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노만 빈센트 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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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목사님의 친구 중 무일푼으로 가장 성공한 세일즈맨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필 목사님이 그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어떻게 오늘과 같은 성공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날마다 거울을 본다.'고 하더랍니다.
그가 날마다 보는 거울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⑴위대한 날을 원하는가?
⑵위대한 날을 가질 수 있다고 믿으라.
⑶위대한 날을 달라고 기도하라.
⑷위대한 날이 되도록 처신하라.
⑸위대한 날을 원한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라.
⑹위대한 날을 창조하려면 움직여라.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중에 '토마스 카알라일'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평생소원은 '프랑스 혁명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보고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잔혹한가를, 그리고 우리가 왜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가를 알리기 위해서 역사책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펜을 잡고 10년에 걸쳐 프랑스 혁명사를 씁니다. 드디어 10년이 다 된 그 어느 날, 그는 그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출판하기 전에,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에게 그 원고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존 스튜어트'가 '카알라일'의 원고를 살펴봅니다. 페이지마다 꼼꼼히 살핍니다. 교정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존 스튜어트가 원고를 책상 앞에 잔뜩 늘어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일찍 하녀가 와서 보니, 책상 위에 고치고 수정한 원고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주인님이 종이를 이렇게 흩어놨구나' 하면서 그 원고들을 모아서 벽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때어 버렸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알라일은 낙담합니다. 약 넉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절망 속에 빠집니다. 모든 의욕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10년에 걸쳐 쓴 작품인데,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린 겁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창 밖을 바라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 이웃집이 새 집을 공사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약간 내리는데 벽돌공이 와서 줄을 놓고 그 줄에 맞추어서 벽돌을 쌓아 갑니다. 조금 쌓다가 뭐가 안 맞는지 쌓은 것을 확 밀어 버립니다. 다 무너뜨리고 또 다시 쌓습니다. 또 무너뜨리고 다시 쌓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카알라일'이 자신의 무릎을 쳤습니다.
'그래,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도 저렇게 몇 번씩 작업을 하는데, 세계의 역사를 바꾸기 위한 일을 한 번에 이루려고 하다니!'
그는 용기를 내어 그 날부터 다시 프랑스 혁명사를 썼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첫 번째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불후의 명작을 우리의 손에 남겨 주었습니다.
▶한 평생을 절에 다니다가 예수를 믿게 된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 분은 유별나게 불심이 깊던 분이셨습니다. 매일 새벽 불공을 드리셨는데 새벽 불공 전에 매일 같이 목욕 재개하셨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새벽 기도를 드리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매일 새벽에 목욕재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교회 나오기 전에 남보다 1시간 전에 일어나 목욕을 하려니 잠도 부족하고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할머니 꼭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 말씀을 드렸는데 막무가내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돌로 만든 부처 앞에 헛된 불공드릴 때도 목욕 재개했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습니까?'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는데, 교인들이 '이 권사님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받으시는 것 같아요? 이분하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가 달라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윌리엄 피터'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어린 시절에 길을 걷다가 10불 짜리 돈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70평생을 살면서 언제나 땅을 보고 걸으면서 단추 29,516개와 바늘 54,172개를 주웠고, 동전 24불을 주웠습니다.
이렇게 얻은 것이 있는가 하면 잃은 것이 있는데 한 번도 하늘을 쳐다보지 못해서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밝은 태양과 별들과 달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얻을까 하여 땅만 보고 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에서 각종 병으로 시달리는 아프리카를 위하여 의료선교기금을 모금할 때에 있은 일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모금을 하려고 헌금대를 돌렸습니다. 우리는 헌금대가 주머니로 되어 있지만 서양은 세숫대야처럼 둥글넓적한 은 접시랍니다.
큰 은 접시가 돌아갈 때마다 사람들은 얼마씩 돈을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어린이가 제 앞에 온 접시 위에 널름 올라앉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왜 거기에 올라앉았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돈이 없습니다.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 바로 이 아이가 커서 뒷날 위대한 아프리카의 성자 리빙스턴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잣집 개가 너무 크게 짖습니다. 주인이 나가 보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개를 쓰다듬으며 '짖지 말라'하고 들어 왔습니다. 조금 있으니 다시 짖었습니다. 나가 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 시끄럽게 짖느냐?'고 야단을 치고 들어와서 다시 잠자리에 들어 잠이 들려하는 찰나에 또 다시 개가 짖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난 주인은 엽 총을 가지고 나가서 짖는 개를 쏘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강도가 들어와 가족을 죽이고 집안에 있는 돈과 귀중한 물건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개는 강도가 들어 온 것을 알고 짖었으나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도 모르고 충직한 개를 죽인 것입니다. 그 부자는 개 짖는 소리를 무시했다가 온 가족이 화를 당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줄 아는 자가 귀 있는 자입니다. 경우에 따라 설교가 귀에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한사람이 말하면 무시하라. 두 사람이 말하면 살펴 보라. 세 사람이 말하면 자기를 고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중요한 일을 경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가자는 말을 무시했습니다. 내가 지금 너무 바쁘기에 중요한 일을 지나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애매한 개를 죽이고 결국 내가 엄청난 손해를 당합니다.
▶내가 차고 있는 시계가 저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저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제품이 있다는 것은 제작자가 있는 것입니다. 물건은 있는데 만든 자는 없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알고 우주를 알면 알수록 만드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버스바닥에 500원 짜리 동전 두 개가 떨어져 있었으나 손님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차마 줍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어떤 남자가 내리면서 하나를 얼른 주어가지고 내려갔습니다.
그 사람이 내리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동전을 주우려고 엎드렸는데 청년 한 사람이 동시에 엎드리면서 서로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야 이놈아 너 사소한 일에 목숨 걸래'
동전하나가 뭐기에, 사랑이 뭐 길래, 거기에 목숨을 겁니까? 여러분은 무엇에 목숨을 걸고 계십니까? 믿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도, 내세도 좋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왜 한국을 잘사는 나라로 삼고 계실까요? 왜 이 땅에서 선교사가 수없이 많아지게 하는 것일까요?
받은 빚을 갚으라고 주시는 은혜요 복입니다. 과거 이 땅을 향해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사랑의 손길을 부으셨습니다.
일제 때 수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피 흘리게 하셨고 해방 후 미국과 유럽을 통해 수많은 원조 물자 받아 누리게 했습니다.
여기 계시는 어르신들 중에 그때 원조 물자 안 받으신 분계십니까? 그때 미국교회들이 보내는 수 없는 원조 물품, 정치인들이 가로채 먹고 일부 경제인들이 팔아먹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사랑의 받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점심시간에 미국에서 건너온 밀가루,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을 배급받아 먹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맛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 학교 급식 돈 내고 먹었나요?
그 사랑의 빚도 엄청나지만 복음의 빚을 얼마나 많이 졌습니까? 수많은 학교, 병원, 교회, 사실 선교사들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보세요. 이제 베풀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동남아 중국 사람들이 일년 내내 일하여야 벌 수 있는 재물을 우리는 한달 일하여 법니다. 동남아 아이들이 평생 벌은 것 모아도 중고 액셀 자동차 한 대 못사는데 우리는 한달 만 부지런히 벌면 중고차 차 한대를 삽니다.
우리가 잘났기에 된 것입니까? 우리가 노력해서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감동케 한 일이 얼마나 되십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으로 인해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뿌듯한 삶을 사신 것이지만 그러나 만약 지나온 한 주간, 한 달, 1년, 지나온 한 평생 동안 나로 인해 감동한 사람이 없다면 그 삶은 재고해 보아야할 삶입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은 감동케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감동한다고 하는 것, 참으로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동을 주는 일입니다. 모든 일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장사도 감동을 주어야 하고, 가르침도 감동을 주어야 하고, 심지어 예배도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감동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감정이나 기력(氣力) 등을 포함한 총괄적인 용어라고 합니다. 일종의 미적 '혼합감정'이 감동입니다. 사람이 느끼는 쾌, 불 쾌가 감동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동이 있으면 쾌감을 느낍니다. 감동이 없으면 불 쾌를 느끼게 합니다. 영어의 감정이란 단어는 'emotion'입니다. 이 말은 'motion'에 'e'를 첨가한 말입니다.
'로버트 모건'은 '홍해의 법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늘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치 놀이동산의 청룡열차와 같다. 우리 감정은 고삐가 풀려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늘 일정치 못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늘 변하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동도 일정치 못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대인관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⑴대인 관계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⑵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일의 필요성을 확신해야만 한다.
⑶친절한 태도로 진실을 말하라.
⑷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⑸규칙들을 배우고 관습을 따르라
⑹감정을 조절하라.
⑺도움을 받기만 하지말고 사람들을 도우라.
⑻당신의 언사에 주의하라.
⑼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라.
⑽제3의 귀로 들으라.
⑾행복하고 낙관적이며 의욕적인 기분을 누리라.
⑿모든 인간관계, 심지어 대결까지도 친절한 방식으로 시작하라.
⒀원한을 품지 말고 복수하지 말라.
⒁인생과 당신의 이웃, 당신의 환경, 그리고 당신 자신을 사랑할 것을 결심하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숨을 내쉬면 성령을 받습니다. 주님의 숨을 받으면 성령을 받습니다. 주님의 숨은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주님의 숨을 받고 주님과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받고 감동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외로 가다보면 두부 전문 음식점이 많이 있는데 어떤 집에는 '순두부', 어떤 집에는 '손 두부', 또 어떤 집에는 '숨 두부'라고 써 놓았습니다. 숨 두부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러나 대개 숨쉬는 두부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부가 숨을 쉰다는 말은 싱싱하고 살아 있는 두부라는 뜻이겠지요. 두부가 숨을 쉬면 살아있고 싱싱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숨을 잘 쉬면 싱싱하고 살아 있는 성도가 됩니다. 나 혼자 숨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숨을 쉬는 것입니다.
감동은 하나님의 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감동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의 소리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의 유행가가 그렇게 감동이 되고 어떤 노래는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찬송가는 불러도, 불러도 눈물이 안 나는데 유행가는 부르면 눈물이 난다면 문제이겠지요.
또 어떤 분은 세상의 볼거리에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떤 영화는 말씀보다 더 감동이 있다고 합니다. 영화가 말씀보다 감동이 있고, 유행가가 찬송가보다 감동이 있다면 문제가 아닙니까? 말씀이나 찬송가에는 문제가 없고 단지 우리의 마음 그릇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의 문화나 유행에는 쉽게 감동을 받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늘의 소리에는 좀처럼 감동이 없는 이것이 현대인의 정신문화입니다. 현대인의 비뚤어진 신앙상태입니다. 여기에 영적 공허가 있습니다.
▶어느 날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함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그때 관우가 '야! 여기서 기다려! 내가 표 사 올께' 하고 매표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매표소 쪽에서 관우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유비와 장비가 급히 매표소 앞으로 달려가니까 거기에서 관우가 매표소 직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뜯어말리며 '왜 싸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관우는 계속 분이 풀리지 않는 듯이 씩씩거리며 '저 자식이 조조만 할인된다고 하잖아! 아주 나쁜 놈이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해력이 없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한 이해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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