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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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 몇가지
성자라는 것(감사, 보답, 봉사)
주후1334년으로부터 1345년간에 영국의 성자라는 이름을 얻고
또한 당시의 가장 박학가였던 떨한 감독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외우면서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를 힘썼으며
또한 무엇으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이 감독의 그와 같은 태도와 열성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감독의 지도하에
하나님과 교직에 열심히 봉사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성자란 별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고 매사에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이다.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6:1-9)
신자는 구원받은 날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제일 큰 의무요, 특권이요, 영광이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김에 사랑이 없으면 그 섬김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감정, 행동, 물질 등으로 다양하게 그 사랑을 나타낸다.
이것들은 극히 제한되고 부분적이다.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육신에서 나온 자연적 성품은 그 성품이 아무리 좋아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나타낼 수 없다.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성령의 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성품이라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과 뜻과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다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성품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속 연단을 받으면 마침내 성품도 변한다.
무엇보다 나의 성품을 변화시켜 달라 기도하라.
2. 성품이 하나님께 드려지지 못하면 제약과 연단이 많다.
하나님은 성품이 드려지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 계속 치리하신다.
나가기만 하면 꼭 싸우는 성품을 가진 아이의 어머니가 그 아이가 밖에 나가는 것을 제약하듯
우리의 성품이 온전히 드려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제약하신다.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장 큰 자유를 맛보게 된다.
성품이 바뀌기 전 누리는 얼마만의 자유는 영적인 가처분 자유일 뿐이다.
성품이 드려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완전한 자유는 결코 없다.
3. 참된 복은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온다.
우리의 성품이 완전히 드려지지 않는 한 하나님은 마음대로 복을 주시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성품이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결코 물질의 복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비록 물질이 없어도 주님 한분으로 만족한다는 사실을 눈을 뜨고 아는 그 순간부터
주님은 자유와 복을 풍성하게 하신다.
4. 어떻게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의 단련을 통해 경건의 훈련을 쌓고,
형제들과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질 수 있다.
우리 모두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여 모든 부분 에서 풍성한 자유와 복된 삶이 넘치기를 바란다.
성전의 마하무드
최근 미국 법정은 그간 세인의 관심을 끌어온 테러범 마하무드(Mahamud)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렸다.
작년 2월 뉴욕 맨하탄 소재 세계무역센터의 일부를 폭파해 온 세상을 경악시킨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보석조건이 없는 종신형이었다.
앞길이 아직 창창한 젊은 마하무드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과 가정을 포기하고 테러를 자행하게 만든
그 엄청난 동인(動因)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마하무드는 이집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에 찌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따라서 물질적인 풍요의 나라 미국은 그의 끊임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1986년 그는 미국에 불법 이주하여 지하생활을 시작했고,
1988년 영주권을 받아 합법적인 체류자가 된 이래 택시기사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세 자녀를 둔 어엿한 가장으로서 뉴욕주의 뉴악(Newark)시에
자그마한 집도 한 채 마련하여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토록 대망해왔던 그의 꿈‘아메리칸 드림’이 마침내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회교도인 그의 양심이 새로운 삶을 마냥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가 미국의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동안, 세계방방곡곡으로부터 모여든 무수한 회교도 형제들이
이른바 회교성전(聖戰)이라 불리는 지하드(Jihad)에 참전하여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몹시 괴롭혔던 것이다.
어려운 살림 중에서도 그는 지하드를 위해 정기적으로 헌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질을 바치는 것만으로는 그의 양심을 달래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리고 지하드에 참전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게 된다.
평생을 지하드에 헌신하지는 못하더라도 여행자 신분으로 들어가 비자가 살아있는 동안 참전하다가
돌아가는, 이른바 ‘휴가철 게릴라’(holiday guerilla)로서 몇 해를 거듭 참전하는 동안
그의 비전과 포부는 점점 원대해지고 강해진다.
무명용사로서 지하드에 참전하여 희생하는 일도 귀하지만,
더 큰 효과와 가치를 위해 그는 마침내 자기의 생명과 가족,
그리고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하여 성취한 ‘아메리칸 드림’을 결연히 포기한 채 테러의 주역이 된다.
마하무드의 생애에 관한 기사를 읽는 내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그가 저지른 사악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토록 엄청난 대가를 감수한 그의 결단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복음이라는 지고(至高)의 가치를 위한 나의 헌신도가 회교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마하무드의 헌신에 까마득하게 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불한 대가를 과연 나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며,
그가 포기한 것들을 나도 복음을 위해 포기할 수 있겠는가...
마하무드는 고사하고 ‘휴가철 게릴라’들만큼이라도 복음을 위해 선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과연 몇이나 될까?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으로부터 모여드는 지하드 참전자들은 한결 같이 자원하는 병사들로서
아프간 반군들(Mujahedin)과 합류하여 지하드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그들 중 보수를 받고 싸우는 용병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자비량하면서
기꺼이 자기 생명을 희생하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물자의 공급,
그리고 무자비한 훈련을 거치면서도 단 한 사람도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없었다는
놀라운 탐방 기사를 싣고 있다.
우리가 복음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실제로 그 복음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는가에 따라 측정된다.
아무리 복음의 절대 가치를 힘주어 강조한다 할지라도 복음을 위한 구체적인 순종과 열매가 뒤따르지 않을 때
그 모든 미사여구는 빈 수레가 발하는 소음이 되고 말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를 향해 주여, 주여 부르는 이들보다 그의 명하신 바를 순종하는 이들을 원하시고
인정하신다(눅6:46).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나라를 땅 끝까지 확장하는 거룩한 전쟁에
자신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된 크리스천 마하무드와 ‘휴가철 게릴라’들은 지금 모두 어디 있는가?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6:1-9)
신자는 구원받은 날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제일 큰 의무요, 특권이요, 영광이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김에 사랑이 없으면 그 섬김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1.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감정, 행동, 물질 등으로 다양하게 그 사랑을 나타낸다.
이것들은 극히 제한되고 부분적이다.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육신에서 나온 자연적 성품은 그 성품이 아무리 좋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나타낼 수 없다.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성령의 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성품이라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과 뜻과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다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성품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속 연단을 받으면 마침내 성품도 변한다. 무엇보다 나의 성품을 변화시켜 달라 기도하라.
2. 성품이 하나님께 드려지지 못하면 제약과 연단이 많다.
하나님은 성품이 드려지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 계속 치리하신다.
나가기만 하면 꼭 싸우는 성품을 가진 아이의 어머니가 그 아이가 밖에 나가는 것을 제약하듯
우리의 성품이 온전히 드려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을 제약하신다.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가장 큰 자유를 맛보게 된다. 성품이 바뀌기 전
누리는 얼마만의 자유는 영적인 가처분 자유일 뿐이다. 성품이 드려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완전한 자유는 결코 없다.
3. 참된 복은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온다.
우리의 성품이 완전히 드려지지 않는 한 하나님은 마음대로 복을 주시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성품이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결코 물질의 복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비록 물질이 없어도 주님 한분으로 만족한다는 사실을 눈을 뜨고 아는 그 순간부터 주님은 자유와 복을 풍성하게 하신다.
4. 어떻게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까?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의 단련을 통해 경건의 훈련을 쌓고,
형제들과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만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질 수 있다.
우리 모두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여 모든 부분에서 풍성한 자유와 복된 삶이 넘치기를 바란다.
세 가지 물음
최근에 상영되었던 영화 '기쁨의 도시'에서 삶에 환멸을 느낀 한 젊은 의사 맥스는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강도를 만나고 여권과 돈을 도난당하는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그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궁지에 빠지게 되고 만다. 그러다가 길을 건너는 도중 조안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그 도시의 빈민들을 치료해주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있었다.
맥스는 그 진료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은 다시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극적인 순간에 죠안은 자기가 발견했던 것을 맥스와 나누게 되고 근본적으로 인생의 세 가지 물음을 던져준다.
"당신은 달아날 수도 있고, 방관자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전적으로 헌신할 수 있지요."
소년의 병간호
다음은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가 쓴 '사랑의 학교'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 한 소년이 나폴리에 있는 자선병원을 찾아왔다.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아버지가 나폴리에서 갑자기 병에 걸려 입원해 있다는 편지를 받고
병간호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다.
간호사는 아버지가 닷새 전쯤 외국에서 돌아온 노동자란 말을 듣고 소년을 4호실 환자에게로 안내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본 소년은 깜짝 놀랐다.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소년은 자신도 몰라보는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했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오후, 소년이 아버지 곁에서 병 간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간호사 아가씨,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문 쪽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소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바로 아버지의 낯익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저 분이 바로 당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병실로 들어서던 아버지는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깜짝 몰랐다.
소년은 그동안 간호사의 잘못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아버지로 알고 간호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난 소년은 곁에 있는 환자를 두고 차마 발걸음을 떼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 먼저 집으로 돌아가세요. 저는 하루만 더 이분을 간호해 드릴게요."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소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전보다 더욱 열심히 환자를 간호했다.
소년의 아버지가 병원을 떤 지 이틀째 되는 날, 밤새 몹시 괴로워하던 환자는 마지막 순간
소년을 향해 힘없이 미소 짓고는 눈을 감았다.
소년은 쓸쓸한 마음으로 창가에 꽂혀 있던 제비꽃 한 다발을 환자의 손에 쥐어 준 뒤 병원 문을 나섰다.
소년의 등 뒤로 새벽 별들이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었다.
슈바이처의 결심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는, 슈바이처 (Schweitzer, Albert) 박사는 21세 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30세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한 그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구원하는데 공헌하게 된 것이다.
여러 청년들의 결심은 어떠한가? 결심이 없다던가,
낮은 것이나 아닌지? 위인들의 결심한 바를 배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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