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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느헤미야(느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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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느1:1-11)


 요즘 지도자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에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국가든 가정이든 사회든 교회든 지도자를 잘 만나야 국가나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가 안정되고 발전될 수 있습니다.

 이북과 남한을 비교할 때 솔직히 이북이 먼저 개화되었습니까? 남한이 먼저 개화되었습니까? 사실 복음도 이북이 더 먼저 들어왔습니다. 먼저 발전되었습니다. 사실 6.25이후 상당시기동안은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인 면이나 모든 면에서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과 북한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을 잘못 만나니까 나라가 그렇게 까지 망하게 됩니다. 그 지도자의 역할이 얼만큼 중요한건가를 우리는 이북의 정치나 경제를 보면 압니다. 지도자 잘못 만나서 깨끗이 망하고 어러워진 나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입니다. 아이가 잘못되도 문제지만 어른이 잘못되면 이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른이 어른 노릇 못하고 어른이 어른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그 가정은 절대 안정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 가정과 그 식구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반듯하고 능력있고, 훌륭한, 성경의 표현되로 하자면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미래는 청년들에게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의미에서 사실은 교회의 미래는 어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른이 없는데, 청년들이 어떻게 바르게 되겠고, 어른없이, 지도자 없이, 청년들이 어떻게 교회의 꿈이 될 수 있고, 미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입니다. 지도자입니다. 청년들이 본받고 존경할 만한 지도자, 어른이 얼마나 있느냐? 거기에 교회의 미래가 달려있지, 지도자, 어른이 없는데, 청년만 데리고는 교회가 바로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른이 어른다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그와같은 교회가 미래가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쉽을 이야기 할 때, 지도자를 이야기 할 때 느헤미야를 모델로 삼기를 좋아합니다. 느헤미아를 통해서 지도자는 이렇게 되는 거구나?,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구나?

 우리 염산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보다 중요한 성숙한 교회가 되어서 21세기 한 시대를 축복하는 교회가 되려면 수천명 수만명의 교회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중에 몇사람 아주 적당한 퍼센티지의 훌륭한 지도자,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어야만 우리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고 한 시대를 책임질 수 있는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 모두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많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스스로 여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집안에서도 어른이 되게 하시고, 교회에서도 어른이 되게 하시고, 사회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참지도자가 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욕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겸손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능한 것이요. 나태한 것이요. 무책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느헤미야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몇사람은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여러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이 일에 기대를 하시고, 건강한 소원을 가지고 이 말씀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우리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당시 페르시야 때, 바벨론이 무너지고 성경에서는 바사라고 하는데, 그 왕의 술맡는 관원이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그 당시 고관이라고 해도 잘못될 것이 없는 아주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압니다. 술맡은 관원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가는 그냥 생각해 보면 압니다. 왕의 술을 시중드는 사람, 왕의 술자리에서 왕과 이야기 하는 사람, 그게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또 생각해 보세요. 술을 마시고 이야기할 때, 그를 통해서 정확한 정보가 들어가야 하니까 얼마나 똑똑하고 건전한 사람이어야 겠습니다. 아무나 그 자리에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은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왕은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술을 많이 마셨을 겁니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술 친구 노릇을 해 주는 겁니다. 그 상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왕에게 끼칠 수 있고, 그 나라의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상당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할 때, 무슨 술집이서 술시중하는 바텐더 정도로 알면 안됩니다. 그것은 아주 고위관리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당시 포로의 신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대단한 일이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평생에 얻을 수 없는 자리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부터 자기 고향땅 - 유다의 이야기를 듣고 성벽이 무너지고 훼파하고 그것 때문에 자기 동족들이 고생을 한다는 것을 듣고, 울면서 슬퍼했습니다. 잠시 슬퍼한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을 보니까 며칠을 울고 슬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결국 그 높은 고위의 자리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을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만 편하면 된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만 편하면 되, 자기의 삶에만 목적을 삼은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만일 그와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거 참 안됐네 우리나라 그러면 안되는데, 걱정하고 잠시 기도하고 끝냈을 것이지” 며칠을 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자리를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야 어찌되든 교회야 어찌되든 나만 편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부모는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모는 누가 편해야 편합니까? 자식이 편해야 편해요. 자기 자녀가 감옥살이 하고 추운 겨울날 감옥살이 하면 많은 부모들이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을 괴로워 했어요. 실제 들은 바로는 어느 어머니는 불도 넣지 않고 냉방으로 이불 덮지 않고 잤다고 해요. 왜요? 내 아들이 감옥에서 그렇게 자는데 내가 어찌 불피우고 이불덮고 잘수 있으랴? 여러분 이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부모는 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식이 편해야 편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지도자입니다. 아이를 지도할 수 있는 리더쉽을 갖는 것입니다. 리더쉽은 거기서 생기는(나오는) 것입니다. 나만 편하면 돼! 그것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부모는 자식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리더쉽은 자기의 편함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도해야 할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고, 그가 편하면 편하고, 불편하며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부모요 지도자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나라가 편해야 편하고, 자기는 아무리 편한 자리에 있을 지라도 나라가 잘못되면 그것 때문에 불편해하고 울고 슬퍼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도자는 리더쉽은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국의 높은 자리에서 자기 민족을 생각하고 울었습니다. 무너지 성벽을 생각하며 며칠을 울었습니다. 그 마음과 울음 여기에서 리더쉽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마음과 울음을 내게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실 줄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성벽에 관한 것입니다. 성벽이 무너졌기에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적군들이 아무 때나 들락달락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는데 그것은 무너진 성벽을 쌓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성을 쌓는 일에서 발견됩니다. 성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날 문제도 사실 따져보면 성이 훼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울타리가 무너졌습니다. 성이 무너져서 그 틈으로 사탄이 들어오고 사탄이 우리 가진 것을 약탈합니다. 우리를 침노합니다.

 진정한 지도자, 리더쉽은 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은 하나님의 식과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훼파되었습니다.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백성들을 고생시킵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다시 성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 씨랜드 사건

 오늘 날에도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을 쌓을 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 하나님의 말씀으로, 식과 방법으로 성을 쌓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일 것입니다. 정치계에 무너진 성벽을 쌓는 사람,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에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라도 그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적군의 회유에 넘어가서 적군이 주는 자리와 넉넉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만족해며 그것을 출세인양, 성공인양, 행복인양 착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인 수보다 그 중에 몇사람이라도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신이, 내 자식이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되게 해주십니요.

 신유의 은사 갖고는 나라를 살릴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나라와 민족과 역사,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이세상에서의 편함만 생각한다면 한국교회가 이 시대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쌓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느헤미야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느헤미야는 문제해결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무엇을 보면 아는가?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성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히 본 것도 대단한 것이구요. 그 다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을 첫 번째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왜 우리들이 이렇게 흩어졌는지, 성벽이 무너졌는지, 이 고통을 당하는지, 이 벌을 받는지 알았어요. 나와 이 시대의 우리와, 우리 조상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같은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께 범죄하면 흩으리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거든요.

(렘 15: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겔 5:10 그리한즉 너희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느헤미야는 기억하고 있어요. 회개하고 돌아서면 너희가 땅 끝에 있더라도 반드시 붙들어서 고토(고향 땅)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는 것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이예요. 나와 몇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헌신할 터이니 그 약속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예요.

(겔 28:2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열방에 흩어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인하여 열국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토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할지라

겔 39:28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소돔과 고모라 땅에 일을 보세요. 이 중에 10명이 범죄해서 나머지 사람 죽였나요? 아니죠, 이 땅에 멸망한 것은 의인 10명이 없어서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의인 10명이 없는데 까지 하나님은 참고 계셨죠?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 땅에 만명 있었다고 한다면 9990명이 범죄할 때까지 참고 심판을 늦추시다가 그것도 안되니까 치신 것이예요. 모든 사람이 범죄하기 까지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의인 10사람만 있으면 사하리라 하시는 것이예요. 그러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땅이 축복받고 돌아오려면 9990명이 다 회개하고 돌아와야 그 때야 비로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까? 그게 아니예요. 10명이라도 깨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돌아오면 그 때 하나님께서는 미리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예요. 하나님은 심판을 기다리시며, 축복은 10사람만 있어도 다 구원해 주시고 복내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예요. 느헤미야가 그것을 알고 있어요. 나같은 사람 몇 사람이라도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비록 힘은 없어 보여도 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축복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민족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하나님의 복 받는 것 아니예요.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 받는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의인 10명만 있으면 복 받는다는 것이예요. 이런 의미에서 느헤미야가 다 될 필요없어요. 자신 없으면 손 떼도 괜찮아요. 우리 몇사람이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회개하고 성을 쌓아야 될 줄을 알고, 자기 모든 것을 버려두고 성 쌓으려고 한다면 느헤미야와 같은 몇사람만 있으며 이 나라와 민족이 구원을 얻게 될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느헤미야가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가 이 나라, 이 민족, 역사, 사회를 걱정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성을 쌓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느헤미야와 같이 성을 쌓기 위해서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나선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 손들 중에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이러한 느헤미야를 키워 낼 수 있는 우리 염산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지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시대 이 교회가 느헤미야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수천명보다도 몇 명의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도 어른이 필요하고, 교회에도 어른이 필요하고, 나라에도 어른이 필요하고 이 시대에도 어른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는 우리 염산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자신을 위해서 걱정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편협한 생각의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며칠씩 울며 슬퍼할 줄 알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떠날 줄도 알았던 진정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도 그같은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성이 무너져서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사회계와 문화계와 교육계의 무너진 성을 쌓을 수 있는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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