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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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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면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안 불러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이기 때문이다. 이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모든 한의 정서가 가장 짙게 깔려있는 민요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원래 이 노래는 사랑하는 님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부른 노래이다. 너무너무 사랑하는 님,세상 전체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님이 나를 버리고 떠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얼마나 가슴이 무너질 일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지마,당신이 날 버리고 가면 난 살 수 없어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게 표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 가라고,갈테면 잘 가라고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그런데 결국 나를 버리고 가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이 아니다. 사랑하는 님이 진짜 발병이 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본심은 떠나는 님이 발병이 나서라도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만큼 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강렬한 사랑을 다만 반어법적이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이 아리랑 정서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과 몇년전 청소년들에게 인기였던 god의 ‘거짓말’의 노래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아리랑 정서는 예부터 지금까지,청소년들의 내면까지에도 깊숙히 깔려있다. 그래서 옛날 우리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자녀들에게 아리랑적 사랑을 표현했던가. 이것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목회를 하는 목사에게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성도가 교회를 떠날 때이다. 멀리 이사를 가서 교회를 떠나도 마음이 아플 일인데 인간관계의 마찰이나 어떤 갈등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야속하게 떠날 때 목회자의 가슴은 미어지고 만다.

더구나 몇 명 안 모이는 개척교회 목회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때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떠나는 성도에게 섭섭한 말이나 원망섞인 소리를 할 수 있고 성도에겐 그것이 상처나 저주의 소리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도들은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목회자의 아리랑적 사랑이라는 사실을. 목회자가 떠나는 성도를 얼마나 사랑했으면,얼마나 품고 싶고 잡고 싶고 다시 돌아오길 원했으면 그랬겠는가라고. 특별히 개척교회 목회자가 부르는 아리랑이야 오죽하겠는가.
/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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