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잠시(마 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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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잠시(마 21:12-17)
주일 아침에 중등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중등부 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의 중등부 실이 아닌 낯선 장소였다. 여기가 어딜까? 강대상 앞에는 임원들이 만들 어 놓았다는 꽃꽂이도 제법 이뻤다. 그리고 바닥과 벽에는 어느 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식과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정 다워 선생님이 결혼을 한단다. 그것도 남자와 한단다. 그 남자는 누군지 모르겠다. 참좋겠다. 그렇게 낯선 장소를 보고 있는데 이제 한두명씩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에 보지 못하던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다. 누구일까?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시는 선생님도 나이가 조금 드신 남자 집사님이 인도를 하시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이제 9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지를 않는다. 이상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열을 받기 시작했다. 드디어 9식 30분이 되어서야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배시간이어서 열 받은 것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예배가 시작이 되었는데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처음 본 학생이 설교를 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는 설교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그냥 지켜 보다가 황당해서 부장님께 여쭈어 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랬더니 부장님이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시단다. 그래서 아니, 이 전도사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에 다시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부장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음과 같았다. ‘김포공항 취직하러 가는 사람처럼 얘기하지 말라고’하신다. 무슨 의미일까? 너무 어려워서 그리고 그런 표현은 처음 들어보는 터라 듣는 순간 한참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뜻 스치는 생각과 내가 여쭈은 태도로 봐서 그런 의미 아닐까?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수업시간이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더 열받았다. 무슨 의미일까? 개꿈인가? 아니면 무슨 성령님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인가? 이 꿈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아마도 나의 앞날에 대한 약간의 힌트가 아닐까? 이제 때가 차매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을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 아닌가?
하루 종일 그 표현이 머리속에 맴돈다. ‘김포공항 취직하러 가는 사람처럼 얘기 하지 말라.’ 밥을 먹다가도 ‘김포공항 취직하러 가는 사람 처럼 이야기 하지 말라.’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까 김포공항 취직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라 김포공항에나 취직하러 갈까?
가끔씩 우리는 평소의 일상적인 생활과는 다른 어떤 삶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다르기에 가끔씩은 너무 기쁘기도 하고 너무나도 충격적이기에 가끔씩은 너무 슬퍼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것이 함께 올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 순간 골을 너어서 너무나도 기쁘다가도 한순간 실수로 너무나도 어이없게 모든 사람을 실망하게 만드는 축국 경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것이 인생이다.
여러분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잠시 지금까지의 삶을 접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습니다. 김포공항 취직하러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잠시 깊은 침묵을 하셔도 좋습니다. 내일부터 이제 중고등부 새벽기도회가 시작이 됩니다. 이것 또한 우리에게서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지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하시는 모습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아니 이게 왠일입니까?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 시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 왔어요. 왔어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야.’ 돈으로 상품을 주고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당시에 이스라엘 지방에는 예루살렘 성에와서 제사를 드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들 집에서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그 먼길을 와서 제사를 드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신선한 것 튼튼한 것으로 바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래서 성전에서 비둘기를 사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비둘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양 되신 비둘기를 사서는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도 터무니 없이 비쌌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이 이제 시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에 참으셔야지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 그 모습을 보고 당연히 참으셔야지요. 성을 내어서는 아니되지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 그 모습을 보고 참으셔야지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해야지요. ‘여러분, 잠깐만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형편을 잘 알지만 여기는 예배당 아닙니까? 이제 그만 하시고 10분 안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부탁의 말씀을 드렸습니까? 천만에요.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지요. 이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 아닙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흥분을 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13절에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여러분 주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 기도하는 집에 장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불합리하게 빼앗는 당시의 지배층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그 행동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그런 행동을 하셨던 것이지요.
여러분, 여기, 이 교회를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올때는 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어디서 말씀을 듣습니까? 우리가 교회 아닌 다른 어디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교회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지를 알아야 하지요. 단지 노는 장소가 아니지요. 친구가 없어서 교회가면 친구를 사귈 수 있기에 교회 다니는 것은 아직은 유아적인 모습이지요. 그리고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온다면 그것 또한 문제이지요.
주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여야 하는 곳이 교회이어야지요. 하나님과 만나는 대화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대화의 소리를 방해하는 인간의 소리가 많다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지요. 없어져야지요.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인 것이지요. 십자가로 위장된 강도의 아지트이지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14절부터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소경과 불구자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이상한 짓을 하고 또 성전에서는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예수님을 찬송하니까 긴장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여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16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린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이 말씀으로 봐서 어린아이와 심지어는 젖먹는 아이까지도 예수님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젖먹이 아이의 입에서 까지 주님을 찬양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소리와 그리고 기도하는 기도 소리가 끊어지지 않아야지요. 기도소리와 찬양 소리가 끊어지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지요. 생명력이 없는 교회 일 것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중고등부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말로 주님의 전에서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말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하나님은 누구보다고 원하시지요. 저도 돌이켜보면 기도하면서 앞날을 설계했지요. 기도하면서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지요. 그때를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즐거웠고 신이 났지요. 여러분 이번 기회에 기도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말씀 듣고 기도하면서 또 다른 나의 삶의 다른 모습을 설계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때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추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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