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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신혼부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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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신혼부부 외)



  ▶신혼여행 차 비행기를 탄 신혼부부들이 있었습니다. 한 커플은 엄청난 애정표현으로 어디다가 시선을 두어야할지 퍽 거북했습니다. 모두들 행복해 보여서 절로 미소가 나왔습니다. 쌍쌍이 끼리끼리 서로가 좋아서 못 견딜 지경입니다.

  그런가 했더니 놀랍게도 벌써 다투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식을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러나 싶어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왜 곁눈질이냐?' '왜 다른 여자를 쳐다보느냐?'하고 티격태격 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여 부부가 되었으면 그 순간부터 다른 여자 다른 남자는 보아서도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다른 남자를 꿈꾸고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꿈 이야기를 해보십시오. 아무리 금실이 좋은 부부라 해도 무사하기 힘듭니다.  

  사랑의 속박은 결코 부자유가 아닙니다. 스스로 자유를 반납해버렸기에 그렇습니다. 스스로 매이기를 바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박 안에서 자유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충성도 그렇습니다. 요즘 군 병영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사실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려고 군에 입대합니다. 입대하는 날부터 군기(軍紀)에 매입니다. 내 나라를 위하여 내 자유를 반납하고 펄펄뛰는 청년기의 귀중한 2년 몇 개월을 고스란히 바칩니다. 이것은 충성입니다.

  그런 속박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의를 위하여, 양심을 위하여,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속박합니다. 이것이 높은 차원의 자유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1m50의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1950년에 동전 몇 푼을 가지고 인도의 켈커타에 도착했습니다. 그분이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을 감기면서 사랑을 베푸는 동안에 수녀가 4,000명이 생기고, 고아원이 517개가 세워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 생기고 AIDS환자를 위한 호스피스가 생겼습니다.

  이것을 보고 미국 상하 양원이 그분을 모셔다가 연설을 듣고 미국의 최대 시민 명예 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분은 노벨상도 수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죽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인도 정부가 주관을 해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전 세계가 그 분을 추앙하고 애도했습니다.

  어떻게 그분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참 자유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러한 일을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분은 '나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답니다.

  예수님 때문에 희생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 할 때에 테레사 수녀야말로 참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무디 선생의 성경수양회에 영국의 귀족들이 방문하여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종이 밤새도록 손님의 구두를 닦아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무디 선생의 제자들 사이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은 '여기는 미국이니까 손님들의 구두를 닦지 말자'입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이 이야기를 무디에게 전하면서 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무디는 빙그레 웃으며, '글쎄, 주님께 물어볼까?' 하더랍니다. 이튿날 아침, 영국의 귀족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구두는 모두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무디 선생이 밤새도록 닦아 놓았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봉사한 것입니다.



  ▶전에 영국의 어느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중, James라는 한 목동을 만나서 길을 좀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안됩니다. 저는 남의 집 양을 치는 목자인데 양떼를 놔두고 길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 월급의 3배를 줄 테니 좀 안내하라고 하니까 '못 합니다. 저는 이 양떼를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이번에는 총을 겨누며 '안내하지 않으면 쏴 죽이겠다.'고 하니까 '예, 죽을지언정 당신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그러나 길을 말로는 안내해 드리지요. 저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20분간 가면 도로가 나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해서 길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자 James를 불러 재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던 Polycarp은 사도 요한의 친구였는데, 86세에 화형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 지방 총독이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한 번만 욕하면 죽이지 않고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Polycarp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겨 왔으나 그 분은 한 번도 나를 해롭게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를 모독하겠는가?'라고 말하고 나무에 달려 화형 당해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이 순교자 Polycarp이 바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책망을 듣지 않고 칭찬만 들은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이 서머나 교회입니다.



  ▶이태리 로마에 가면 초대 크리스천들이 핍박을 피하여 들어가 살다가 죽은 카타콤(Cata-Comb)이 있습니다. 햇빛도 없고 습기 찬 그 지하 동굴에서 처참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 동굴 한쪽에 장사 지냅니다.

  거의 300년 동안 그 생활이 계속되었는데, 그때 죽은 사람이 175만 내지 400만 명이나 되는데 그 캄캄한 동굴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즐겨 외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중세기 암흑 시대에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이 5,0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중국이 공산화 된 다음에 순교한 교인이 100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내전과 혁명 때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사람이 수천 명, 수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음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그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하기를 수없이 하고 손톱 발톱이 빠질 정도로 대나무 꼬챙이로 쑤셔도 변절하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매맞고 기절하기까지 고문당하다가 추운 겨울에 옥사하여 순교한 것은 변절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고개만 까딱하고 우상 앞에 절하고 신사참배만 했더라면 그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믿음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어느 귀족의 집 현관에 이상한 동상이 있는데 얼굴 한쪽은 친절하고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쪽은 찡그리고 비죽거리는 얼굴 모양입니다.

  그 집주인은 하인들이 주인 보는 앞에서는 굽실대고 상냥하지만 돌아서면 찡그린 얼굴로 입을 비죽거리고 욕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할 때 다르고 돌아서서 말할 때 다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앞에서 인사할 때는 지극히 존경하는 태도로 굽실거리고 예의바르게 말하다가 인사하고 돌아서서는 '미친놈, 개새끼' 하고 온갖 욕을 다 퍼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인사를 안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콘스탄틴은 본래 기독교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있던 황제인데 한 번은 그가 하늘에서 타오르고 있는 십자가를 환상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이 표적으로 정복하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사실의 기록이 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기독교를 잘 포용하게 되면 그의 적들을 모두 이기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를 승인하고 자신은 기독교의 보호자이며 방어자라고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 자체는 콘스탄틴 황제가 진심으로 행한 일이라고 보아도 좋겠지만, 그의 생애를 살펴볼 때 그는 기독교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거나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사 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가령 로마 주교였던 유세비우스에게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성경 사본 50부를 만들도록 한 일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사본 중 몇 개가 지금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을 선포하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교회의 사업을 위해서 국고에서 공급해 주고 우상의 신당들을 교회에 넘겨주었습니다.

  얼른 볼 때 좋은 때를 맞은 것 같지만 교회는 사실상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도자들이 권력자에게 아부하여 황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방 종교의 관습과 비슷한 것을 교회에 끌어들였습니다.

  한 가지를 타협하다 보니 다른 것도 양보하게 되어 커다란 축복으로 보이던 것들이 나중에 가서는 커다란 저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 300년 간 교회에는 적 그리스도적인 관습들이 채택되어 교회의 뜨거움은 사라지고 선교 적인 사명이 희미해졌습니다.

  왜요? 황제가 기독교를 두둔하고 누구나 다 기독교인의 행세를 하려고 하니 전도할 필요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 위험한 일입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선교 열을 주어 왔던,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던 설(說)도 기독교가 국교로 되면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에 오헬로라는 장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꿈은 세상에서 최고의 강자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왕이 최고 강자였습니다. 그래서 왕을 찾아가서 충성을 맹세하고 왕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어떤 소리 한 마디만 들으면 벌벌 떨었습니다. 바로 악마라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왕보다 악마가 더 강하구나.' 라고 생각해 악마를 찾아가 악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오헬로는 악마를 따라 온갖 못된 일은 다했습니다.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오헬로는 그 무서운 악마도 하나만 보면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오헬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는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나루터의 사공이 되어 매일 오고가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이 없는가 하고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밤에 한 소년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헬로가 문을 열어주자 그 소년은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강을 건너게 도와주세요.'

  물결이 세서 배를 띄울 수 없는데도 이 소년은 애처롭게 부탁했습니다.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그는 말했습니다. '할 수 없다! 내 등에 업혀라!' 그리고 소년을 등에 업고 아는 물길을 따라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강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소년이 점차 무거워지더니 나중에는 너무 무거워 발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헬로가 '얘야! 너 참 무겁구나! 왜 그렇게 무겁지?'

  그러자 갑자기 등뒤에서 신비하고 자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상 죄를 모두 걸머져서 무거운 것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헬로는 '이분이 내가 그토록 찾던 예수님이시구나!' 직감하고, '예수님!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외치며 돌아서자 그분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오헬로는 그 다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 있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업은 대장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과 능력과 소유를 잘 활용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대장부가 될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두 장의 그림을 그려서 상자 속에 넣었습니다. 한 장은 웃는 얼굴, 밝은 얼굴을 그린 것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우는 얼굴, 슬픈 얼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상자에 두 개의 눈구멍을 뚫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시에 상자 속에 있는 두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의 눈에는 웃는 얼굴이 들어왔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우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분석했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는 시각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락없이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는 얼굴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참 깊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하나님께 자기의 남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남편이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나 오늘 당신하고 교회나 한 번 가볼까 하는데 괜찮겠소?'

  그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 이제야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둘러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교회로 나섰습니다.

  가면서도 마음 속에는 내내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실까? 이왕이면 교회에 처음 나오는 남편을 위해서 좀 적절한 말씀을 주시면 좋겠는데…'

  드디어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얼른 주보를 받아서 본문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창세기 5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을 펴서 창세기 5장에 어떤 말씀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족보 이야기만 지루하게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몇 살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더 살다가 몇 살에 죽었더라.'

  그는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이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삶이 형통할 수 있다는 좋은 말씀을 주시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지겨운 족보 이야기만 잔뜩 쓰여 있으니까 마음에 실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께서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다 마쳤습니다. 나오면서 뜻밖에도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왕 왔으니까 등록을 하고 가야 되겠지. 가서 등록합시다.'

  그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바로 등록을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 듯이 그는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내가 오늘 듣기에는 목사님의 설교에 특별한 내용이 없었던 것 같던데 어떻게 당신의 마음이 움직여서 등록할 결심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남편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목사님 설교를 듣다보니까 옛날 사람들이 꽤 오래 살기는 살았더구먼. 그러나 결국 그들도 다 죽었잖아. 그런데 말이야. '죽었더라,' '죽었더라.'고 하는데 그 말이 내 귀에는 '너도 죽어!'라는 말로 들리는 거 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아직도 죽을 준비가 안되었거든. 그래서 이제라도 믿기로 작정하고 죽을 준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등록을 하게 된 거야.'

  성령께서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신 것입니다. 히9:27절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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