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너의 장벽을 허물라(민13: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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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장벽을 허물라(민13:30-33)
국민일보 1995년 9월23일자 사회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외모를 비관하는 아들을 위해 세 차례나 이사한 어머니의 정성도 허사로 끝났다.
23일 새벽 1시 20분쯤 서울 상일동 명모씨의 집 건넌방에서 명씨의 아들(고2중퇴)이 넥타이로 목을 매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습니다. 어머니 진모씨는 “아들이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심하게 괴로와하는 것을 본 뒤 잠시 밖에 나와 있다 들어가 보니 자기 방에서 넥타이로 목을 맨채 쓰러져 있었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모를 비관하는 외동아들을 위해 세차례나 집을 팔고 이사한 어머니는 병원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들의 주검을 부여잡고 통곡했습니다.
6개월 전부터 얼굴에 여드름이 심하게 난 뒤 바같 출입도 하지 않던 아들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결국 이날 어머니의 정성을 뿌리치고 세상을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같이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의 장벽을 허물라”
청소년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이 장벽 중 하나는 바로 열등감입니다.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이란 무엇일까요?
열등감이 국어 사전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진다는 감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등감이란 나를 남과 비교할 때 어딘가 남보다 못하다는 마음에 휩싸여 느끼는 감정입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열등감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이 열등감은 꼬마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게도, 슈퍼 탤렌트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일에게도 열등감은 있습니다. 그의 열등감은 158cm의 키에 있는데,김정일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항상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고 합니다.
열등감은 일종의 병적인 심리상태입니다. 이 열등감은 사람을 우축시킵니다. 이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만사에 자신이 없고,소극적인 사람이 되고,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학대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십대 청소년들이 이런 감정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열등감을 느낀 청소년들은 사람 나나기를 싫어하거나,평가에 대해 정도 이상의 반응을 보이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혹평을 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조울증이 되고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좌우간 이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몇년 전 미국 시애틀에서 얼굴 성형수술에 불만을 품은 60세된 베릴 첼리스하는 할머니는 성형외과 수술을 받은 뒤 수술 결과에 극도로 낙담,결국 담당의사를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현대인이 외모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실례인 것입니다.
1991년 10월20일 사회면을 보면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 여러 직장에서 쫒겨났던 한 청년이 차를 몰고 여러 사람이 놀고 있는 장소로 돌진해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열등감을,어떤 사람은 자신의 허약한 신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입시 낙방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집안의 가난 때문에, 어떤 사람은 부모들의 직업 때문에,어떤 사람은운동을 못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것 때문에 자살을 하거나 범지를 저지르거나 이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황폐화 시킵니다.
저도 열등감에 사로 잡힌 청소년 시기가 있었는데, 국민학교 때 까지 도시에서 살았는데, 살기가
막막해서 이제 농촌으로 다시 이사를 가서 중학교 때부터 우리 집은 아주 산골짝 농촌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시내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게 시작했고, 그 촌에도 다른집에는 다 리어카가 있고 소가 있어서 그 산등성이를 리어카가 끌고 가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나 셋이서 아침마다 무를 지게에 지고 시장에다가 내려놓고 학교를 가는데, 그 때 지게를 지고 가는 중에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그자리서 지게를 내팽겨쳐 버리고 싶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다가 다른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그 시내 도로를 씽씽 달리면서 학교를 가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시장에다가 물건을 내려 놓으면 거기서부터 걸어서 학교에 갑니다. 나는 누나와 함께 중3때 시내에 자취를 하러 나오기 까지는 그렇게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아뭏튼 열등감은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다양하고 개인의 생각만큼 많습니다.
이렇게 많고 무서운 열등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요?
오늘 성경에 보니깐 이와 같이 열등감에 빠진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열두지파의 가나안 땅 탐지 작전 내용입니다.
열두명의 정탐꾼들은 열두 지파에서 선발된 그 지판 전체에서 가장 똑똑하고,건강하고,용기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며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들은 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보았습니다. 그 증거물로 그 땅의 실과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부풀어 모여든 백성 앞에 내 놓은 보고는 아주 달랐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의 보고 내용은 민수기 13장 33절에 나와 았습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열명의 정탐꾼들은 싸움도 하기 전에 마음으로 패배하였습니다. 대장부 같은 그곳 주민ㅁ들을 메두기 같은 우리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입었습니다.
여기서 상대방은 대장부로 보이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아 보인다는 것이 바로 열등감인것입니다.
바로 “메뚜기 콤플랙스”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열등감은 그후 이스라엘 민족에게 40면의 광야에서의 방황을 가져오게 한 시작이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상대방이 강하냐,약하냐가 아니라 그 상대방을 보는 자기 자신의의식과 마음가집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메뚜기와 같이 열등하게 보는 사람은 싸움도 하기 전에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정탐꾼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명과는 전혀 다른 ㅗ고를 합니다. 수적으로 10대 2라는 매우 열세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수기 14장 9절에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나 다를게 없고 말하면서 반드시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두부류의 차이는 무엇에 있습니까?
한 무리는 메뚜기 컴플렉스인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 거리며 방황하고 있는데 비해,어떻게 여호수아 갈렙은 담대하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이곳 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았고 그것을 지금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에 적용하였을 때 위로부터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 주시며 인도해 주신 것을 눈으로 보고 지내왔지만 즉 홍해를가르고,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쏫게 해주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지금 현실에 닥친 어려움만, 주변의 환경만 탓하면서 그 엄청나게 건강하고 덩치 큰 사람들을 보자 “우리는 메뚜기다” 라고 패배감에 젖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 열등감과 두려워함이 그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왜곡시킨 것이었읍니다.
한 쪽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 생긴 자신감으로 저들의 미래를 보았고 한 쪽은 사람의생각과 판단으로만 그들을 보았기에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기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능력을미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 “메뚜기 검플랙스” 는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나는 도저히 안돼” 라고 생각하는 장벽은 무엇입니까?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어”라고 만드는 장벽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외모입니까? 여러분의 가정환경입니까? 여러분의 학교 성적입니까?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로 인해 오는 그 무엇입니까? 그 무엇이 여러분을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까?
저는 농촌교회의 학생회에서 사역을 해 보니깐 왠지 학생들이 이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에 많이 젖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눅이 들어 있는 학생들 보고 내가 어떻게 할 까 하고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꿈을 가지게 하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보고 우리 모두 서울대에 들어가야 됩니다.했더니 학생들이 우리는 안됩니다 하는 식으로 쓴 웃음을 짓더라구요 그래서 모두다 들어갈 수 있다고 했죠.
서울대-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
서울법대-서울에서 제법 먼 대학.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이 먼대학
여러분 다 들어갈 수 있어요 부모님들 걱정 할 필요없어요. 아 서울대 들어간다는데 누가 말릴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 학생회중 고3들은 다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는 서울대에 하나는 서울 약대에 들어갔죠.
우리 독바위 교회 학생들도 까짓것 나도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 열심히 하세요.그래서 서울대에 서울약대, 법대, 상대 다 들어가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자신감을 심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속에서 자신감 있는 인간으로 자랄 때 그 사람은 학력이 없어도 가정 배경이 없어도 가정 환경이 약간 어렵더라도 얼마든지 인생을 멋지게 해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감을 심어주지 마시고 늘 신앙으로 자신감을 심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은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큰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마귀가 가져다 주는 열등감을 던져 버리고 크고,넓고,길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편에 설려고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의 편이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피난처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무기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장벽을 무너뜨려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는 한 여러분은 이 땅에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자질과 남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열등감이나 불안은 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이 열등감은 언제나 우리 속에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불신앙의 눈은 세상만 바라봅니다. 자기의 연약한 것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우리는 이 열등감의 늪을 헤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은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고기 비린내 나는 베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부정축재했던 삭개오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도 여러분을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변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자신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할 차례입니다. 그런 여러분을 우리 주님께서 한 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감싸 안아주시며 사랑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열등감을 가지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 한 개인 개인 그대로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족한 면을 충분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그동안 장벽이라고 느껴왔던 것, 여러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때문에 고민하여 왔던 것, 그것 때문에 때로는 눈물 흘렸던 것, 그것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것.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고 허물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의 미래를 아름답게 꾸미기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작게 보일때 세상은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작게보일 때 세상은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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