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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부] 스데반집사의 순교(행 7: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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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집사의 순교(행 7:54~60)


1.마음 문 열기

어린이 여러분 순교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순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죽는 것을 순교라 합니다.

쉬운 예를 들면 “너 하나님 믿으면 죽어!”, “그래도 계속 믿을테야?”, “아 알았어요. 안 믿으면 될거 아니에요”하고 쉽게 믿음을 팔아먹는 것이 아니라“어서 예수님을 안 믿겠다고 말해! 아니면 죽여 버릴거야!”라고 호통 칠 때 “아닙니다. 나는 절대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절 죽이십시오.” 담대히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 순교입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가 처절하게 물들어 있습니다. 순교한 사람들의 이름만 쭉 얘기한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를 얘기할 수 있을 거에요.

모두가 자기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우리 하나님은 오늘 사도행전 7장의 처음 순교자 스데반집사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자기는 절대로 희생하지 않고 남을 밟고서라도 성공하겠다고 난리 치는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쓰러져 가는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복된 말씀입니다. 오늘 이 귀한 말씀을 듣고 우리 어린이들의 신앙을 새롭게 무장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하나님 말씀 듣기

예수님께서 감람원에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120명이나 마가 다락방에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들으며 약속대로 놀라운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일이 많아지니까 일곱 명의 집사님을 뽑아 제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함께 나눠서 열심히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제사장들과 동네 사람들은 제자들과 집사님들이 기가 꺽이지 않고 계속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 저놈들을 죽여 버릴까 무서운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처음 시도로 베드로와 요한을 옥에 가두고 앉은뱅이를 살린 사건을 집중적으로 물어 보면서 행여나 속인 일이 아닌가 확인하면서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당당하게 우리가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큰 목소리로 알려 주었습니다.

더 이상 책잡을 점을 발견하지 못한 산헤드린 법정은 베드로와 요한을 석방했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려고 몰아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스데반 집사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에게 행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시는지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혀 드렸습니다.

한번은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데반집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스데반집사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씀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그 사람들이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데반집사님이 하신 말 중에 몇 말을 꼬리 물어 이렇게 엉뚱한 누명을 씌웠어요.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행6:11)

그 사람들은 야비하게 백성들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잡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바로 스데반을 공회로 끌고 가서 거짓증인을 세운 후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고친다고 말하는 걸 우리가 들었다.”

대제사장은 거짓증인들이 말을 듣고 스데반에 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행7:1)

스데반은 긴 시간 동안 아브라함의 얘기부터 요셉얘기 그리고 모세의 얘기를 쭈욱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사람들의 나쁜 점을 콕콕 찍어서 얘기했습니다.

또 곧 이어 모세를 버린 조상들처럼 예수님을 여러분이 죽였다고 막 얘기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에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아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이 찔려 이를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이 귀를 막고 졸지에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밖으로 내던지고 돌로 무자비하게 때려눕혔습니다.

“주 예수여 나의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스데반은 떨리는 몸을 일으키며 기도한 후에 이렇게 다시 말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 그 한마디를 남기며 말입니다.


3.생활 속에 적용하기

어린이 여러분!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우리의 믿음생활을 핍박합니까? 어느 누가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괴롭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싫어서, 내가 귀찮아서, 내가 게을러서 예수님을 잘 안 믿는거지 누가 엄포를 놓기 때문에 훼방하기 때문에 핍박하기에 교회에 나가기가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비록 어리지만 순교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다가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 복음의 꽃이 피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세요. 저 대동강변에 발도 못 붙이고 포졸들의 불화살에 맞아 불타는 배 위에서 바다 위에 들었지만 포졸들에게 붙잡혀 장열 하게 목숨을 바친 토마스 선교사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최초의 순교자이지요.

어린이 여러분!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십시다.

아무렇게나, 시시하게 그렇게 믿음생활을 해서는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가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바로 기도하지 않고 대충대충 신앙 생활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며 또 엉터리 믿음으로, 형식적인 믿음으로 교회의 문만 열고 닫고 다니는 우리 어린이들의 나태한 믿음에 그 책임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목숨을 버리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북한 공산당의 총 뿌리 앞에 ꡐ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ꡑ 하고 순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총 뿌리를 갖다대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나의 마음을 죽이는 생활 속에서의 순교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것 그것이 순교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는 마구 솟아나는 욕심을 죽여 순교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소하고 근면한 믿음의 어린이로 하나님께 바짝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주일 날 텔레비전이 우리를 유혹할 때, 계속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를 보고 싶은 그 마음을 순교시키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괜히 신경질 내고 싶을 때 버릇없는 그 마음을 순교시키는 겁니다. 감히 우리를 위해 평생 희생하시는 엄마 아빠에게 짜증을 부리다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우습게 여기면 나중에는 부모님을 제주도에 갖다 버리거나 공원에 갖다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을 하는 어리석은 자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친구를 때리고 싶고 욕하고 싶은 마음이 맘속에서 막 올라올 때 예수님을 위하여 그 거친 마음을 순교시키는 겁니다.

한반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왕따시키고 싶은 나쁜 마음이 소구쳐 오를 때 그 나쁜 마음을 죽여 버리는 것이 지금 이 시대의 순교입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매일 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때 그 게으른 마음을 순교시킵니다. 그러면 어느새 책상 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게 될 것 입니다.

믿음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얼렁뚱땅 어쩌다 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지켜야 하며 날마다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어린이를 지금 우리 하나님은 이 시대 속에서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들면 얼마나 좋은지 상상이 됩니까? 그래요. 너무 좋아요. 학교에서 선생님의 눈에만 들어도 무척 좋은데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눈에 든다니 얼마나 신나고 자랑스런 일이에요.

순교!

지금 금방 아무렇게나 콱 죽어버리는 것이 순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죽이는 것이 참 순교입니다. 그런 어린이들이 정말 나중에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을 위하여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목숨을 버릴 수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어린이 여러분?


우리가 그 동안 살아 온 날들을 뒤돌아보십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죽일 수 있는지 말이에요.

거친 성격입니까? 순교시키세요.

나쁜 버릇입니까? 순교시키세요.

게으른 성품입니까? 순교시키세요.

순교시키면 그것이 죽고 새로운 하나님의 마음이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나중에도 더 큰 순교를 할 수가 있어요. 순교를 다짐하는 우리 어린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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