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과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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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에비타가 79년 미국에서 공연됐을 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불같이 격분했다. 52년 33세로 요절했으나 많은 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성녀(聖女)로 살아 숨쉬는 퍼스트 레이디를 매춘부, 권력욕의 화신으로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언론은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생전 선행을연일 재조명했다. 그녀는 기업 등에서 자발적성금을 거둬 수천개의 무료병원 양로원 고아원을 세우는며 그늘진 곳을 보살폈다고 주장했다▼87년 에바의 남편 후안 전대통령의 묘지가 도굴돼 방부처리된 시신의양손을 잘라간 사건이 일어났다. 후안의 대통령시절 집무실 금고 열쇠가 바로 후안 자신의 손이었기 때문에 도굴꾼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는주장이 최근 나왔다. 호사가들은 나라의 돈을 긁어모아 에바는 자선사업에모두 썼고 후안은 금고속 챙기기에 바빠 죽어서도 욕을 치른 것이라고 말했다▼재임 동안 5천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밝힌 盧泰愚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매달 각 1천원씩의 후원금을 보냈다고 한다. 盧씨는 사과문 발표때 비자금중 일부는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데썼다고 했는데 혹시 이런 것을 두고 말한것인지 착잡해진다. 그늘진 곳들은한결같이 盧씨부부의 도움다운 도움을 받은 바 없다고 밝히고 있으니 그늘진 곳이라는 게 혹시 자기네의 컴컴한 금고속을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이런 판에 金泳三대통령이 6공 청와대의 금고얘기를 공개했다. 취임초대통령 집무실 뒷방과 영부인실등에 문짝두께만도 30㎝나 되는 대형쇠금고가 있는 것을 보고 빨리 치우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비자금 5천억원의 상당부분과 꽃동네에 간 매달 2천원의 돈이 필경 거기를 거쳤을지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대조적이라 쓴웃음이 나온다. 에바는 돈을 챙겨 자선(慈善)에 쌓아 그나마 기리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의 전임 대통령 부부는어디다 돈을 쌓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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