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절약형 문화
본문
속에 담은 내용물이 있건 없건 서양의 가방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자기는 내용물을 옮기는 소임만 다하면 차지했던 공간을 평면으로 환원한다. 서양의 잠자리인 침대는 자고 안자고와는 아랑곳없이 공간 점유를 하고 있는데, 한국의 잠자리는 일어나서 차곡차곡 개어 선반에 얹음으로써 취침공간을 원점으로 환원한다.
서양 식탁은 상 위에 음식이 있건 없건 공간 점유를 하는데, 한국의 밥상은 먹고나면 상다리 접어 역시 공간환원을 한다. 옷도 옷장 속에 입체수납을 하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농 속에 개어 넣는 평면수납을 한다.
그 아낀 공간을 쪼개어 쓸 일이 있으면 병풍을 펴 갈랐다가 다시 접어 공간을 반환하고, 심지어 부채까지도 펴서 부치고, 다하면 접어 공간을 절약한다. 국토가 좁아서인지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서인지 우리나라만큼 필요했던 공간을 쓰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공간 절약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 공간환원의 철학을 집약한 것이 어릴 적부터 손에 익은 종이접기(절지)다. 중국에 절지라는 말이 없지않으나 남들이 못보게 접는 공문서를 뜻할뿐이요, 서양에서는 색종이를 가위로 자르고 풀칠하고 덧붙이는 환원불능의 조형은 하지만 접기는 생소하다.
따라서 10여종의 공작도구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한데 한국의 종이접기는 도구 하나 없이 손가락만으로 접어서 저고리 바지를 만들고, 집과 나무를 만들고, 그 집에 개를 놀리고, 그 나무에 새도 앉히는 조형을 한다. 다 만들어놓고는 낱낱이 풀어 공간을 되돌려주고 한낱 백지로 겸허하게 다음 조형을 기다린다.
한국에서 현명하게 사는 세 가지 지혜를 종이접기에서 터득하는데 그 조형을 풀어 공간환원시키는 공간절약이 그 하나요, 소재를 절약하는 것이 그 둘이며, 손재간을 조장시키는 것이 그 셋이니, 앞으로도 권장해야 할 대중예술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이민 간,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공통된 고민이 이웃 백인 아이들이 잘 놀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라 한다.
이런 때 백인 아이들을 접근시키는 수단으로 종이접기가 십상이요, 그래서 이를 배워갖고 오도록 권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한국의 전통지혜를 계승시킨 종이접기를 보급시킨 협회가 올 문화의 달에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상을 탄 것은 주체성을 잘 파악한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서양 식탁은 상 위에 음식이 있건 없건 공간 점유를 하는데, 한국의 밥상은 먹고나면 상다리 접어 역시 공간환원을 한다. 옷도 옷장 속에 입체수납을 하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농 속에 개어 넣는 평면수납을 한다.
그 아낀 공간을 쪼개어 쓸 일이 있으면 병풍을 펴 갈랐다가 다시 접어 공간을 반환하고, 심지어 부채까지도 펴서 부치고, 다하면 접어 공간을 절약한다. 국토가 좁아서인지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서인지 우리나라만큼 필요했던 공간을 쓰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 공간 절약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 공간환원의 철학을 집약한 것이 어릴 적부터 손에 익은 종이접기(절지)다. 중국에 절지라는 말이 없지않으나 남들이 못보게 접는 공문서를 뜻할뿐이요, 서양에서는 색종이를 가위로 자르고 풀칠하고 덧붙이는 환원불능의 조형은 하지만 접기는 생소하다.
따라서 10여종의 공작도구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한데 한국의 종이접기는 도구 하나 없이 손가락만으로 접어서 저고리 바지를 만들고, 집과 나무를 만들고, 그 집에 개를 놀리고, 그 나무에 새도 앉히는 조형을 한다. 다 만들어놓고는 낱낱이 풀어 공간을 되돌려주고 한낱 백지로 겸허하게 다음 조형을 기다린다.
한국에서 현명하게 사는 세 가지 지혜를 종이접기에서 터득하는데 그 조형을 풀어 공간환원시키는 공간절약이 그 하나요, 소재를 절약하는 것이 그 둘이며, 손재간을 조장시키는 것이 그 셋이니, 앞으로도 권장해야 할 대중예술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이민 간,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공통된 고민이 이웃 백인 아이들이 잘 놀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라 한다.
이런 때 백인 아이들을 접근시키는 수단으로 종이접기가 십상이요, 그래서 이를 배워갖고 오도록 권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한국의 전통지혜를 계승시킨 종이접기를 보급시킨 협회가 올 문화의 달에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상을 탄 것은 주체성을 잘 파악한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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