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텔레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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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텔레비전이 세상에 활자가 생활화된 것은 15세기 중엽이었다.활자인간(活字人間)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그런지 꼭 5백 년 후인 20세기 중엽에 텔레비전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활자인간과 텔레비전 인간이라는 대단절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 엄청난 대변혁을 실감나게 지각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볼딩은 '20세기의 의미'란 명저에서 인류가 떠돌며 먹이를 채집하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든 이래의 대변혁으로 이 활자인간과 텔레비전 인간의 단절을 보고 있다.텔레비전 인간과 활자인간이 어떻게 다른가. 예를 들어 소설 한 권을 읽을 때 그 이야기는 한 줄거리로 수렴되고 정리되어나간다. 한데 텔레비전을 그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갖가지 이물(異物)이 쉴 새 없이 끼어든다.커머셜이 끼여들고 긴급 뉴스가 끼어든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도 먹고 꾸지람도 듣고 심부름도 한다. 심지어 텔레비전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잘된다는 이상한 아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곧 이물(異物)을 이물로 생각하지 않고 뭣이건 흡수해버리는 텔레비전 인간은 사물이나 사리를 매듭짓는 한계능력이 약화된다.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을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또한 불연속(不連續)의 연속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체질화되어 지속력이 현저하게 약화되기도 한다. 주의가 자주 옮겨짐으로써 집중력이나 끈기가 증발되어 실격인간으로 치닫게 한다.둘째로 텔레비전은 잡다한 정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던져내고 텔레비전 인간은 그것을 정리하지 않은 채 수용한다. 여섯 살 된 아이가 60세 된 노인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그것이 곧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균형이 잡히지 않아 상식 밖의 엉뚱한 짓들을 잘 저지르는 '어른아이'가 된다.세째로 텔레비전은 사람을 촉각인간(觸角人間)으로 만든다. 텔레비전에서 쓰는 감각적인 말이나 행위나 헤어 스타일이나 차림새를 당장에 수용하여 개성을 상실하고 비인간화돼간다.이 텔레비전 인간의 결함을 중화하고 대단절을 완충하는 데는 활자인간의 매체였던 책을 읽는 길밖에 없다. 책은 이 대단절의 시대에 있어 지식을 전달해주는 수단만이 아니다.세상 살아가는 데 해야 할 짓, 하지 말아야 할 짓의 매듭이 책 속에 있고, 또 어느 한 일에 집중하는 주의력과 끈기와 지속력이 책 속에 있으며, 정보를 분류하고 판단하고 취사선택하여 창조력과 연결시키는 분별력이 책 속에 있으며, 부화뇌동에서 자신을 구제하는 개성이 책 속에 있다. 활자인간의 텔레비전 인간에 대한 적의(敵意)나 질투나 반동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새삼 오늘을 '책의 날'로까지 정할 수밖에 없게 한 이 5백 년 만의 대단절을 심각하게 재인식했으면 한다.8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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