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예화 모음(주님을 위한 사랑 외)

본문

예화 모음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하와이로 이주해 사람들 가운데 아주 신앙이 좋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주일이 되자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화가 난 농장 주인이 이제부터 주일에 교회 가는 자들은 매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하와이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왔는데 주일을 못 지킨다면 여기에 온 이유가 없어지니 매를 맞더라도 주일을 지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농장 주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도 이들은 '오늘은 주일이니 교회에 가기 전에 매를 맞고 가겠습니다.'라고 농장주인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협박을 하다가 안되니 회유를 하면서 '주일날 일하면 삯을 더 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간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돈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농장주인은 그들의 뜨거운 믿음에 감동을 받아 매 주일 농장 일을 쉬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었고, 멀리 교회 가는 것보다 가까이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농장 안에 예배당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과 대답 속에 놀라운 이적들이 일어납니다. 사랑의 고백 한 마디로 병석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서 다시 새 출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랑의 위력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의 고백이 오고 가는 그 자리에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통하여 베드로를 수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질문은 헬라어 원어로 '아가파스 메'인데,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뜻입니다. 현재 예수님을 향한 아가페의 사랑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주님은 '베드로야, 네가 왜 나를 모른다고 하게 된 줄 아느냐? 네가 왜 이렇게 실수가 많고 형편없이 된 줄 아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간 마음을 열고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입술로 '주님 사랑합니다' 라고 아가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고백할 때 변화와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시티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공부도 톱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크리캣 선수였습니다. 그에게는 출세의 길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캠퍼스 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학교 당국자들은 이 학생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자 친구가 와서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친 희생이 아닌가? 다시 한번 재고해 보게' 이때 시티 스터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헌신은 말로 되지 않습니다. 계산해서 되지 않습니다. 나의 만족을 위한 것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헌신은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내 마음에 있으면 주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내 마음에 있으면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내 마음에 있으면 주님을 위하여 순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현재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서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이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신앙 년조와 신앙의 질이 같다고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처음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순수 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주님을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년조가 길어지고 직분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점점 복잡해지고 생각하지 말아야 될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이 좋고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이 우리 속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년조가 길어지면서 서서히 우리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조금씩 복잡해집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심은 '누가 교회에서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영향력이 큰 가? 누가 더 똑똑한가?'에 두게 됩니다.

  예수님을 삼 년이나 따라 다니며 제자훈련을 받았던 제자들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우리 가운데 누가 더 크냐?'라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누군가 더 사랑을 받으면 못 견뎌 합니다. 누가 좀더 예수님 가까이 앉으면 비위가 상해서 속이 불편해 집니다. 마18장에도 제자들은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더 크냐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도 과연 서열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누가 과연 첫째가 될 것인가?' 이것이 제자들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 크리소스톰은 중세에 유명한 대설교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며 교회를 섬겼던 분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교구에 그곳에 살고 있는 한 농부를 교육시켜 사제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자격도 없는 자를 잘못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겨 주일 예배에 몰래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예배에 참석하여 그 사제가 과연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가 살펴보던 중에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제까지 이토록 간절히 기도 드리는 사제를 본적이 없었고, 그 메시지가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힘있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예배가 끝나자 크리소스톰은 나이도 적고 배운 것도 자기만 못하며 목회 경력도 어리지만 앞으로 가서 두 무릎을 꿇고 축복해 달라하여 그의 손을 자기의 머리에 얻고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 같은 겸손의 모습입니다.





  ▶보스턴에 애니라는 작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부모조차 그들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든 자원봉사자 한 사람이 이 애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이 되었는지 6개월쯤 그를 돌보았을 때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점점 병세가 좋아져서 퇴원했고 보스턴 파킨스 맹아학교에 들어가 6년 동안 우등생으로 공부를 합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을 받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앤이 어느 날 신문에 보니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고에 시달리는 아이가 한 명 있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광고였습니다.

  신문사의 도움으로 눈을 뜬 것도 감사하고 나이든 자원봉사자의 사랑도 고마워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지' 늘 생각하였는데 흔쾌히 자원했습니다.

  그 후 이 아이 곁에서 함께 먹고 자기를 48년, 바로 이 아이는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헬렌 켈러가 되였던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헬렌 켈러 여사에게 영국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며 '당신처럼 모든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오직 한 가지 앤 설리반 선생님 때문입니다.'

  3중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앤 설리반 선생님 때문에 헬렌 켈러는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농구 코치로 유명했던 John Wooden 은 선수들에게 이런 훌륭한 조언을 하였습니다.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겸손하라. 명성은 인간이 주는 것이니, 감사하라. 자만은 자아가 주는 것이니, 조심하라'





  ▶옛날 페르시아에 사이러스(Cyrus) 왕이 전쟁 중에 적국 왕자와 그 부인과 아이들을 생포해 왔습니다. 사이러스는 그들을 죽이기 전에 물었습니다.

  '만일에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아내를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왕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왕은 이 말 한 마디에 감동이 되어 그들을 다 풀어주었습니다. 살려 주었습니다. 그 날 밤늦게 집에 돌아온 왕자는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뻐서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사이러스 왕이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더군요. 내가 보니 정말 잘 생긴 미남이더군. 의젓하고 늠름하고, 장수답고, 사나이답더군'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아내의 대답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 합니다.' '그럼 뭘 봤어요?' '나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늠름하게 말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스위스 알프스산맥에는 풀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양을 치는 목동들이 많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습관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목동들이 양을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며 풀을 뜯어먹게 합니다. 날마다 해질 무렵이면 산 위에 있는 목동은 산밑에 있는 목동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주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그 이름을 찬양합시다.'

  이 소리는 조용한 공기를 타고 산 아래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목동들도 그 소리를 듣고 응답합니다.

  '주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주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모두가 하산을 시작합니다.

  한낮에 양을 치면서 목동들은 한가로이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피리를 불기도 합니다. 때로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양들을 급히 나무 아래로 피신시키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갑자기 나타난 맹수와 싸우기도 합니다. 때로는 낭떠러지도 떨어진 양을 구하기 위하여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갖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한결같은 구호는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입니다.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목동들입니다.





  ▶한국의 크리스천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10분 이하'라고 대답한 사람이 남자 응답자의 60%, 여자 응답자의 50%이었습니다.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24시간 중 10분도 기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가 무기입니다.





  ▶제리 레빈이라고 하는 50대의 미국 해외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간증입니다.

  그는 레바논에서 취재를 하다가 회교도들에게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독방에 가두었습니다.

  대개 독방에 감금된 사람들은 한 달이 채 못 되어 미쳐버린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역시 독방에 감금된 지 며칠이 지나자 정신착란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그의 아내는 평소 그에게 늘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요.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그래서 그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여기까지 내가 지낸 것은 아내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도우신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도우실 것이다. 내가 왜 외롭게 지내는가?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지'

  그는 하나님께 말을 걸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정말 살아 계시다면 저로 하여금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이 감옥 안에서도 저를 돌봐주시고 나가게 하옵소서.'

  무신론자가 독방에 갇히니까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 있던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자 마음속에 평강이 넘쳐났습니다. 기쁨이 생겼습니다. 자기를 가둬 놓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도 없어지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1년 후 그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때 그는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정상이었습니다. 무신론은 완전히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오늘도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에벤에셀입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여기서부터도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사람의 두 사건을 늘 마음속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 불꽃이고 다른 하나는 요나 고래뱃속입니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가시떨기에 불꽃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불이 이스라엘에 떨어져도 이스라엘을 타게는 못 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타버리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불과 재앙도 이스라엘을 재로 만들 수는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래가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나가 고래뱃속에 들어갔습니다. 3일 3야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결국은 토해놓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삼켜도 소화시키지 못 할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삼켜도 먹어 치우지는 못 할 것입니다. 튀어나오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굳굳한 신앙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