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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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삼촌반(三寸半)옹진골 옹당촌에 옹(雍)좌수가 살고 있었다. 재물은 많은데 인색하고심술이 맹랑하며 매사를 고집으로 우겨대는지라 도사(道士) 하나가 옹좌수가 꼭 닮게 둔갑하여 옹좌수 집을 찾아든다. 진짜 옹가와 가짜 옹가가서로 옹좌수임을 두고 패고 치고 싸운다. 양옹(兩雍)이 옹옹(雍雍)하니이 옹 저 옹 분별하지 못해 관가에 송사를 한다. 진옹(眞雍)이 패소하여곤장 30대를 맞고 유배당하며 가옹(假雍)이 그 많은 재물과 아내를 차지한다.한지붕 밑에 1년 남짓 같이 살면서 서로를 모르고 살던 두 가장이 야반에 만나 서로 내 집이니 서로 도둑이니 패고 치고 싸우다가 옥상에서 떨어져 살상(殺傷)을 빚고 있으니 진옹 가옹을 다투는 옹가네 싸움을 연상케 한다.옹가네 이야기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이 현대판 옹가네 이야기는 오늘날 사회의 아프디 아픈 치부(恥部)를 눈부시게 조명해 주고 있어 처참하다.송(宋)나라 때 여승진(呂僧軫)이란 이가 새 집을 샀다. 누군가 집 값을물으니 1천 1만 금이라고 했다. 무슨 놈의 집이 그렇게 비싸냐고 하자, 1만 금으로는 집을 사고, 1천만 금으로는 이웃을 샀다고 말하고 있다. 이웃과의 화목공존을 얼마나 중요시했던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중종 때 학자 김정국(金正國)도 `천금으로 밭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산다'는 시를 남기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은 향약문(鄕約文)에 보면 이웃은 사촌(四寸)이 아니라 삼촌반(三寸半)이란 말을 하고도 있다.이웃에 초상 같은 애사(哀事)가 나면 그 이웃들은 심상(心喪)이라 하여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심지어는 부부간에 합방(合房)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웃의 슬픔을 공감(共感)하였다.이웃간의 담장에 암키와(雌瓦)와 수키와(雄瓦)로 구멍을 뚫어놓게 마련인데 이를 `비린 구멍'이라고 불렀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별식(別食)을 만들었을 때 그 별식을 주고받기 위한 구멍인 것이다. 쇠고기나돼지고기를 비롯하여 멸치까지를 포함한 각종 어육(魚肉) 음식을 별식으로 쳤고 어육류를 비린 음식이라 했기에 비린 구멍이란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따습고 진한 정이 오갔던 정신적 구멍이 아닐 수 없다.이 이웃 삼촌반이 근대화 과정에서 이웃 백촌(百寸), 아니 이웃 무촌(無寸)으로 촌간(寸間)이 멀어져 왔다. 그리하여 이웃 아닌 한지붕 아래살면서 서로를 모르고 살다가 네가 옹가니 내가 옹가니 하고 싸우다가 추락 사상을 빚고만 이 해프닝은 웃어넘길 수만 없는 신랄한 현실 고발이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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