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어록
본문
- 나는 빈민들의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다.배고프고 헐벗고 집없는 사람과 불구자, 맹인, 나환자, 아무도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돌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사회에 짐이 됐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피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받게 된 것에감사한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낙태는 '자궁안에서 살인' 이다. 아이는 신의 선물이다. 여러분이 그를 원하지 않으면 내게 달라. - 신은 보다 겸손하고 헌신적이며 복종하는 또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고 선교회는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1989년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회 원장 사임의사를 밝히며〉- 나는 자유롭고자 하나 신은 자신만의 계획을 갖고 있다〈1990년 캘커타에서 수녀들이 그녀의 사임의사를 철회시키려 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 이상을 돌려준다. 그들은 강한 사람이며 음식이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저주하고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굉장히 많다 〈1977년 인터뷰에서〉 [] 테레사 어록이 세상에서 빈곤을 가장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수 있는 도시가 인도 캘커타다. 구걸하는 거지에 베풀고서 고맙다는 반례를 받지 못하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베품이라는 선행을 할 수 있게 해준데 대해 오히려 감사의 합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캘커타를 여행한 수녀 마리아 테레사는 이곳이야말로 하느님이 소명한 현장임을 절감하고 눌러앉는다.[나는 가느다란-- 가늘면서도 낡아빠진 전깃줄이다. 전기는 하느님이시고--.] 테레사가 이 빈민의 도시까지 전깃줄을 끌어 댄 것이 38세때였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깃줄은 낡아 나선이 되고 처지기도 했지만 그 은총을 전도하는데 단 하루도 단전이나 정전을 한적은없었다.테레사의 신앙적 위상을 가늠하는 말로 전깃줄 말고 [몽당연필]이있다.{나는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다. 그분은 어렵기 그지없는 모든 일을 하신다. 그 일을 돕기 위해 그분의 손에 쥐어진 작은-- 하지만 쓸모가 조금은 남아 있는 나는 토막연필이다.}.연전에 폐렴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을 때의 일이다. 평생허리 구부린 자세로 병약자를 돌보았기로 폐가 압박받아 생긴 병이라고 담당의사가 말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며칠전에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를 품에 안은채 죽어가게 했다.그 아이의 여한이 허파의 기포에 맺혀기침이 나고 염증이 생긴게 분명하다}고 자책했다.테레사는 예비수녀 시절 벵골만 바닷가를 거닐며 곧잘 돌멩이를 주워 바다에 던지곤 했다.바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비해 용량이 너무크다. 한데도 돌을 던지면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이 스러지기 전에 또 돌멩이를 던진다. [벵골만을 나는 이 파문으로 굴복시키겠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 파문이 바로 봉사요 파문은 벵골만에 그치지 않고 오대양에 굽이치게한 테레사 수녀다.얼마전 심장질환으로 입원했을때 {나의 병원 입원 치료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처럼 죽어 가게해달라}고 주치의에게 애원했다. 비단 병원비뿐 아니라 명성에 붙게 마련인 부가가치에 생리적 염증을 토로했다고도 한다.{우리는 하루 하루를 마지막 날인듯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 부르실 때면 왜 진작 부르시지 않았습니까고 원망하며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원망을 하며 세기의 성녀는 눈을 감았다. 천당 열쇠를 쥐고있는 베드로는 이 성녀를 맞이하고자 전례없이 중천까지 마중나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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