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얼음공장 외)
본문
예화 모음(얼음공장 외)
▶얼음공장에서 생긴 일입니다. 여름철이 되면 얼음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얼음공장은 항상 시끌벅적합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큰톱으로 얼음 덩어리를 자를 때 나는 소리, 또 인부들의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합니다. 거기다 얼음공장의 바닥은 톱밥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 톱밥 위로 떨어지는 얼음조각들이 뒤범벅되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산란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어떤 남자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시간을 좀 보려고 하는데 손목에 있던 시계가 없어졌습니다. 어딘가에 풀어놓기는 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값도 비싼 시계이지만 결혼할 때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받은 예물시계였습니다.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료들에게 같이 찾아보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찾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작업장을 벗어나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무엇이라고 변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식사시간이 끝났습니다. 다시금 작업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얼음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꼬마아이가 자기의 시계를 찾아서 손에 들고는 공장 입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얘야, 나는 잃어버렸던 내 시계를 그토록 찾아다니느라고 애를 썼지만 찾지 못했는데 너는 어떻게 쉽게 찾았느냐?'
아이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인부들이 모두 식당으로 갔습니다. 시끌벅적하던 작업장이 조용해 졌습니다. 아이는 공장 안을 지키기 위해서 책이나 읽으려고 한 곳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재깍재깍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톱밥을 헤쳐 보았더니 거기에 시계가 들어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분주합니다. 세상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일에 찌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를 드리러 와서도 우리의 마음이 산란해서 예배드리는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건성으로 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건성으로 듣고 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십 번, 수백 번 통독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단 한 말씀을 읽고 듣더라도 그 말씀에 집중해서 그 말씀을 붙드는 심정으로 들을 때, 그 말씀이 내 삶 속에 살아 역사하면서 내 영혼을 살찌우고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일과 속에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과 1:1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치 얼음공장의 식사시간처럼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비우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영이 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저서 '종교박람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요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서?' '그렇다네' '그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먼' '글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는데' '몇 살 때 죽었지?' '모르겠는데' 대화가 이쯤 되니 믿지 않는 친구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예수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수 믿는 건가?'
그때 믿는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네. 그러나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달라진 게 있다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다는 것이네.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 전까지 나는 술주정뱅이요 빚도 많지 않았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가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나. 그리고 나를 반가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항상 화를 내며 살아왔었는데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은 모두 나를 반가와 한다는 것이네. 또 나도 가족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구만. 그리고 나는 몰랐었는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네. 그러고 보니 감사하고, 하루하루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 자체가 아주 소중해졌다네.'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Chuck Feeney)는 25년 간 4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남몰래 기부하면서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철저히 비밀을 지켜온 자선사업가입니다.
그 많은 기부를 하면서도 피니는 이코노미 클래스로 여행을 하며 25달러 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검소한 사람이었습니다.
1979년 그는 하와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가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을 뻔한 후부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는 '내게 충분한 돈이 있지만 그 돈은 내 삶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쌓아 놓아도 수의 두 벌 입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세계적으로 구제를 가장 잘하는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가정마다 구제 헌금 통을 만들어 놓습니다. 유대인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구제(쩨다카)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수입의 십분의 일을 구제에 쓰는 것이 보통 수준입니다. 이십분의 일이나 그 이하를 구제에 쓰는 사람은 인색한 사람입니다.
구제 대상의 우선순위는 가족입니다. 그리고 친족, 이웃사람 순으로 나아갑니다.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구제를 가르칩니다.
구제할 때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구제는 명예가 아니라 섬김이요,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구제할 때 불이익도 따르고 비난도 따를 수 있지만 결코 구제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물질을 다스리라. 그러면 그 물질은 너에게 참으로 유익한 충복이 되리라. 그렇지 못하면 물질은 너에게 폭군이 되어 너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는 '예수께서 우리의 돈주머니를 다스리기까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한말 서양의 신문명이 들어올 때, 어느 대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비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때가 잘 씻긴다고 신기해하며 문객들에게 비누를 자랑하고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의 문객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YMCA가 기틀을 잡는데 산파역할을 하셨던 월남 이상재(李商在)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상재 선생이 비누를 받아들고 갑자기 칼로 비누를 깎아서 먹는 것입니다. 대감이 놀라며 말합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그건 때를 씻는 물건이지 먹는 물건이 아닐세'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알다 마다요. 여러분은 이것으로 얼굴의 때만 씻지만 저는 뱃속의 때를 씻어 볼까 해서 먹었습니다.' 그때 대감과 문객들이 부끄러워 모두 낯을 붉혔다는 것입니다.
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개혁되는 것은 없고 개혁과 관련된 스트레스만 쌓여 가는 시대입니다. 정치 개혁을 부르짖은 지 오래지만 정치권의 구태와 부패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겉만 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개혁하겠다고 제도를 바꾸고 법을 새롭게 하고 관행을 고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바뀐 제도, 법, 관행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이유는 사람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로운 제도, 법, 관행을 또 다시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을 바꾸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삶의 태도가 바뀌고, 그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도, 법, 관행을 조금만 손질해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고, 좋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행색이 남루해 보이는 사람이 테레사(Madre Teresa) 수녀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수녀님, 오래 전부터 아이가 여덟이나 있는 가족이 굶고 있습니다.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먹을 것을 가지고 그가 일러준 집으로 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여인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선 수녀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이 담긴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아픈 아이들은 없는지요. 여기 먹을 것을 좀 가져왔어요.' 그러자 여인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기 전에 꾸러미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테레사는 이웃집으로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아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날 굶어 지쳐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막내인 듯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에 여인이 빈손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디를 다녀옵니까?' 데레사가 묻자 여인은 말합니다. '굶주리는 이웃이 또 있어서요.' 그 말에 감동한 데레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아이들이 배고픈 와중에도 이웃을 알고 있었군요'
얼마 후 테레사 수녀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기독교도인 이 여인이 먹을 것을 나눠준 이웃은 바로 원수처럼 여기는 이슬람교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망초'라는 꽃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 '다뉴브' 강가를 사랑하는 남녀가 걷고 있었습니다. 강가에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참 꽃이 너무 예쁘네요' 하고 여자가 감탄을 하자, 남자는 손을 뻗어 그 꽃을 꺾다가 디디고 있는 흙이 무너지는 바람에 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지만 물살이 너무 세어 나올 수 없어 자꾸만 떠내려갔습니다. 여자는 강가를 따라 뛰어 갔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남자는 꽃을 여자에게 던지며 '나를 잊지 말아요, 제발 나를 잊지 말아요' 라며 물 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무덤에 그 꽃을 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따서 꽃 이름을 '물망초''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강물에 잠겨 세상을 떠나는 남자는 사랑하는 연인의 기억 속에 늘 살아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참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도 기억되면 기쁜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억할까요? 이 청년처럼 목숨을 버려야만 기억하실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행10:4절에 백부장 고넬료의 믿음의 행위를 '기억하신 바 가 되었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의 기억했다는 것은 단순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모르시겠습니까?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다고 했으며 악인의 경우도 죄악에 대해 기억해 두셨다가 심판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뜻은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구원해 주십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잊지 않으십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기억은 일반적 의미 이상입니다. 성도들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의 행위를 통해 받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의 '특별한 믿음의 행위' 즉 특별한 믿음을 기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우등상을 수여합니다. 일정기간 결석 없이 다닐 때는 개근상을 수여합니다. 국가에 무엇인가 공헌했을 때는 훈장을 수여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기억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철가방 우수씨'라는 기부천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우수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7살 때 버려졌습니다. 보육원을 뛰쳐나와 구걸하며 지게꾼으로 겨우 먹고살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앵벌이 조직에 들어가 소년원을 몇 차례 다녀왔고, 40대 들어서는 웨이터로 일하던 술집에 홧김에 불을 지르려 했다가 1년 6개월 징역을 살았습니다.
최악의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 감사의 생활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어린이재단 잡지 '사과나무'를 통해 아이들의 사연을 보면서 흐느끼고 또 흐느꼈습니다.
그는 출감 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종일 중국집 배달로 번 돈을 5명의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기뻐하며 감사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2006년부터는 매달 5만원, 10만원을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했습니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고, 소주 두 병을 마실 정도였지만 후원을 시작하면서 완전히 끊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어린이재단 앞으로 4천만 원 종신보험을 들고 보험금과 월세를 제외한 월급의 대부분을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사후 장기 기증도 서약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삶에서 감사의 삶으로 바뀐 그는 생전에 사람들에게 '여가 있어야 돕는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한 평도 되지 않는 고시원 방에서 5명의 후원 어린이들 사진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구절이 펼쳐진 성경이 발견되어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답니다. 이런 사람이 경건하게 산 사람입니다.
▶'피에타'라는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것으로 바티칸시 성 베드로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예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3년에 걸쳐 만든 것이었습니다. 피에타 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저미는 아픔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피에타 상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과 추기경, 귀족들이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피에타 상에 압도되었습니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요'라고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하기를 '교황님, 피에타 상은 제가 조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이 대리석 덩어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피에타 상이 드러나도록 겉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피에타는 '경건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경건은 온갖 죄와 탐욕으로 얼룩진 모습을 다듬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사에 나오는 '성 안토니오'는 재산의 전부를 팔아 구제하고 자기는 빈 손 들고 사막에 가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수도할 때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신발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 안토니오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거룩한 삶을 드리며 전 재산을 다 드렸는데도 신발을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니' 라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노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노인을 만나자 안토니오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노인의 대답은 '저는 너무 생활이 가난하기 때문에 신발을 고쳐주고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저의 하루 일과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