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
본문
일제는 기독교를 저들의 식민지 통치의 커다란 장애물로 간주했다.
그들은 교회를 항일 애국사상의 발상지로 보고, 교인들을 백안시했다. 그리하여 음으로 양으로 기독교를 탄압했으며, 드디어 노골적인 배교의 수단으로써 신사참배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신사참배는 두 말 할 것 없이 우상 숭배요, 우상 숭배는 설사 그것이 외부의 강압 에 의해 마지못해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모독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많은 교역자와 신도들은 이 신사참배 문제로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저들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사람도 없지는 않았으나 본의 아닌 억울한 희생자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해방이 되어 일제가 물러가자 교역자들이 평양 신학교에서 일제 하에서의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모임을 갖게 되었다.
나이 이미 70세가 되고도 남은 김익두 목사는 이 모임에 연사로 강당에서 설교하는 도중에 '내가 일정 때 신의주 제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왜경에 이끌려 신사 앞에 갔던 건 사실입니다' 하고 신상발언을 했다.
그러자 장내는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숙연해지면서 저마다 김익두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신사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하고 김 목사가 채 말 을 맺기도 전에 청중 속에 앉아 있던 채정민 목사가 강단에 뛰어 올라와 '그래 네가 잘했단 말이냐' 하고 지팡이로 김 목사를 후려갈겼다.
모두들 아연실색하는데 김 목사는 웃는 얼굴로 '형님, 왜 이러십니까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자리로 돌아가 제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말씀하세요' 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장내에서도 진정하라는 소리가 높아 채 목사가 퇴장한 뒤, 김 목사는 설교를 계속했다. 그의 설교는 장내에 모인 교역자들의 심금을 때려 은혜스럽게 모임을 마쳤다.
일제가 이른바 황민화(皇民化)운동의 일환으로 강요한 신사참배는 교계에 큰 시련을 안겨 주었다. 일제는 신사참배가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그럴싸한 궤변으로 저들의 악랄한 책동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교역자와 신도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일본 신사에 가서 귀신에게 절하자니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이를 거절하자니 저들의 서슬 푸른 핍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교회를 항일 애국사상의 발상지로 보고, 교인들을 백안시했다. 그리하여 음으로 양으로 기독교를 탄압했으며, 드디어 노골적인 배교의 수단으로써 신사참배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신사참배는 두 말 할 것 없이 우상 숭배요, 우상 숭배는 설사 그것이 외부의 강압 에 의해 마지못해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모독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많은 교역자와 신도들은 이 신사참배 문제로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저들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사람도 없지는 않았으나 본의 아닌 억울한 희생자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해방이 되어 일제가 물러가자 교역자들이 평양 신학교에서 일제 하에서의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모임을 갖게 되었다.
나이 이미 70세가 되고도 남은 김익두 목사는 이 모임에 연사로 강당에서 설교하는 도중에 '내가 일정 때 신의주 제일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왜경에 이끌려 신사 앞에 갔던 건 사실입니다' 하고 신상발언을 했다.
그러자 장내는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숙연해지면서 저마다 김익두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신사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하고 김 목사가 채 말 을 맺기도 전에 청중 속에 앉아 있던 채정민 목사가 강단에 뛰어 올라와 '그래 네가 잘했단 말이냐' 하고 지팡이로 김 목사를 후려갈겼다.
모두들 아연실색하는데 김 목사는 웃는 얼굴로 '형님, 왜 이러십니까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자리로 돌아가 제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말씀하세요' 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장내에서도 진정하라는 소리가 높아 채 목사가 퇴장한 뒤, 김 목사는 설교를 계속했다. 그의 설교는 장내에 모인 교역자들의 심금을 때려 은혜스럽게 모임을 마쳤다.
일제가 이른바 황민화(皇民化)운동의 일환으로 강요한 신사참배는 교계에 큰 시련을 안겨 주었다. 일제는 신사참배가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그럴싸한 궤변으로 저들의 악랄한 책동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교역자와 신도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일본 신사에 가서 귀신에게 절하자니 신앙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이를 거절하자니 저들의 서슬 푸른 핍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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