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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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 올림픽때 개막식장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미국 할머니 생각이난다. 남편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여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혀있다는이 미네소타 할머니는 10년 저축해서 여비를 벌었다면서 남편 무덤의흙 한줌 들고가 죽을때 고무신 신고 그 흙과 더불어 묻히겠다고 했다.고무신은 남편이 전사하기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 했다.한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고무신이 선택되었던 것 같다. 국운이 기울던 한말에 한국에 왔던 디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레노어가 죽었을때 머릿맡에 여자 고무신이 놓여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이처럼 고무신은 한국을 추억하고 대변하는 전형적 상징물이었다. 그 고무신이 사라진지 오래더니 근간에 새로운 감각에 영합한 색색가지 패션고무신이 등장하고 있다 한다.2백여년전 한 미국 여행자가 브라질에 갔다가 원주민들이 고무나무 유액으로 발을 보호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비신을 만든 것이 고무신의 원조다. 비가 많은 일본 사람들이 이를 도입 호모화라 이름짓고 팔기 시작한 것이 1916년이요, 이를 한국 여건에 맞추어 만들어 판 것이 3·1운동후의 일이었다.조선 고무신의 원조인 대륙고무가 1922년 9월 21일자에 낸 신문광고는 이렇다.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순종)께서 이용하심에 황강함을 비롯하여 여관각위의 애용을 수하여--]로 돼있음을 미루어 최초의 고무신을 신은 분이 순종황제요 그 주변의 궁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전투적인 서양 신발은 활동의 민활과 보호를 위해 볼이 좁고 굽이 높으며 발등 발목을 가리지만 평화로운 한국 신발은 발을 편안하게 하고벗고 신는데 편의하게 하고자 볼이 넓고 굽이 낮으며 발등 발목을 개방시킨다. 이 한국적 조건에 맞게 문화적 변용을 한 것이 고무신이요, 외래문물을 수용하는데 이상적 패턴이랄 수 있다.그래선지 상실하고 없는 우리 전통 신발의 원형을 가장 근사하게 보유해내린 고무신이기도 하다. 일제때 미국 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을 돌아보고 돌아가서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변방 국가를 정복할때 그 나라 백성들이 신고 있는 신발을 보고 공격적인가 평화적인가를 가늠했다는 고사를 전재하고 있다.한국인이 신고 사는 신발을 보고 일본 사람들의 간악함을 은연중에터득할 수 있었다고--. 그 사라지고 없어진 고무신이 현대인의 감각에맞게 색색가지로 변용되어 살아나고 있다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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