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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부] 평생소원을 푼 아저씨(행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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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소원을 푼 아저씨(행 3:6)


1.마음 문 열기


사람들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어린이나 선생님들도 모두가 소원이 있지요?


여러분에게 마주보고 당장 물어 볼 수는 없어도 아마 이런 소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네, 전, 공부를 잘하는 게 소원이에요.”


 “네, 저는요. 엄마 아빠가 돈 많이 버는 것이 소원이에요.”


 “네, 저는요. 옆집 친구처럼요. 게임기 하나 사는 게 소원이에요.”


우와 소원이 무지 많아요.


사람과 동물이 다른 차이는 바로 이 소원을 가지는 거예요.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은 언젠가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아무런 소원도 없이 무작정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산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어린이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중요한 소원이 정말 무엇인지 깨우치길 바래요. 혹시 아무런 소원이 없던 어린이가 있다면 소원을 품게 될 거에요.


또, 엉뚱한 소원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는 바른 소원, 좋은 소원을 품게 될 거에요.


하나님의 복이 이 방송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가득하게 되길 원합니다.


2.하나님 말씀 듣기


 “아저씨, 한푼만 주세요”


 “한푼만 도와주세요. 네?”


저 어느 동네에 몸이 아파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구걸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마침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이 아저씨를 매일 매일 성전 문 앞에 데려다 주었어요. 앉은뱅이 아저씨는 몫이 좋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러 들어오는 사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러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성전을 들어가며 나오며 이 불쌍한 아저씨에게 동전을 던져 주었어요.


이 아저씨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했어요.


목사님이 어렸을 때 마음 아픈 일이 하나 떠오르네요. 부잣집 어떤 애였는데 다리가 아파서 목발을 짚고 쇠로 된 기구를 다리에 칭칭 두르고 학교에 공부하러 오던 것을 안타깝게 본 적이 있어요. 얼굴도 참 예쁘게 잘 생겼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퍽 안돼 보였어요.


그래요.


아무리 부자면 뭘해요. 아무리 예쁘면 뭘해요. 아무리 공부를 잘하면 뭘해요.


몸이 어디가 아프면 참 고생이에요.


오늘 성경에 나오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이 아저씨는 자기 앞을 지나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지만 딱하게 “나도 언제 저렇게 걸어보지”하는 중요한 소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물론 맘속에는 “나도 저렇게 걸어 다니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동냥하는 이 거지 짓은 하지 않을 텐데”하는 마음은 있었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성령님을 기쁘게 만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오고 있었어요.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그러니까 오전 9시에 한번, 점심 때 12시에 한번, 오후3시에 한번씩 성전에 달려 나와 기도를 드리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기도하기가 싫어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실 때 저만치에 앉아 기도하다가 졸기만 하던 베드로를 기억하나요.


그런데 성령님을 만난 베드로는 스스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으니 역시 성령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멋지게 변하고 있어요. 스스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니까 말이에요.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아저씨는 손을 내 밀었어요.


기도하러 들어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아저씨를 보고 갑자기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저 앉은뱅이에게 무언가 진정으로 주고 싶은 그 어떤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외쳤어요.


 “우리를 보라”


앉은뱅이 아저씨는 “야, 오늘 횡재하는 날이 아니야. 뭘 저렇게 많이 주시려고 보라고 하는걸까?”속으로


상상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았어요.


 “은과 금은 네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 아저씨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어,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에요. 앉은뱅이 아저씨가 미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웬일인지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게 된거예요. 평생 앉아 살았는데 갑자기 일어서게 되었어요.


 “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와하하하! 내가 일어섰다. 와, 난 이제 일어섰어”


첫눈이 펄펄 내리는 날 마당에 강아지가 껑충껑충 뛰놀듯이 이 아저씨는 너무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며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자기를 시험해 보며 외쳤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제게 베푸시나이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이에요.


길을 걷던 사람들과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던 사람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다 보고서 하나님의 능력에 입을 벌리고 멍해 있었어요. 이 놀라운 기록은 의사였던 ꡐ누가ꡑ라는 사람이 썼다는 것이 더욱 우리에게 확실한 증명을 보여 줍니다.


3.생활 속에 적용하기


사도행전3장, 사도행전 3장은 “베드로의 처음 기적의 장”입니다.


예수님의 처음 기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라면 성령님을 만난 베드로의 처음 기적은 바로 ‘앉은뱅이 아저씨를 고친 사건’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참 우리 하나님은 멋지신 분이시지요.


미쳐 맘속에 갖지도 못한 소원을 다 아시고 그 중요한 소원을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세요.


앉은뱅이 아저씨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닙니다. 더 이상 돈을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젠, 열심히 노력하여 스스로 돈을 벌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이 낫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 신비한 능력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이름!


이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참 위대한 거에요. 모든 기적의 시작이에요.


감사하고 기쁜 것은 이 놀라운 기적은 지금도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어린이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오늘 말씀의 속뜻을 잘 생각해 보세요.


“앉은뱅이 아저씨”, 예수님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들이에요. 아무리 예뻐도, 잘 살아도, 명예가 있어도 몸이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면,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집이 잘 산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에요. 마치 저 앉은뱅이 아저씨가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동냥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 자신 있게 예수님을 소개한 베드로와 요한도 너무 멋있습니다.


자기들도 몹시 놀랬을거에요.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성령님을 만난 베드로와 요한의 맘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예수님의 이름이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16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은, 모든 신자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모두,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통해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임을 이 첫 번째 기적에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


언제 들어도 참 기분 좋은 말이지요? 믿음이 있으면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어요.


목사님은 여러분들이 이 좋은 믿음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날마다 변화와 기적이, 믿음으로 나타난 앉은뱅이의 기적처럼 우리 어린이들의 생활 속에 귀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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