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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부] 섬기는 어린이가 되자(마20: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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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어린이가 되자(마20:27-28)


윤식이가 유치원에서 생일이 들어있는 1월이 되어 큰 케잌과 푸짐한 떡과 과일과 과자를 차려놓고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열 명의 어린이가 각자 인사하고 자기의 희망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윤식이의 차례가 되자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였습니다.

생일 잔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윤식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는 돈을 많이 벌쟎아요. 삼촌도 의사니까 돈 많이 벌쟎아요”하고 대답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윤식이의 동생인 윤정이가 생일 잔치를 했습니다. 윤정이도 오빠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윤정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엄마가 매일 아프니까 엄마를 치료해 주고 싶어서요. 그리고 다른 아픈 사람도 고쳐줄꺼예요.”

엄마는 기뻤습니다.

“우리 딸이 최고야!”

윤식이와 윤정이가 똑같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그 뜻은 아주 달랐습니다. 윤식이는 돈을 벌기 위해, 윤정이는 엄마와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몇일 전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황태자비는 여왕을 말합니다. 어제 다이애나의 장례식이 호화스럽게 거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행렬들이 나와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반 평생을 온갖 호화로움 속에서 지내고 죽을 때도 호화스럽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위대한 여인이 죽었습니다. 어제 테레사 수녀님이 별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언론이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영국의 황태자 비의 죽음과는 뭔가 다른 죽음이었습니다.

다이애나는 한평생 호화속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다가 온갖 추문(나쁜 소문)에 쫓겨 교통사고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다가 아름답게 죽어갔습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고태생의 테레사 수녀는 ‘자비의 선교단’을 이끌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탄자니아, 요르단 등지에서 빈민가에 ‘죽어가는 자를 위한 집’을 세우고 버림받은 병자, 나병환자 등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 병자들과 악수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해주는 이들의 손은 훌륭한 사랑과 자비의 손입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그 영광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하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입술에만 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도 함께 일하는 수녀들에게 계속 가르쳐 온 그녀의 신조였습니다. “여러분, 자랑삼아 일하지 맙시다. 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은 주님의 굶주림이며, 저들의 질병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1950년 인도 칼카타 빈민굴에 테레사 수녀가 들어갔을 때 그곳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암한 지옥이었습니다. 굶어 쓰러지고, 병들어 죽어가고, 도둑과 살인이 백주에 난무하며, 창녀가 거리를 누비는 혼돈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여성은 문맹자를 위하여 여러학교를 세워 7천 5백명의 어린이를 졸업시켰고, 진료소들을 지어 96만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며, 54개의 나병치료소를 만들어 4만 7천명의 문둥병자들을 도왔으며, 20개의 고아원을 지어 1천 6백명의 고아를 길렀고, 의지할 곳 없이 죽기를 기다리는 3천 4백명을 위해 23개의 숙소를 지어 돌보아 왔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인간들 속에서 예수의 아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간 그 골고다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져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2달 밖에는 더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간암이라고 병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세상에 더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화목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빚진 돈도 모두 갚았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친구에게 찾아가서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유언을 써놓고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2달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았더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잘못 진단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뜻밖의 오진에 감사하면서 지난 2달간 살았던 경험을 귀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섬기면서 사는 것이 참 기쁨의 삶인 것을 깨우진 것입니다.


어느날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가 미국 시카고 시를 방문 하였는데 기차역 앞에는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슈바이처 박사가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출구로 나오시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시더니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의 트렁크를 받아서 기차 안까지 다시 들어가 그 할머니를 자리에 앉혀 드린 후 내려와, 시장님께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내가 늘 하던 습관 때문에 실례를 했습니다.”

이것을 본 신문기자가 슈바이처 박사님의 선행을 신문에 크게 보도해서 박사님의 인격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이 위대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긴데에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님의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인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섬김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정신박약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한 선생님께 가장 힘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매일 몇 명씩 목욕을 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발가벗은 아이를 대할 때 ‘이 아이가 예수님이다’하고 생각하며 목욕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사표를 낼까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예수님으로 생각할 때 목욕 시간은 나의 기도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참다운 기도와 봉사를 아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된 일을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학교는 모범적인 특수 학교가 되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신 후에 겉옷을 벗고 일어나시더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다 물을 담아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씻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드디어 시몬 베드로가 씻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시나이까?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 것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을 듣고나니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자기만 위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불쌍한 사람, 죄인, 병든 자,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섬기면서 살으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믿고나니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자기도 예수님처럼 섬기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섬기는 생활은 자기가 낮아지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낮추고자 하는 자를 높혀 주십니다. 이와같은 삶은 예수님이 살으셨고, 바울이 본받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생활이 은혜가 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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