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
본문
미국에 있는 한 성도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들이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지만 장성하면서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의 논리에 자신이 압도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왜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가 있게 하는가”, “정말 하나님이 정의의 신이라면 어떻게 이 땅에 불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가”, “정녕 하나님이 전능의 신이라면 어찌 이 땅에 그토록 숱한 재난이 있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아들의 반론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장을 드렸다.
“만약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린다면 아드님의 주장이 백 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다면 아드님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한평생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불의한 자로 인해 고통받기에 영원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면, 재난을 당했기에 비로소 영원에 대해 눈뜨는 자가 되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영원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아드님에게 신앙을 권유하려 하시지 말고 머지않아 반드시 관 속에 시체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언젠가 아드님이 죽음이란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진정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왜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가 있게 하는가”, “정말 하나님이 정의의 신이라면 어떻게 이 땅에 불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가”, “정녕 하나님이 전능의 신이라면 어찌 이 땅에 그토록 숱한 재난이 있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아들의 반론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장을 드렸다.
“만약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린다면 아드님의 주장이 백 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다면 아드님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한평생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불의한 자로 인해 고통받기에 영원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면, 재난을 당했기에 비로소 영원에 대해 눈뜨는 자가 되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영원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아드님에게 신앙을 권유하려 하시지 말고 머지않아 반드시 관 속에 시체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언젠가 아드님이 죽음이란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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