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사랑의 띠(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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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띠(골 3:12-17)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애매하고 모호하여 정의를 내리기 힘이 듭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표현하자면 무한한 사랑, 한없는 사랑, 아들을 십자가의 형벌에 두시기지까지 우리를 아끼시는 사랑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최고로 나은 표현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몸소 실천을 하고 닮아가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사랑의 실천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사랑이 진정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인지를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용서는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인간이 되셔서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마땅히 우리의 형제나 자매의 잘못을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를 하나들겠습니다. 옛날 중동의 어느 나라에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너무나 훌륭하시어 지금도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극히 드물 정도입니다. 그 분을 따르는 제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중에 아끼시는 어느 제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만일 형제가 내게 잘못을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라도 해 주어야 합니까?” 이 때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얘야, 일곱 번이 뭐니?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해주어야 한단다.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볼래?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는 한 1억 정도의 빛을 진 종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종이 애원을 했어, 조만 간에 돈을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용서해 달라고....., 그래서 그 주인은 그 종을 용서해 주고 돈도 다 갚은 걸로 해 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벌어졌단다. 뭐냐면 그 종에게는 한 백만원 정도 빛진자가 있었대. 그런데 그 종은 금방 그 주인이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준 것을 잊어버리고 백만원 빛진자를 뭐라고 막 혼내면서 자기 집에 있는 옥에다 가두어 버렸대, 참 우스운 일이지. 자기는 1억 정도의 큰돈을 용서 받아놓고 자기한테 백 만원 정도 빛진자에게 학대를 하다니. 만약 이 사실을 그 부자 주인이 안다면 어떻게 하겠니? 나 같으면 아마 돈을 다 갚으라고 하고 그러고 혼을 내줄 꺼야.”라고 그 선생님은 자기 제자에게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얘기일까요? 예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용서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마18:21-35).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이런 기도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신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오늘 본문에도 이 말씀을 인용해서 사도 바울 아저씨가 골로새 교인들에게 하여 주시고 계시고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해 주고 계십니다.
13절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러하고”. 이러한 용서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사랑이 없는 용서는 도리어 용서가 아니라 거만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그러한 능력이 있게 때문에 상대방을 그냥 봐주는 것으로 여기게 되게 때문입니다.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고 영혼이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때 그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용서에다가 사랑을 더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말합니다. “온전하게 매는 띠” 즉 “사랑의 띠”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송에도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6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는 말을 우리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깊은 이해가 있어야 되겠고,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됩니다. 새로 나온 친구라고 해서 소외감(가나현 학생)을 느낄 필요도 없고 또 그 친구를 어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핍박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물려 우리의 형제 자매는 어떻겠습니까? 16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야 하겠고 그렇게 함으로써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은 말로 충고를 해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말자이말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말도 조심하고 서로의 감정을 중히 여기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17절에는 이렇게 기록을 해놓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듬북 받고 자라고 있는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서 살아갑시다. 나나 여러분이나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님으로부터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요 귀합니다. 그리니 서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사랑의 띠를 형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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