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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 원수를 사랑하라(눅 22:34-38)

본문

 

원수를 사랑하라(눅 22:34-38)


하나님의 아들이 이 천년 전에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유대라는 나라에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자나 아니면 여러 선지자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둘째,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수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많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자들 즉 그 당시로 보면 죄인 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자신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시는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에 걸처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언제 죽는 지 그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또 십자가에 달리실 것도 알고 계셨고 그러한 고통도 기꺼이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 십자가의 달리시어 운명하시고 사망을 이기시는 일련의 사건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여기에 있는 우리를 포함하여 인류가 지고 가야할 죄의 값을 대신해서 죽으시는 대속적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님안에 구원이 있고, 예수님안에 인류의 모든 크고 작은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우리의 구주로 영접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고 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에게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그의 삶속에서 우리의 삶의 표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 속에서 실천 속에서 우리의 모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가 하신 말씀 중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철저히 실천을 하시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않았을 터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그가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또 그들을 용서하신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사랑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속에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도리어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계십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지기 싫어서 그들에게 권능을 행하셔서 그들을 모두 치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사랑하라”는 자신의 말씀을 철저히 실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우리를 향하신 철저한 사랑을 깨달아야 하겠고 또 그분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그 분을 닮아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러한 실천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을 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 구주 예수님을 친구에게 혹은 이웃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이웃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도를 하는 데에 참으로 훈련도 되어있지 않고 도리어 전도를 하고자 하면은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4)


 우리 친구들의 모습 속에도 그러한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나 아니면 학교에서나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챙피해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혹은 예수님을 믿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하는 친구가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위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의 고통을 친히 지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전도에 대한 상이 제일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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