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크리스천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합 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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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합 3:17-19)
I. 마음 문 열기
며칠 전 우연히, 용인에 있는 대학의 체육과 1학년 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는 집으로 가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작년부터 사회 저명인사들의 잇단 자살이 우리사회에 자살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 한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대학을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새내기가 왜 자살을 했을까요? 그것이 스스로가 희망이 없다고 속단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 대학은 체육과에 전국적으로 운동을 잘하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살한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제가 운동을 아주 잘해서 그 방면으로 계속 나가면 희망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을 해보니 자기보다 잘 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겐 희망이 없다고 판단, 스스로 최악의 선책을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인생의 앞날엔 여러 변수가 있고, 또 길이 자기가 생각한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들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그 학생은 알지 못하고 너무 성급히 희망을 상실하였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보단 나은 내일을 희망하면서 계획하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전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희망을 안고 사는 한, 사람들은 열심히 생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욕과 의미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도 물론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희망 뿐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희망은 현세적이고 육신적이고, 소망은 내세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크리스천에게는 희망도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희망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너무 희망의 차원에서만 머물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혹 희망이 없어 보이고, 희망이 상실된 듯 한 상황에서도 소망으로 그런 상황의 현실을 이겨내고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II. 하나님 말씀 듣기
1. 선지자 하박국의 현실
본분의 하박국 선지자는 현실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자신의 진로나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가 아니라, 민족이 암담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이 너무 부패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든 것입니다. 1장 2-4절에 보면, 당시의 유대 사회가 강포, 간악, 패역, 겁탈, 변론과 분쟁, 율법의 해이로 인해 공의가 실종된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민족의 타락한 현실 때문에 하박국 선지자는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어느 때까지 이래야 하는 것입니까 하면서. 민족은 이렇게 형편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침묵하시고.
어떤 일로 우리들이 기뻐하고 괴로워하는 것에 따라 우리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단지 자신의 유익이나 손해로 인해 기뻐하고 괴로워하면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어떡하면 백성들이 왜적의 전화로부터 무사할 것인가 하는데 자신이 수행해야할 전쟁의 초점이 있었다면, 원균은 자신의 무용을 앞세우고 그것이 인정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두 인물들의 결과가 많은 차이가 나고 평가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목적으로 사시고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세대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들도 해결하기가 버거울 때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자아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박국의 기도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해답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존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면, 어찌 현실이 이럴 수 있느냐? 양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잘 사고, 정직한 사람은 손해보고, 권모술수가 능한 사람이나 배경이 있거나 줄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출세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뒤처져서 살고. 우리들도 여러 방면의 현실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무수히 목격하고 또 당하기도 합니다. 재벌의 자손들은 태어난 배경으로 인해 한 평생 물질적인 어려움 없고 그로인해 사회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흔한 말로 떵떵거리고 사는데, 우리들은 그런 부모가 없기 때문에 한 평생의 허덕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친일파 후손들이 거대한 땅의 소유권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안 든다면 굉장히 착하거나 생각이 없거나...
이런 생각이 들때, 이런 현실을 보아서도 하나님은 안 계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지상의 정의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거나 관여하지 않는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의 결론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기도를 통하여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하여 우리들은 모든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지상은 아직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그런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사탄의 역사는 계속되고 인간들의 죄성과 부패는 큰 영향력으로 우리들의 삶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
하박국의 항의성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계시지도 않고, 유대 민족의 부패를 모르시지도 않는 그런 분이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기도 후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응답은 하박국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유대는 징벌당하고, 그 채찍으로 바벨론을 사용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박국은 그런 문제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런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확언하시는 것입니다. 결코 거짓되지 않고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런 중에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2장 4절에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박국이 기도해서 얻는 해답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의 결론과 답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4. 희망 없는 현실
하박국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공의가 실종된 현실에서 괴로워하여 부르짖었으나, 앞으로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민족의 징벌이 진행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도 큰 어려움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전쟁으로 인하여 농작물의 열매가 없고 가축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농작물이 있어야 먹고살고 가축이 있어야 식탁에 고기가 있고 생활에 윤기가 있을 터인데, 그런 것이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배가 부르고 조금 여유가 있어야 콧노래가 나오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17절에 없다는 단어가 다섯번 나오고, 무성하지 못하다는 단어가 한번 나옵니다. 가난한 정도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쌀이 없어 밥을 못 먹고 예배에 나온 분이 있나요? 지금 손들지 말고 조용히 개인적으로 알려주셔요.
희망이 없는 현실이란 이런 농작물과 생존의 기본적인 요소나 가축과 같은 소유물이 결핍된 상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애인이 변심하여 마음의 공허로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을 있습니다. 대학에 실패할 수도, 기대를 걸었던 일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요사이처럼 청년 취업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취업을 고심하던 25세 된 여성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하는 그런 현실입니다. 이런 것들이 분명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인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즐거워하면 사람이 아니지요. 목석이거나.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소망이 있음으로 이런 희망 없는 현실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거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5. 신자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
먹을 것 마저 부족하고 아무런 소유물이 없는 상황에서도 무엇으로 기쁨과 소망을 삼을 수 있는가? 하박국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희망 없는 현실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존재하심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임을 하박국은 아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하여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하박국은 즐거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가 당하는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면 어려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며 그 섭리를 알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상관없이 마음에 즐거움을 맛보기도 합니다.
하박국은 또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 시간이 가면 변화가 올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기쁨과 소망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은 하나님이란 그 분의 존재하심과 그 분의 구원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이란 현실의 문제를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해주시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사라지고 무의미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이 소망은 시간이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우리가 받게 되는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빛은 우리들로 하여금 희망 없어 보이는 현실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생활 속에 적용하기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심을 알면,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개인적인 불행과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 대학생은 선장인 아버지가 어선을 타고 출항했다가 실종되었습니다. 집안의 기둥이 무너졌습니다. 한 동안 힘들었던 그 학생은 다시 얼굴에 미소를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와서가 아닙니다. 시신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웃음을 찾은 것은 하나님 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이 비탄에 젖어들을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있게 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의 처한 현실을 넘어서는 그 높은 곳을 행할 것을 바라보면 소망 속에서 즐거워하였습니다. 19절에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 높은 곳은 이 세상의 희망이 필요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 영광만 가득한 곳입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충만하면 이 지상에서 그런 곳에 이미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곳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들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이 구원의 하나님과 우리들이 누릴 저 높은 곳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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