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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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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역사를 바꾼 작물로 감자와 옥수수를 든다. 프리드리히 대왕시절의 독일 대기근, 루이 16세 시절의 프랑스 대흉작 그리고 고질적인아일랜드의 기근을 해소해준 것이 바로 감자와 옥수수였다.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내뱉는 큰 소리는 바로 미국의 옥수수 창고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세계에서 빈발하고 있는 굶주림, 그 굶주림과 연관된 국제역학을 조종해온 미국의 옥수수이기 때문이다.콜럼버스가 중남미로부터 유럽에 옮겨간 옥수수가 중국에 건너간것이 16세기요, 중국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전래된 것은 18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그 무렵 지어진 [증보 산림경제]에 옥수수(옥촉서)는 오색의 색색가지가 있는데 한 자 거리를 두고 심는다고 했다.옥수수 열매를 쪄 먹어도 되고 죽을 쑤어 먹으면 한결 좋다 했다.19세기 전반기의 문헌인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도 푸르고 희고 붉은 세종류가 있어 가루내어 죽을 쑤면 보리보다 못할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19세기 초기에 필사된 [동패낙송]이라는 문헌에도 옥수수가 나온다.경상도 순흥골 만석꾼 황부자가 버려진채로 있던 묵밭을 개간해 옥수수를 심고 주막에 가서 행인들 대소변을 받아 밭을 걸우는 것으로부터 만석꾼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우리나라에서도 옥수수는 기근에서 살아내거나 가난을 극복하는 구황식품으로 뿌리내렸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옥수수라는 말의 뿌리도옥촉서의 중국 발음인 위슈슈에서 비롯된 것이며 옥수수의 별칭인 강냉이-강나미는 전래시킨 중국 남부지방 통칭인 강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설이 있다.흉년이 들거나 나라에 병란이 심하면 우리 조상들은 남부여대하고목숨을 보전코자 보승지를 찾아 이동하게 마련인데, 그 때 싸들고 가는것이 옥수수 씨앗이었다. 그래서 무일푼임을 강조할때 가진 것이라곤옥수수 한줌밖에 없다고들 말한다.유랑하다가 아무데나 심어도 잘 나고 땅이 각박해도 또 춥거나 기온이 높아도 정직하게 자라 결실을 잘 해주기 때문이다. 옥수수 죽이가난과 굶주림의 상징이 돼내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아프리카에서 옥수수로 기근해소에 도움을 주었던 슈퍼 옥수수 박사 김순권씨가 옥수수 씨앗 20여종을 갖고 북한을 방문할 참이라 한다.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진리의 구현이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는데 이같은 자구책이 유발되는 쪽으로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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