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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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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끝 임금 순종(純宗)은 심한 근시안이었던 것 같다.1890년대의 영국의 여류탐험가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고종을 배알-, 왕세자인 순종과 더불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바마마가 거동을 도와주어야 할 만큼 못 보는 것 같았다고 회고록에 쓰고 있다.안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체가 높으신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끼면 불경이 되기에 쓸 수 없었을 뿐이었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순종은 빈소를 지킬 때도 안경을 벗은 채였으며, 안경을 낀 조문객이 들어오면 짐짓 돌아앉아 조문을 받지 않았다 한다.헌종(憲宗) 때 임금의 외숙이 안질에 걸려 안경을 낀 채로 임금 곁을 지나간 일이 있었다. 이에 곁에 있던 정승들에게 "외숙의 목이라고 칼이 들어가지 않을꼬....."하며 노하였고, 이 말을 전해 들은 외숙은 며칠 동안 고민 끝에 자결을 했다 한다.1898년 이등박문(伊藤博文:이토오 히로부미)의 안경 증발사건은 유명하다. 그를 위해 왕궁에서 베푼 잔치 도중에 잠깐 벗어놓은 안경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잔치 일손을 돕던 무고한 궁인들이 무더기로 옥에 갇혔었다. 이것은 안경을 낀 채 임금 앞에 수시로 드나드는 이등박문의 무례함에 대한 민족적인 반감에서 저질러진 일종의 안경 레지스탕스였던 것이다.이처럼 우리 전통사회에서 지체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끼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지체가 낮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眼鏡)을 끼면 지체가 높아진다. 이를 외교(外交)에 역이용한 분이 있다. 임오군란(壬午軍亂) 후 일본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건너갔던 보수파의 골수 김기수(金綺秀)는 눈이 나쁘지 않은데도 일본 조정에 들 때마다 안경을 끼고 들어감으로써 높은 지체를 과시했던 것이다.안경이 권위나 위엄을 보장하고 높은 지체를 과시했음은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교황 레오 10세가 라파엘로에서 자신의 초상을 그리게 했을 때 평소에 쓰지 않던 안경을 일부러 끼고 있고, 근세 유럽의 백작부인 등 귀부인 사이에 눈이 나쁘지 않은데 안경을 끼는 패션이 꽤 오래 계속 되었었다. 일제 때 지주(地主)들이 도수 없는 금테 안경을 낀 것이라든지 테가 굵은 안경을 낌으로써 파리한 인텔리를 과시했던 풍조도 그런 여파랄 수 있겠다.안경에서 지체는 사라진 지 오래고 오히려 안경이 취직이나 결혼에 결격요인으로까지 타락한 현대병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우리 나라 사람 네 사람에 한 사람꼴로 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갤럽의 조사결과로 밝혀지고 있으니 놀랍기만하다. 學生은 셋에 한 사람꼴로 안경을 끼고 있으며, 대학생은 적지않이 46퍼센트-거의 둘에 한 사람꼴로 안경을 끼고 있다 한다.거대한 공룡이 멸망하기 시작했을 때 눈부터 약해졌다는데 현대문명도 공룡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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