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한국판 샤일록

본문

베니스의 상인--하면 악질적인 고리 대금업자를 연상한다.냉혹한 사람의 대명사로 글에 쓴 것도 보았다. 동명의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돈을 못갚으면 인육 1파운드를 대신 요구한 피도 눈물도없는 유태인 대금업자 샤일록이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이 아니라 안토니오다.친구의 빚 보증을 서고 기한내에 못갚으면 자신의 살 1파운드로대신한다는 증서에 서명한 우정도 돈독한 동료 상인이다. 그는 이자없이 돈을 빌려주는 덕망높은 상인이요, 진취적 상인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처럼 양질인데, 빚 대신 인육이나 요구하는 악질로오해받아온 것이다.[베니스의 상인]같은 빚을 둔 비정한 상황이 베니스 아닌 부산에서 벌어졌다. 부산의 상인이 안토니오처럼 선량한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빚을 받아내려는 사람은 샤일록처럼 비정한 인간이었다. 2천5백만원의 빚 가운데 8백50만원을 가재도구로 변상받고 나머지 돈을 약정한 시한안에 못갚으면 간이나 콩팥을 적취한다는 각서를 받아낸 것이다.샤일록이 부채 보증으로 받아낸 인육 1파운드와 다를 것이 없다.계약대로 내장을 적취하되, 적취 과정에서 계약에 없는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살인죄를 면치 못한다는 재판 이전에 쇠고랑을 차고말았다지만 생명의 부위까지 빚 보증으로 등장하는 살벌해진 작금이다.우리 역사에서 육체 파괴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다든지 하는 파괴 목적이 숭고했다. 가난했던 백제효자 향덕은 고기를 먹고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낸 것을 비롯하여 몹쓸 병에 걸린 부모를 위해 내장을 적취해 바친 효자효녀는 비일비재하다.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하고 부모의 고통을 공감코자 손가락에 불을 켜 태우는 소지기도도 육체 파괴라 할 수 있다. 고도의정신적 성숙없이 불가능한 내장 적취다. 빚 대신 간이나 콩팥을 내놓으라는 저질의 금전 차원과는 너무나 현격한 공백이 있다. 그 찬바람 부는 공백에서 길잃은 철새처럼 방황하고 있는 생명사상이 초라하기만 하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2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