 그분들에게 받으면서 이북에서의 신앙생활을 듣고, 그들의 신앙훈련들을 들으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저는 한번도 이북에 가본적도 없고, 아버지 고향인 평북 선천에도 가본적이 없는데 제가 앞으로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한가지 소망이 이다음에 통일이 되면 반드시 평북 선천에다가 교회를 세우고 거기서 목회를 해야 겠다는 마음이 저도 알게 모르게 꿈으로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의 부모님이나 누군가가 저에게 그것을 지시한 적이 없고 명령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도 알게 모르게 이북분들에게 신앙교육을 받았다는 한가지 이유로 저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이북을 사랑하게 되고, 평북 선천에다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모든 사람들 중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도 좋다는 고레스 칙령이 선포된 이후, 아무리 고레스 칙령이 발표되었다 할 지라도 50년이 훨씬 지난 후에 귀국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맨 처음 포로로 끌려간 1세대 노인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란 포로2세, 3세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는 바벨론의 기후와 자연과 상황에 더 많이 적응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고향이지만 되돌아가서 새로 적응해야한다는 부담감은 누구에게나 컸을 것이다. 또 왜 고국으로 되돌아 가야하는 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에서 보면 많은 20대의 청년들이 바벨론을 떠나 이스랑레을 향했으며,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먼 타국, 바벨론에 있으면서도 어른들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알게모르게 예루살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비록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언젠가는 고국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을 세우고 거기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 때가 올 것이다” 이러한 세뇌과 의식화 작업을 신앙교육을 통해서 받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귀국하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한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볼 것은, 그 이스라엘의 어른들은 신앙교육만 철저히 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8절 말씀에서 보면 “20세 이상의 레위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게 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세의 젊은 청년들을 막노동을 시킬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들의 자질과 재능을 생각하여 성전 건축의 감독으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묵상하면서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을 감독으로 삼고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한마음되어 그들의 지시에 따른 어른들, 그 어른들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염산교회 오기 전에 대학생 시절에는 동대문에 있는 동신교회에서 대학부와 청년부 활동을 했습니다. 그 활동을 하면서 대학부 회장을 1년간 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여러 교회의 어른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이미 사회에서도 성인이 된 대학생들을 어린 중고등학생들을 다루듯이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회장으로 있었던 1년동안 주일날에는 양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양복을 입으면 교회 어른들이 함부로 대우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다른 임원들에게도 양복을 입으라고 권장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엄연히 사회에서 성인입니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한다고 하면 마치 어린 학생들이 북치고 괭과리치고 저희들끼리 무엇인가 하는가보다 하는 정도이고, 혹시 저러다가 교회 시설을 망가트리지 않을까? 하는 눈초리로 지켜봅니다. 어떻게든 죄악에 물든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켜볼려고 하는 그러한 청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곤합니다.
그래도 우리 염산교회는 청년들을 이처럼 다루지는 않습니다. 오신주 목사님께서도 청년 목회에 관심을 가지셔서 내년부터는 본예배의 4부예배로 청년들이 주도하는 예배를 신설케 하셨고, 내일 있을 예향축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도 청년들이 찬양하려면 악기가 필요하니 드럼사주십시오? 했더니 바로 드럼을 사주실 정도로 청년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오늘 철야예배는 정충식 목사님이 담당해야 할 텐데 제가 자원해서 설교하겠다고 했습니다. 내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예향축제가 있는데 교회 어른들에게 홍보할 기회가 없어서 어른들은 잘 모를 것 같아서, 그래더 금요 철야때 모이는 어른들이라면 교회에서 소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제가 설교를 자원했습니다.
여러분! 이 예향축제를 위해서 우리 청년들이 30일 동안 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새벽 5시에 새벽기도를 드렸지만 우리 청년들은 3층의 유치부실에서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의 집이 남양주입니다. 새벽에 달려도 넉넉히 1시간 10쯤 걸립니다. 저 때문에 시간을 새벽 6시 30분으로 정하고 매일 평균 15명에서 20명의 청년들이 이 예향축제를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한번이라도 새벽기도회에 나온 인원을 정리해보니까?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이 한번씩을 출석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목표로 삼은 것은 무엇보다도 본당을 꽉 채우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본당을 채우려면 400-500명은 있어야 할 것인데, 사실 40-50명의 청년들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 우리 염산교회에 청년들이 살아있음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일이면 뚜껑이 열릴텐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염산교회의 기도의 사람들인 여러분들이 우리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여러분도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년부에서 한다고 청년들만이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어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집회입니다. 오시면 청년들의 드라마도 볼 수 있을 것이고, 훌륭한 목사님을 모시는데, 목사님을 통해서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청년들에게 큰 힘과 위로와 용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벨론의 포로되었던 자 중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는 20대의 청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20대의 젊은이들은 고향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자원한 것은 모두 어른들로부터 이국땅 바벨론에서부터 철저히 받은 신앙교육 때문이었다는 것이고 ,
둘째로 그 어른들은 그 젊은이들을 잘 교육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진 재능과 자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성전건축 감독자로 세워서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었고, 어른으로서 대우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어른들의 훌륭한 점이었다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