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온전하라(엡4:13-16)
본문
온전하라(엡4:13-16)
천로역정에 보면 장망성을 떠난 기독인이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의 길을 가는 도중에 한 아름다운 미궁에 이르렀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길 양 옆에 무서운 사자와 맹주들이 으르릉거리고 있었어요. 주인공은 두려움을 느끼고는 지나가긴 해야 하는데, 사자와 맹수들이 있어 어떻게 하나? 걱정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짐승들을 자세히 보니, 그들의 발목에 쇠사슬이 모두 묶여 있었어요. 구 짐승들이 힘을 다해도 길의 중앙까지는 나올 수 없는 사술에 묶여 있었어요. 그래서 주인공은 안심하고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무사히 그 궁궐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것이 있어요? “온전하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라는 것이예요.
“온전하라”는 뜻에는 이같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완전함을 뜻하구요, 또한 성숙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없어요. 오직 예수님 만이 온전하신 분이세요. 우리 인간들은 온전함을 향해서 훈련받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그래서 오늘 말씀은 점점 성숙해서 온전한데까지 이르러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왜 우리에게 온전하라고 말씀하실까? 그 답은 14절에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어요.
첫째는,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린 아이의 특징은 이기적, 자기 중심적이예요. 저희 집에 가영이랑 성현이가 있는데, 가영이는 이제 좀 커서 말도 잘하고 이쁜 짓도 곧 잘해요. 그런데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어요. 선물을 사 갈 때, 가영이꺼랑, 성현이꺼랑 두 개를 사 가면 자기 것도 챙기고, 성현이 것도 이쁘고 마음에 들면, 빼앗고는 안 줘요, 자기꺼라고 우겨요, (그것도 울면서) 과자를 사도 마찬가지예요. 맛이 없는 것은 달라고 하면 주지만 제 입에 맞는 과자는 절대로 안줘요. 어른들에 집에와서 둘을 놓고 성현이만 이뻐하고 성현이만 들고 있으면 가영이는 눈치를 보면서 그분의 무릎에 앉아서는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성현이는 밀쳐버려요. 자기도 이뻐해 주고, 자기만 사랑해 달라는 것이예요. 이처럼 어린 아이들은 이기적이요, 자기 중심적이예요. 자기밖에 몰라요.
또 어린아이들은 고집과 억지가 많아요.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 마음에 들면 자기 꺼라고 우기고, 울면서 때를 써요. 한 어린 친구가 예쁜 풍선을 가지고 있으면, 분명히 친구 것이고 자기꺼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꺼라고 우기고, 울면서 때쓰면서 빼앗아 달라고 그래요. 그런 억지가 세상에 어디있어요. 그래도 애들은 그래요. 어른들은 이해 못하는 고집과 억지가 있어요.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특징 때문에 늘 어린 아이들은 싸움이 많아요. 다툼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어른들을(어린아이의 티를 벗은 중고등학생) 보아도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고집과 억지.
이런 사람들은 몸은 컸지만 여전히 어린아이들처럼 싸우고 다투는 일이 끊이지 않아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니까 상대방을 생각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배려하지도 않고, 고집과 억지가 있으니까 타협과 협상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면서 늘 싸우는 것이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을 갖지 않기 위해서 온전하라!고 말씀하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예요.
두 번째로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온전하라고 말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은 한 마디로 말하면 “사탄 마귀의 유혹”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탄 마귀는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넘어뜨릴려고 해요.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도박이나 음란 비디오나 CD나 등등의 유혹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의 유혹 등으로 우리를 늘 괴롭혀요. 사탄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면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드어요. 이것이 사탄의 작전인데,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이러한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견고히, 온전히 세우는 일에 열심히 노력해야 되요.
세 번째로는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이것은 다른 종교와 다른 이단 사상과 또한 오늘날의 세상 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며 이러한 세상적인 교훈, 풍조, 문화에 기독교의 본질과 기독교의 정신이 빼앗겨버리고 만다는 것이예요. 세상 가르침에 깊이 빠지면 복음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 있어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자연과학에 심취하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성경의 역사를 하찮은 것이로 치부할 수 있어요. 세상적인 가르침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만한 복음이 없어요. 세상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잠깐의 쾌락과 유흥은 있지만 참된 기쁨이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해야 이런 세상의 교훈과 문화에 흔들리지 않게 되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어떤 훈련을 받아야) 온전해 질 수 있을까? 그 답은 13절에 나타나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함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오늘 말씀을 잘 보면 이 온전함은 개인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공동체 전체가 함께 이루어야 하는 온전함을 말하고 있어요.
공동체를 보면 거기에는 믿음의 수준이 갖가지예요. 어린 아이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사람도 있어요. 이런 수준 차가 많이 나면 늘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요. 바울이 보기에는 이러한 공동체는 온전한 공동체가 아니예요. 바울이 말하는 온전함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똑같은 수준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함이요, 온전한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렇게 믿는 것과 아는 일에 똑같은 수준으로 높아지면 거기에는 모일 때 마다 웃음과 기쁨이 넘치게 되고, 이해와 구제가 있게 되고, 평화와 화평이 늘 있게 되요.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온전함은 과정이예요.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도달되어 지는 것이예요. 그러므로 우리 개인의 신앙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 또한 공동체의 온전함을 위해서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예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가 속한 공동체(청년부, 중등부)를 사랑하게 되고, 점점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되어 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예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동계 수련회, 청년 1부끼리는 처음인데, 아주 중요해요. 우리의 공동체를 온전히 만들어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예요.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여러분 각자의 신앙이 온전해지고 더불어서 우리 청년 공동체 전체도 온전해 지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