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낀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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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벌거숭이 원숭이'에 보면, 육식동물인 사자는 먹이 한 마리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사흘 동안은 먹지 않으며 먹이가 곁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다. 그러기에 아프리카 야생공원에 가보면 사자 가족이 어울려 있는 바로 앞에 마사이족(族) 청년이 유유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며, 또 바로 그 곁에서 사슴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하지만 먹이를 잡을 때만은 그 상대가 비록 나약한 토끼 한 마리일지라도 전력을 다하여 추적한다.잡아먹을 상대가 나약하다 하여 달려가는 도중에 암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든가 곁눈질을 하는 법이 없다.한데 초식동물인 원숭이는 나뭇잎이나 열매 같은 영양가 낮은 것만 뜯어먹기에 하루 종일 먹지 않고는 체력유지가 안 된다. 그러기에 원숭이는 먹으면서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젖을 먹이며 싸우면서 먹고 사랑하면서 이를 잡는다. 곧 이것저것 동시에 하는 '하면서주의(主義)'다.짐승을 사람에 비겨서 안됐지만 육식을 주로 하는 서양사람은 사자처럼 일할 때는 그 하는 일에 열중을 한다. 서서 차 한잔 마실 여유를 허락받지 못한다. 그리고 놀 때는 칼로 자르듯이 일과 결별하고 노는 데 열중한다. 이에 비해 초식을 주로 해온 우리 한국사람은 원숭이처럼 일하면서 쉬고 일하며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뽕 따면서 님도 본다.기성세대가 이해 못 하는 신생세대의 행동이 하나 둘일까마는 그중 두드러진 하나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팝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원숭이 성(性) '하면서 주의'다. 팝송 듣고 싶을 때 팝송 듣고 공부할 때 공부하라는 타이름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머리 속을 시끌시끌하게 해놓아야 공부가 잘된다고 우겨대는 데야 대항할 논리를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먹고살 것 없어 푸성귀만 뜯어먹고 살았던 슬픈 역사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같은 '하면서 주의'를 체질화시킨 것이려니…...하고 눈물겹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데 이 팝송을 들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하는 '하면서 주의'는 우리 한국 청소년들에 국한된 초식유전질(草食遺傳質)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보도된 바 미국의 한 교육연구소가 조사한 것을 보면 국민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 가운데 수학문제를 풀 때 88퍼센트가, 독서를 할 때 64퍼센트가 팝송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 집중력을 요하는 암기과목에는 해롭지만 응용문제나 복습할 때는 오히려 질력내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게 해주어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현대의 '하면서 주의'는 가중되는 생활주변의 도시 소음과 텔레비전 등 잡동사니를 동시에 수용하도록 체질화된 것이며, 오히려 조용하면 불안을 느낄 정도로 심화돼 있다 한다. 이어폰 낀 벌거숭이 원숭이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8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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