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화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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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안디옥 교회 방문을 위해 전주에 갔을 때 어느 집사님 내외분이 경영하시는 식당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 분들은 마치 성경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잘 감당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A교회의 창립맴버로서 교회와 함께 고락을 함께 해 오신 그분들이 저희에게 들려주셨던 고백 가운데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말이 있습니다."지난 8년간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지내오면서 깨닫게 된 결론은, 교회안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화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얼마나 중요한 진리입니까 흔히 우리는 속한 공동체나 조직속에서 어떤 '일'을 이루기위해 티격태격하다가 '좋던 관계'를 그 일 때문에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런 경우 상당수는 서로의 관계를 손상시켜도 좋은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닐때가 많습니다.교회 여름수련회 장소를 산으로 할 것인가 강가로 할 것인가 수련회라고 할 것인가, 수양회로 할 것인가 교회당 종탑 모양을 이렇게 할 것인가, 저렇게 할 것인가 교회본당 정면의 강단을 한 가운데 둘 것인가, 아니면 둘로 나뉘어 양쪽에 둘 것인가 예배중 기도순서를 참회기도라 할 것인가,중보기도라 할 것인가… 등등.지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놓고 핏대를 올리며 언쟁을 벌이고 그것 때문에 원수까지 되었던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습니까다 쓸데 없는, 부질없는 싸움들이었던 것을! 우습기 짝이 없는..... 이곳 삼도봉 예수마을이라고 그런 일이 없으란 법은 없습니다. 이곳을 일구고 다듬어 가는 데 있어 사람이 여럿이다보니 의견도 분분합니다. 뭘 하나 심는 일부터 무너진 제방 복구하는 방법에까지 말입니다. 하물며 건물을 짓고 어떤 행사를 기획하는 것에도 서로의 생각들이 같을 리 없습니다. 무슨 돌파구가 없으면 삼도봉 예수마을 콩가루마을 되기에 안성마춤인 겁니다.제가 고집피우던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앞 운동장 오른쪽 가운데에 마침 크로바(토끼풀)들이 대거 자라고 있었고 그때는 닥치는 대로 운동장 잡초 제거를 위해 제초제를 뿌릴 때 였습니다. 제게는 그 크로바군락(群落)들이 너무 아름다와 보였기에 그곳만은 보호하여 크로바 밭으로 남기자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어느날 저는 다른 이들과 상의도 않고 나무들을 잘라 말뚝을 주위에 박고 줄을 쳐버렸습니다."도회지에서 오시는 분들이 잘 다듬어진 세련된 고급 잔디밭이나 외국산 꽃들보다는 그저 우리나라 들과 산에서 곱게 자라나는 토끼풀, 떡갈나무, 민들레, 패랭이꽃 같은 것으로 다듬어진 정원을 더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제가 주장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크로바밭을 정성껏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운동장 전체에 잔디를 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크로바밭만은 고집스럽게 지키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며 말입니다.그런데 그토록 애지중지 돌보던 크로바 밭이었지만 우리들이 전주를 다녀온 다음날 목사님께서 "저거 없애고 잔디 심읍시다"하시는 말씀에 정말 기꺼이 "네! 그렇게 합시다"하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일보다 화목'이라시던 전주 집사님의 말씀이 늘 제 가슴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곧 경운기로 그곳을 시원히 갈아엎어 버렸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팠지만... 그러나, 그건 참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크로바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가치있는 고집인가 하는 제 스스로의 질문에 저는 과감히 '아니다'라는 답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아까웠어도 갈아엎어 버리고 나니 차라리 속이 시원했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어떤 일을 좀 그르치거나 혹은 실패할 수는 있어도 공동체 내의 화평은 결코 깨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이 생각은 그날 이후 저의 판단과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주님께선 우리에게 '화해의 직책'을 주셨습니다.(고후5:18) 그리고 우리가 "잘난체하지 말고 서로 다투거나 미워하지 않아야"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갈5:26)"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언제나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성령으로 연합하여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하십시오"(에베소서4:1∼3)"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자기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남의 이익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가지십시오"(빌2:3∼5)무엇이 더 '가치있는'것인가 하는 질문을 우리가 순간순간 어떤 일을 결정하고 판단내려야 할 때 마다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질문일 것입니다.어려운 일은, 시간이 지난 다음 나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이 판가름난 이후에도 당시 나와 의견을 달리했던 사람을 향해 "그것봐! 그때 내가 뭐랬어 에잇! 너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하고 소리지르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어려운일이지만 말입니다.친구사이에, 교회 내에서 성도들끼리, 혹은 가족들끼리 어떤 '일'에 대한 처리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하고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를 얻은 대신 열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아무리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사람사이에 원수 맺을 만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것이 소신(所信)도 필요없고 나름의 주체성과 자기확신도 필요없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의 흐리멍텅한 태도를 가지란 말은 아닙니다. 때론 피투성이가 되도록 아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서 지켜야 할 일도 있습니다. 거짓과 부도덕과 눈속임, 부정(不貞) 따위와는 결코 손잡아서도 안되고 그것을 묵인해서도 안됩니다.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런 진정한 가치로운 보화들 때문이 아니라 별 가치도 없는 견해 차이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헐뜯으며 싸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서는 꼴도 보기 싫어하고 같은 교회안에서 고개를 돌리며 심지어 신앙까지 내팽개치니 이런 일은 마귀 왕국에서 잔치를 벌일 일입니다.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재형이란 친구는 모임 내에서 어떤 견해차가 있을 때마다 "자자! 그런 건 구원받는 데 지장없다구!"라고 고함을 질러 모두를 웃기며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사 노릇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건 구원받는데 지장없다구!" 신학적으론 문제()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가 가장 중요한 본질적 핵심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에 마음을 뺏길 때 우리가 정작 잃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좋은 말이었습니다.무슨 일을 이루는 것보다 서로의 화목을 깨트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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