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장수 삼절

본문

판소리 사설은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요, 전라도에서도 지리산 산자락의 사투리다.그 사투리로 읊지 않으면 판소리 진국맛이 나지 않는다.그도 그러할 것이 판소리가 그 자락에서 발생하여, 그 자락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문화지도를 그린다면 바로 지리산 일대는 서민문화가 가장 원숙하게 발달한 지역으로 표시될 것이다. 판소리 아홉마당의 주인공 모두가 춘향이나 흥부처럼 신분도 권력도 재물도 없는 서민이요, 그애환과 절의가 주제가 돼 있음이 그 증거다.그렇듯이 이 문화권에서는 민중의 흉금에 공감되는 서민영웅 또한 많이 탄생되고 있다.이를테면 장수삼절이 그것이다.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고을에 침입하면 향교를 태워없앰으로써 정신적 지주를 말살하는 것이 작전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팔도의 향교는 거의가 불타 없어졌다.유일하게 타지 않고 남아난 것이 장수향교다.횃불들고 몰려든 왜군앞에 인왕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태워죽인후 향교를 태우든지 말든지 하라] 고 막아선 이가 있었다. 양반들은 모두 도망치고 없는데 혼자서 지키고 있던 향교의 하인 정경손인 것이다. 그의 간곡한 정성이 왜군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의 충절로 유일하게 살아남아 왜군들이 말살하려던 정신적 명맥을 애오라지 잇고 전후 재건하는 향교의 본이 되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서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삼절중 다른 서민 영웅이 숙종때 장수 현감 조종면의 이름없는 말 몰이꾼이다.송탄천을 가는데 날으는 꿩에 말이 놀라 뛰고 말에 탔던 현감이 소에 빠져 죽었다. 상전을 안전하게 모시지 못한 책무를 절감하고 손가락을 잘라 암벽에 꿩과 말 그림을 그리고 뒤따라 투신 순절한 것이다.마지막 삼절중 하나가 논개다.장수 현감시절의 최경희 장군을 부군으로 모신 논개는 진주성 전투에서 부군을 잃자 왜장 게다니무라를 끌어안고 물속에 투신, 복수를 한 것이다. 당시 논개의 나이 19세였다. 지체와 벼슬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순수하고 자발적이며 공감가는 절의가 아닐 수 없다.내일부터 장수에서는 이 절의를 기리는 논개제가 열린다.논개사당과 논개 탄생지를 대폭 확장, 성역화하는 등 삼절 유적지 성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서민문화권의 자리메김이요, 위상제고라는 차원에서 주목되는 잔치랄 수 있다.전국에는 서민이라서 묻혀있는 이름없는 영웅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들을 발굴하여 빛을 비추는 선구적 잔치다.- ,1996.10. 12. 이규태 칼럼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2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